점, 사주, 관상, 꿈…
과학문명 속의 의문들
믿음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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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태건 현오철학원장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고대철학자들의 수없는 고뇌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해답을 찾아낸 사람은 없다.
사람으로 태어나 내가 누구인지 조차모르고 살았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사람일뿐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어떤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누구인지 조차 모른다면 그 무엇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과연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인가?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성현과 철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한결같은 의문을 남겼고, 인류의 영원한 미스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점, 사주, 관상, 꿈, 점성술로 미신(迷信)으로 여겨왔다.

하나님, 부처님을 찾는 이유 있다

한의학의 원전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황제 내경에 관상에 따라 오장육부의 상태를 진단했고, 꿈은 화엄경 황제내경에 그리고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었다. 뿐 아니라 프로어드, 카를 융은 평생 동안 꿈과 영혼에 관해 흥미를 잃지 않았기에 죽기 전까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성경 구약 욥기 37장 7절: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부호 또는 인장을 주었나이다. 이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직분을 알게 할 것이다.(손금)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역 인근에서 점성술과 수상술이 발달되었다.
이렇게 과학문명이 시작되었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종교와 신앙을 탄생시켰다. 한치 앞조차 볼 수 없는 자기일생에 관하여 궁금하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첨단과학은 달나라를 가고 작은 핵 하나면 전세계를 위협하지만 지성인일수록 하나님, 부처님을 믿는다.
성어거스틴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신을 믿는다고 했다.
인간의 집착은 착각 속에 생기면 착각은 현명하지 못한데서 생긴다. 아무리 현명할지라도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며 내가알고 있는 게 전부라고 믿고 있기 때문, 타인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 부정해 버린다.
타인을 안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혼탁하고, 서로가 불신하는 사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양철학 하면 주역을 생각하고, 철학관이라면 운수나 가복을 논하는 점쟁이나 무당, 박수를 상상한다.
절에 가서 부처님께 빌고 교회나 성당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하던 신도나 성도는 말할 것도 없이 스님이나 목사도 우환이나 급한 일이 생기면 점집을 찾는다. 그것도 신분에 따라 찾아오는 시간이 다르다.

옛것, 전통 다 버리면 ‘종자없는 국민’

일반인은 밝은 낮에 찾지만 목회자나 성실한 성직자는 은밀한 장소나 야간의 시간을 선택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심령치료까지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기업의 아이디어마저도 영적 선견지명을 기대한다. 문학하면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 이탈리아의 단테, 러시아의 푸슈킨 작품을 보라.
그들이 남긴 불멸의 작품이야 말로 신적이고 영적이지 않은가.
언뜻언뜻 떠오르는 스쳐가는 영적의 판단이야 말로 인간의 생각이 아닌 신의 계시라 나는 믿는다. 점이나 사주를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것이 옛것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면 최소한 옛것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부정한다고 근본마저 없어지는 것이 아니 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마저 사행으로 취급하고, 무시하는 대한민국 문화는, 한자를 없애고, 한글전용을 한다든가, 역사나 도덕을 무시했던 고육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전통마저 사라져 외세만 성행하는 서구문명만이 존재하는 종자 없는 국민이 되었던 것이다.
이념도 사상도 없기 때문에 국민을 대표하는 위정자 대다수가 정체성 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주니 점이니 하는 것이 마치 허황된 말로 혹세무민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신(神)을 믿고 아침, 저녁으로 울어대는 미치광이의 광적 신도들은 무려 35억이나 된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의 설교에 울고 웃는 모습이야 말로 미친 것이 아닌가.
중국의 굴원은 포악한 군주에게 충언을 하였지만 끝내 듣지 않고 미워하자 멱라강에서 몸을 던지면서 세상이 다 미쳤는데 나만 미치지 않았으니 내가 미친 것 아니냐고 탄식하였다.
국가와 세계적 평화를 표방하지만 개인의 정신이 부패된 이상 더 이상의 이상국가나 선진국의 미래는 없다.
수신제가를 근본으로 삼았던 이유는 국가의 최소단위는 개인에 있기 때문이다. 아담스미스도 도덕감정론에서 주린 배가 채워진다면 도덕과 윤리가 앞서야 된다고 했고 맹자도 항산과 항심을 말했으니 최소한 삶의 바탕은 물질이지만 정신과 마음을 중요시 했던 것이다. 개개인의 정신이 깨끗하고 청정할 때 올바른 정의사회가 온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면서 사는 것이 효율적인 삶을 사는 것인지 알아야 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신(神)이 와서 나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것을 했노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된다고 했다.

명리학은 천명을 찾는 인생관

명리학은 천명을 아는 것이며 천명이란?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니 마치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듯 자기를 찾는 것이다. 공자는 50에 지천명 했다고 했다. 동양권만 자연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BC 6세기부터 1천년동안 자연을 찾았고 중세에 천년은 신(神)을 찾았으며 근대 와서는 사람을 찾았다.
천존시대, 지존시대, 인존시대라고도 하며 神은 우주관이요, 자연은 세계관, 사람은 인생관이라고 한다.
자연과 인간의 문제에서 사람과 사람의 문제가 되었다.
명리학은 종교와 신앙의 대상이 아닌 순수학문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통계학이다. 어떤 일이 생기기 이전에 반드시 틈이 생기며 기미가 나타난다. 이것을 象이라 한다. 글자나 언어 이전의 표현이다. 틈의 낌새를 알아차림으로 병법이 나왔고 象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사계절의 월력으로 농수산업이 발전했고, 역법은 황도부근의 120개 항성과 28숙에 의해 정해졌으며 기후에 따라 인간의 건강과 질병이 생기므로 의학이 발달했고, 신농본초와 난경 및 황제내경이 바탕이 되었다.
물리학에서는 역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저울과 두레박을 만들고, 나침판과 물시계를 만들었다. 과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인간이 만들어 사용하는 모든 물건은 지식과 지혜의 산물이다.
모든 근본과 원리는 자연에서 배웠고 생활 속에서 얻은 것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모두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고 금,목,수,화,토라는 오행이 움직인 결과이다. 계절이 늘 조화롭게 바뀌고 자연계가 균형을 이루며 각각의 자연적인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만물이 하나하나 계속 생겨나고 죽는다. 하늘과 땅이 자연스럽게 결합하므로 만물이 홀연히 부자불식 간에 생겨난다.

만물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나침판

음과 양을 근간으로 하여, 이들 간의 상호작용과 통일로부터 만물이 생겨난다. 만물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또 일정한 조건에서 유전되고 변이가 생겨나, 갈수록 종이 번식한다.
우주의 변화 속에 우리 인간도 조화를 이루며 우주라는 큰 그물(비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질과 량이 동일한 물체가 없듯 한사람도 동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은 순환하고 협동하는 것이다.
오감(눈,귀,코,혀,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때론 동물과도 같다. 불변의 진리 앞에 자신이 속고 있으며, 자신이 속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착각 속에 인생을 허비하고 만다.
나 자신에 대한 착각, 인생에 대한 착각, 현실세계에 대한 착각이다.
오감의 느낌이야 말로 원죄를 낳은 것이다. 무엇이라 인지된 순간부터 탐욕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예부터 수신하라는 말은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텅 비우라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집요한 착각에서 벗어나면 저절로 오묘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변화할 것이다”라고 했다.
탐욕만 버리면 자연적 이성으로 돌아간다.
의식을 변화시키면 행동으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어떻게 의식의 변화가 생기는가? 앎이다. 나를 알면 나의 직분으로 돌아갈 것이다.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며 자연의 조화 속에 지극히 작은 존재일 뿐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나침판이 명리학이다.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이라 했다.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도(道)라 했으니 나를 알아 행하라는 것이 명리이니, 결국 인생의 행복을 말한 것이다.
한 개인 개인이 모두 행복하다면 이것이 곧 천국이며 인류의 평화 아니겠는가?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으니 밖에서 찾지 말고 나를 찾을 지어다. 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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