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릴린 먼로 ‘ 7년만의 외출’ (英 데일리 메일 웹사이트)

아! 저 새콤달콤한 표정! 말 그대로 섹시하다. 뇌쇄적(惱殺的)이다. 엑스터시(ecstasy) 그 자체 같은 이 한 장의 사진이 마릴린 먼로를 단번에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로 등극시켰다. 1955년도 영화 ‘7년만의 외출’ 스틸사진으로 제목도 꽤 도발적이다.
금발의 저 여자는 도로의 통풍구로부터 솟구치는 바람에 거꾸로 말려 올라가는 치맛자락을 양 손으로 움켜쥐고 있다. 자칫 팬티가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쑥스러운 듯 살짝 찡그리며 웃는 여자의 얼굴표정을 보는 순간 20세기 중반을 살아가던 남자들은 숨이 멎는 듯했을 것이다. 갓 서른의 적절히 완숙한 여인이 지을 수 있는 이 ‘최고의 표정’ 덕분에 그녀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다.

열혈팬, 그녀의 드레스 3벌을 1000만 달러

반세기 전 그 여자가 입었던 이 민소매 미색 드레스 한 벌이 무려 460만 달러(약 50억 원)에 낙찰됐다. 그 드레스의 주인공은 이름만 들어도 웬만한 전 세계 성인 남성들을 녹일 듯한 여배우 마릴린 먼로다.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드레스의 위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2011년 6월18일 미국 베벌리 힐스 경매장에서 마릴린 먼로의 억만 장자 열혈 팬은 이 ‘통풍구 드레스’ 외에도 먼로가 1953년 출연한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 입었던 붉은 색 드레스 (120만 달러)와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입고 나온 옷을 비롯 모두 3벌의 드레스를 1000만 달러에 구입했다. 대단한 팬이다. 먼로를 얼마나 흠모하길래.’낡은 드레스 세 벌에 1000만 달러나 쾌척한 그 남자의 ‘순정’이 애틋하다.
영화‘7년 만의 외출’은 마릴린 먼로에겐 ‘행운의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기(轉機)가 찾아오듯 할리우드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무명의 이 여배우는 통풍구에서 불어닥친 바람 덕분에 결국 백악관에까지 ‘초대받는 여배우’로 성장한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행운의 이 백악관 진출은 결국 그녀의 운명에 ‘언해피 엔딩’이라는 비극의 단초가 된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고로 멋진 섹시 가이’로 통하던 45세의 젊은 대통령 J. F 케네디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 지각한 여배우의 달콤한 ‘Happy birthday song’을 들으며 ‘운명적 순간’임을 감지했다. 필(feel)이 통한 것이다. ‘대통령의 연인’이 된 이 여배우는 ‘백치미(白痴美)의 대표’라는 라벨과는 달리 매우 총명했고,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정치현안’에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말했다. 어쩌면 정치를 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 중독사 1년뒤 케네디도 저격 피살

반면 세계에서 제일 격무에 시달리는 자리라는 미국 대통령은 여배우가 ‘개인적 만남’에선 그저 아이스크림처럼 그냥 달콤하게 녹아드는 여자이기를 바랬다. 여자가 ’정치적 식견‘을 갖는다는 건 남자들에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골치 아픈 일로 여겨졌나 보다.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친다’는 웃지못할 CF 광고의 저주가 이미 그 시대에도 통했는지 이 잘 생긴 대통령은 여배우를 멀리하고 싶어졌다. 그럴수록 여배우는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고 결국 그녀는 1962년 8월 무더운 여름날 아침 자택에서 약물중독사(中毒死)로 발견된다. 알몸인 채. 그녀의 비극적 죽음 1년여 후 1963년 11월 케네디는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미국 대통령 자리에서 웰링턴 국립묘지로 이동해야하는 운명을 맞았다.
마릴린 먼로는 평소 어떤 잠옷을 입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No.5’만 입고 잔다는 센스 있는 ’명언(名言)‘으로 샤넬 향수회사에게 큰 돈을 벌게 해줬다. 그녀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권위가 있었으며, 그리고 물론 엄청나게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영화배우’가 된 여인이었다. 1926년 6월 1일 사생아로 태어나 한 때는 고아원에서 자라기도 했던 노마 진 모르텐슨은 할리우드의 무급 엑스트라에서 출발, 20세기 중반 아니 20세기 내내 아니 유사 이래 최고로 ‘섹스어필’한 여배우로 성장했고, 비극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은 그녀를 ‘할리우드의 실패한 유명인사’로 본다. 그들은 그녀의 삶을 과도한 슈퍼 스타덤의 위험에 대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고 평가한다. 그들에게 그녀는 사랑 받는 만큼 동정 받는 존재로 재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모계 혈통의 정신병 DNA?

미국의 유명한 전기 작가 J. 랜디 타라보렐리는 전기 ‘마릴린 먼로’에서 “마릴린 먼로는 단순한 유명 영화배우, 훨씬 그 이상이다. 그녀는 연약한 정신이자 관대한 영혼 그리고 그녀 자신의 마음과 황폐한 싸움을 한 용감한 투사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여성의 관능성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제시했으며 아름다움, 우아함, 교양미, 혹은 백치미 등등 온갖 여성에 관련한 형용사의 대명사였다는 게 먼로의 전기를 쓴 이 작가의 주장이다.
이 마릴린 먼로 이야기에는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나온다. 그중 가장 쇼킹한 것은 그녀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모두 정신병원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마릴린은 늘 광기가 그녀를 사로잡을까 두려워하며 살았다는 대목이다. ‘母系 혈통’의 DNA가 그녀를 정서불안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타라보렐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현재 순간에 절박성을 유지하려는 그녀의 능력이었다. 그녀는 ‘지금’이 과거와 미래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슬프게도, 그녀가 현재에 남아 있으려 하는 동안, 미래가 그녀를 위협하는 만큼이나 과거는 그녀를 사로잡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마릴린 먼로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단순하고 쾌활한 여배우는 더 이상 아니었다는 말이다. 늘 운명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 허우적거린 슬픈 운명이었다.
결혼을 네 차례나 했지만 결국은 모두 파국을 맞이했던 마릴린 먼로는 가정을 이루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약속하는 영속성을 추구했다. 슬프게도 그것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이 옛날식대로 말하면 바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었다고나 할까.

지금껏 살아있었다면 88세 할머니

지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앞의 생(生)’에 출연하는 주연배우라고 할 수 있다. 배우인 마릴린 먼로도 영화 속 여주인공만큼 다채로운 ‘자기 앞의 인생’을 살아낸 대단한 주연 여배우였다. 서른여섯 짧은 생애를 마감한 그녀는 지금 살아있다면 88세의

▲ 필자 박미정

호호백발 할머니다. 살아있었다면 ‘생전의 인기’는 누리지 못했을 나이다.
‘단명한 미인’마릴린 먼로는 아주 수천 년 전 ‘전설 속 여배우’ 같다는 이미지와 함께 지금 21세기 바로 우리 옆에 숨 쉬고 있는 ‘현역 여배우’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 그만큼 그녀의 ‘모던한 아이스크림 미소’와 최고 권력자와의 줄다리기 연애 등, 굴곡 많았던 삶이 현대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마릴린 먼로 자체가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겠다. 55년 전 마릴린 먼로는 자신이 입고 있던 그 베이지색 민소매 드레스가 55년 후 50억 원이라는 거액에 팔리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1955년 마릴린 먼로의 드레스는 ‘21세기 먼로 드레스’로 우리에게 다가와 인생 일장춘몽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불현듯 장주접몽(莊周蝶夢)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여전히 21세기 우리들 앞에서 저렇게 달콤하게 웃고 있는 ‘왕년의 명배우’ 마릴린먼로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인생무상(人生無常)함을 새삼 느낀다. 모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79호(2014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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