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배임 혐의에도 ‘ 순교위협’ 호위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4년 07월 10일자 홈페이지 <칼럼>면에서 ˝구원파왕국의 '지존', 교주는 신비의 철옹성˝(이)라는 제목으로 ""더구나 구원파란 질기고 철저한 ‘철옹성’의 ‘이익결사체’와 같다는 소감이다. ... 대한민국이 ‘종교천국’이라 불리니 교주(敎主)의 위치는 신성불가침의 영적존재로 군림하는 모양이라고 느낀다. 또 그와 믿음과 경제적 이익을 같이하는 핵심 열성신도들은 생사와 구원의 운명 공동체로 보인다. ... 결국 교주는 영적존재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구원파의 공동 창업주로 지금껏 교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유병언씨", "구원파의 이같은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구원파 특유의 결속력과 충성심인지 교주의 신비와 신통력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신앙으로 결속된 부분도 있겠지만 막대한 ‘헌금경제’와 관련된 이익과 생존권도 작용하고 있으리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과연 구원파와 오대양 사건이 전혀 무관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오대양의 박순자 대표가 열성적인 구원파이고 대전지역의 ‘개발비’ 모금책이었다는 사실은 사건직후 여러차례 보도된 바 있다", "유씨 일가의 온갖 탐욕과 불법이 거의 다 드러나고 있는데도 구원파 주류가 끝까지 그를 지존으로 섬기려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종교적 신앙일까, 헌금경제와 관련된 생업(生業) 때문일까"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에 확인한 결과, 기독교복음침례회가 1981년 설립될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후로도 해당 교단에서 목사로 재직하거나 교주로 추앙받은 사실이 없음이 확인되었으며, 해당 교단은 정상적으로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단으로서 사람을 교주로 추앙하는 교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사업체를 운영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사업체의 경우 일부 신도들이 주식을 소유하거나 취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1987년 오대양사건 당시 박순자씨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가 아니었으며, 해당 교단으로부터 이미 제명 조치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개발비 모금책이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1987년, 1989년 그리고 1991년 세 번의 검찰수사 결과 기독교복음침례회와 관련이 없음이 확인되었으며, 이를 지난 5월 21일 검찰에서 공문을 통해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이에 해당보도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4년 07월 10일자 홈페이지 <칼럼>면에서 ˝구원파왕국의 '지존', 교주는 신비의 철옹성˝(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네가 보기에 유병언씨는 종교와 기업을 한데 엮어 세모그룹을 일으켰다가 부도로 파산하고 그뒤 법정관리 과정을 이용하여 자녀명의로 새 그룹을 축성해 냈을만큼 신통력을 발휘했다. ...구원파를 배신하고 탈출해 온 전 신도들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해진해운과 많은 계열사들을 소유 지배하는 방식이 바로 ‘유병언 식’의 전형이다.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원격조종 방식으로 종교와 기업 공동체를 통치해 왔기에 언론들이 ‘실질적인 오너’라고 표현했다. 유씨와 그의 4남매 자녀들의 구원파 내 위상은 지존(至尊)과 성역(聖域)처럼 관측된다. 나라와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를지언정 유씨 일가는 국법(國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왕국 어디엔가 은신하고 있는지 아직은 아는이가 없다. 결국 교주는 영적존재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구원파의 공동 창업주로 지금껏 교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유병언씨의 신통력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월호 그룹을 직간접 통치하고 ‘보이지 않는 얼굴’로 검경 수사권을 속이고 조롱할 수 있는 위력이다", "세모그룹을 일으킬 때 유씨는 ‘하나님의 사업’에 헌금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설교해 놓고 그의 사업과정에서는 신도들의 헌금, 출자금, 담보를 이용하여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다가 무너지고 다시 재건했다. 그러다가 세월호 침몰로 ‘모래성’이 와해될 지경에 대죄(大罪)가 드러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구인장, 체포영장, 구속영장을 거부할만큼 ‘철옹성’ 조직의 보호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유씨의 종교와 사업전선에는 유달리 여인의 그림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 유씨의 ‘헌금사업’이 번창하는 과정에 열성 여신도들이 신뢰와 총애로 가까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부인과 갈등을 자주 빚기도 했노라고 전 구원파 신도들이 증언했다.이 과정에 30대 묘령의 여인과 동행했다고 하니 최후의 위기까지 여복(女福)을 누린 셈이다", "유씨 일가와 구원파가 순수 종교활동을 넘어 정치권의 기류를 잘 알고 정치투쟁의 맥을 짚어 버티기 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유씨는 5공정권 때 승승장구 했고 민자당 재정위원으로 집권세력과도 밀접했던 전력이 있지 않는가","변장의 명수 유씨가 무슨 말로 자신을 합리화 할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달변가로서 종교탄압, 박해, 인권, 권력남용 등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죄를 지었다고 뒤늦게나마 고백할 것인가. 지금껏 지켜본 상황에 비춰보면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한 것을 남의 저주와 인간말살로 몰아 부치지 않을까"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 측에 확인한 결과, 유병언 전 회장은 침몰한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 해운이나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 천해지의 대주주인 아이원아이 홀딩스의 지분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경영일선에 참여하거나 관여한 바 없어 유병언 전 회장이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도된 내용은 적절치 못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자신의 사업을 종교와 결합시키거나 보도의 사업체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경영하지 않았으며, 법정관리나 기업회생절차를 악용하여 부채탕감을 하거나 기업을 재건한 사실이 없으며, 이는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었음을 검찰이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설립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해당 교단에서 목사로 재직하거나 교주로 추앙받은 바 없으며, 자신의 사업을 하나님의 사업이라거나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거나 가르친 바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특정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바 없으며, 이후에 사실로 밝혀진 바도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유병언 전 회장의 여자관계에 대한 보도는 다수 패널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제재조치를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민정당 당원이었거나 모범당원으로 표창된 사실이 없으며, 1991년 당시 민자당(민정당 후신)에서 유병언 전 회장이 500명의 중앙당 후원회원 중의 한명에 불과하다고 해명 발표를 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5공화국 정권과 유착 관계를 맺고 사업을 발전시킨 사실이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5월 21일 검찰이 공문을 통해서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바로 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비 종교인이 ‘구원파’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를 생각하면 신비와 의혹 투성이다. 과연 종교인 일까 기업인 일까 구분이 안된다. 더구나 구원파란 질기고 철저한 ‘철옹성’의 ‘이익결사체’와 같다는 소감이다. 다만 구원파를 결속시킨 교리의 핵심을 알지 못하기에 종교적 시시비비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전제한다.

▲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원격조종 방식으로 종교와 기업 공동체를 통치해온 구원파 교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구원파 왕국의 ‘지존’
교주는 신비의 철옹성
‘헌금경제’ 이익공동체로 법정투쟁
횡령· 배임 혐의에도 ‘순교위협’ 호위

교주 일가는 ‘지존과 성역’의 영적존재

대한민국이 ‘종교천국’이라 불리니 교주(敎主)의 위치는 신성불가침의 영적존재로 군림하는 모양이라고 느낀다. 또 그와 믿음과 경제적 이익을 같이하는 핵심 열성신도들은 생사와 구원의 운명 공동체로 보인다.
유병언 전 회장은 필요에 따라 설교의 내용을 바꾸고 때론 교주도 아니고 신도도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 위인으로 비친다. 세월호 참사 관련 책임을 지고 구속된 많은 사람들도 한결같이 구원파와 ‘회장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극구 해명하니 그의 존재가 더욱 신비롭다.
우리네가 보기에 유병언씨는 종교와 기업을 한데 엮어 세모그룹을 일으켰다가 부도로 파산하고 그뒤 법정관리 과정을 이용하여 자녀명의로 새 그룹을 축성해 냈을만큼 신통력을 발휘했다. 유씨의 존재는 새월호 참사가 나기 전까지는 아는이가 없을만큼 감쪽 같았다.
구원파를 배신하고 탈출해 온 전 신도들이 이런저런 증언을 많이 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해진해운과 많은 계열사들을 소유 지배하는 방식이 바로 ‘유병언 식’의 전형이다.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원격조종 방식으로 종교와 기업 공동체를 통치해 왔기에 언론들이 ‘실질적인 오너’라고 표현했다.
유씨와 그의 4남매 자녀들의 구원파 내 위상은 지존(至尊)과 성역(聖域)처럼 관측된다. 나라와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를지언정 유씨 일가는 국법(國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왕국 어디엔가 은신하고 있는지 아직은 아는이가 없다. 결국 교주는 영적존재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 경찰청이 배포한 수배전단에 실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장 예상모습
▲ 유대균씨 변장 예상모습

대죄 혐의에도 ‘순교 불사’ 위협

구원파의 공동 창업주로 지금껏 교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유병언씨의 신통력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월호 그룹을 직간접 통치하고 ‘보이지 않는 얼굴’로 검경 수사권을 속이고 조롱할 수 있는 위력이다. 구원파의 총본산 금수원을 수색하기 위해 검경은 죽을 고생을 했지만 끝내 허탕이었다. 그들은 검경보다 한수 앞질러 행동하고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세모그룹을 일으킬 때 유씨는 ‘하나님의 사업’에 헌금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설교해 놓고 그의 사업과정에서는 신도들의 헌금, 출자금, 담보를 이용하여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다가 무너지고 다시 재건했다. 그러다가 세월호 침몰로 ‘모래성’이 와해될 지경에 대죄(大罪)가 드러나고 있지만 그에 대한 구인장, 체포영장, 구속영장을 거부할만큼 ‘철옹성’ 조직의 보호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금수원이 검경 수사관들의 법집행을 인간 바리게이트로 봉쇄하고 언론사의 출입도 막았다. 마치 호위무사 같은 경호대를 앞세워 “해경과 해수부와 청와대부터 조사하고 오라”고 큰소리 쳤다. 검경이 밀고 들어오면 “순교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다. 일부 신도들이 미리 유서를 작성해 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외로 도피한 유씨 자녀와 핵심 측근도 검찰소환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공언했다. 여권 무효화나 국제 사법공조에도 콧방귀 끼지 않았다. 해외에도 은신처와 위장방도가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구원파의 이같은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구원파 특유의 결속력과 충성심인지 교주의 신비와 신통력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10만 성도 다 잡아가도 유병언은…

유씨의 종교와 사업전선에는 유달리 여인의 그림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해외로 도피한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는 유씨와 깊은 관계로 사생아 출생설이 이야기 된다. 한국제약 전 이사에다 문진미디어 최대 주주인 이순자씨는 구원파의 7인방으로 불린다. 인기 탤런트 전양자씨는 노른자 쇼핑 대표에다 금수원의 공동대표로 실권자 지위를 누린 것으로 비쳐진다.
유씨의 ‘헌금사업’이 번창하는 과정에 열성 여신도들이 신뢰와 총애로 가까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부인과 갈등을 자주 빚기도 했노라고 전 구원파 신도들이 증언했다.

▲ 배우 전양자씨가 인천지검에 출두하는 모습

검찰이 금수원을 수색했을 때 유씨는 이미 탈출하여 인근 별장을 거쳐 전남 순천, 보성 등지로 유유히 도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30대 묘령의 여인과 동행했다고 하니 최후의 위기까지 여복(女福)을 누린 셈이다. 유씨의 장남 유대균씨는 금수원을 벗어나 프랑스로 도피하려다 실패한 후 잠적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비만형 얼굴이 특징이니 어떤 형태이건 성형으로 위장하지 않았을까 의심되기도 한다.
유씨 일가의 검거가 초 읽기에 들어간 시점에 구원파가 검경을 향해 그들의 ‘지존’을 끝까지 호위하겠다는 결의를 공개 과시했다. “10만 성도들 다 잡아가도 유병언은 안된다”고 대변인을 통해 공식 천명했다.
유씨가 교주도 아니고 신도도 아니고 금수원 대표도 아니라던 주장을 금방 뒤집은 발표였다. 그들은 10만 성도들이 하루씩 유씨를 숨겨가며 끝까지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검경 앞에 당당히 선언, 도전한 것이다. 더구나 유씨에 대한 신고 보상금 5억원을 빗대어 “성도들의 성금 5억원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분에게 드리겠다”는 말로 검찰을 조롱하기도 했다.
참으로 구원파란 아무도 못 말리는 특수집단이라는 생각이다.

반정부 흉담반위기 속 정치투쟁 감행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앙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국가개조’ 차원의 국민안전보장 제도확립을 약속했다. 이로부터 정부와 공직세계가 태풍의 쓰나미에 싸여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이 틈에 참사를 악용하려는 무리들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 유병언씨 도피 과정에 30대 묘령의 여인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 일가와 구원파가 이같은 시국을 교묘히 역용하여 ‘종교탄압’을 내세우다가 ‘정치투쟁’의 잔꾀로 버티기 하려는 수작인가.
정계은퇴 선언했던 친노(親盧)의 유시민 전 장관이 “박근혜가 되면 사람들 엄청 죽고 감옥 간다고 했지…”라고 선동했다. 서울시 7급 공무원이란 자가 박 대통령을 ‘박그네’, 국정원을 ‘걱정원’, 새누리당을 ‘개구리당’이라 비하하며 “죽기전에 스스로 나가라”는 악담(惡談)과 흉담(兇談)을 쏟아냈다.
또 시인, 교사라는 자가 세월호에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에게 “너희가 강남부모 밑에서 태어났더라면…”하고 저주와 분노를 부채질했다. 통진당을 비롯한 종북세력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부 종교계, 시민단체 등이 ‘박근혜 퇴진’ 등 무책임한 언행을 보여 준 것도 사실이다.
금수원이 정문에 ‘김기춘 실장, 갈데까지 가보자’는 도발적인 구호 위에 다시 붉은글씨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조롱 글귀를 덧 씌운 것이 무슨 뜻인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갈데까지 가보자’는 것이 야권과 시민단체의 정권퇴진 주장에 편승하자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더구나 ‘우리가 남이가’는 1992년 김영삼 후보를 도와주기 위해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나온 지역감정 유발사건 아닌가. 이를 정주영 후보측이 도청하여 폭로했던 사건을 끄집어 낸 것이 무슨 속셈인지 뻔하지 않는가.
더구나 어느 여신도가 박 대통령을 ‘당신’이라 호칭하며 “구원파를 말살하여 무슨 이득을 보느냐”고 떠져 묻기도 했었다.
유씨 일가와 구원파가 순수 종교활동을 넘어 정치권의 기류를 잘 알고 정치투쟁의 맥을 짚어 버티기 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유씨는 5공정권 때 승승장구 했고 민자당 재정위원으로 집권세력과도 밀접했던 전력이 있지 않는가.

막대한 ‘헌금경제’이익으로 결속투쟁

결국 유씨 일가가 검찰의 구속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거액의 현상금을 내 걸었지만 구원파가 동요없이 굳센 결속력을 보여 주는 것이 그만한 배경과 배후가 있지 않겠느냐고 의심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신앙으로 결속된 부분도 있겠지만 막대한 ‘헌금경제’와 관련된 이익과 생존권도 작용하고 있으리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검찰조사와 국세청의 탈세추적에 앞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유씨 일가의 ‘탐욕재산’ 환수에 대비해온 술수가 이를 말해준다.
유씨 일가 재산은 국내외 곳곳에 여러형태로 숨겨져 있는 것으로 연일 보도되고 있으며 부동산의 경우 세월호 참사 이전날짜로 소급하여 계열사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재산은닉 보호수단 등이 과거 여러사건을 겪으면서 체험한 법정투쟁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유씨의 장남 유대균씨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실패했을 때 그가 “우리 집안에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다”고 말했었다. 또 유병언씨가 오대양사건 관련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결 났었지만 신도들의 헌금관련 사기죄로 4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사실 아닌가.
검찰은 금수원 수색이 어려워지자 구원파의 명예회복 조건에 항복하여 “구원파와 유씨가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고 5공의 비호를 받은 적도 없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러고도 유씨 부자가 금수원에 숨어있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한 꼴이니 검경의 정보력과 수사력이 구원파보다 한수 아래라는 수모만 겪고 말았다.
과연 구원파와 오대양 사건이 전혀 무관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오대양의 박순자 대표가 열성적인 구원파이고 대전지역의 ‘개발비’ 모금책이었다는 사실은 사건직후 여러차례 보도된 바 있다.
더구나 검찰이 금수원 진입을 위해 구원파와 물밑 접촉한 과정에 대해서도 일말의 의혹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무렵 검경 수사팀이 세월호와 관련하여 한국선급을 압수수색 하기 전날 해경 간부가 문자로 알려준 범죄행위가 드러났었다. 한국선급이 압수수색을 피하고자 중요한 서류 보따리들을 대량 은닉 폐기시킨 장면이 CCTV에 기록되어 들통 났으니 행여 구원파와도 어떤 형태의 정보유통이 있었지 않았을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유씨의 ‘지존상’은 허상이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의 국법(國法)이 유씨와 구원파에게 짓 밟히고 조롱 받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대한민국 종교천국이 자랑스러운가 부끄러운 노릇인가. 아니 대한민국 종교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이단처럼 비치는 구원파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시시각각 좁혀지는 포위망 속의 유씨 부자가 언젠가 체포될 것이다. 그때 변장의 명수 유씨가 무슨 말로 자신을 합리화 할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달변가로서 종교탄압, 박해, 인권, 권력남용 등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죄를 지었다고 뒤늦게나마 고백할 것인가. 지금껏 지켜본 상황에 비춰보면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한 것을 남의 저주와 인간말살로 몰아 부치지 않을까.
유씨 일가의 온갖 탐욕과 불법이 거의 다 드러나고 있는데도 구원파 주류가 끝까지 그를 지존으로 섬기려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종교적 신앙일까, 헌금경제와 관련된 생업(生業) 때문일까. 어떤 경우이든 구원파가 오해하고 착각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면 좋겠다.
횡령과 배임 등 유씨의 범죄 혐의와 순수한 구원파 신도와는 별개로 갈라져야 한다. 보복이나 경제적 피해가 두려워 구원파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10만 성도들의 이름으로 유씨의 호위무사가 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업 일수는 없다. 구원파 왕국의 ‘지존’은 허상이었음을 한시라도 빨리 깨닫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79호(2014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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