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은행 뿌리···후발 신한은행 흡수

▲ 한성은행 본점 영업소 신축(1912.7.15)

근대 은행사(銀行史) 기록물의 국가지정 관리를 계기로 국내 최고(最古)의 조흥은행(朝興銀行) 109년사가 끊어진 사실이 아직도 쓸쓸하고 아쉽다. 경제풍월 2006년 2월호는 ‘조선이어 일어나라’는 조흥의 가문을 못 지켜 ‘민족은행 109년사 통곡’이라고 보도했었다.

최고(最古)은행사 유실
조흥(朝興) 109년사
한성은행 뿌리···후발 신한은행 흡수
일제, 8.15, 6.25 겪고 IMF 때 추락

후발 신한이 민족은행 109년 흡수

지난 2006년 4월 신한(新韓)은행이 조흥은행을 인수하여 뉴신한으로 출범했다. 창립 24주년의 후발은행이 국내 최고 109년사의 조흥은행을 흡수했으니 시대와 세월의 형벌이라고나 해야 한다.
조흥은행은 일제하의 민족계 은행으로 출발하여 8.15의 혼란과 6.25 전시경제의 상처를 딛고 일어섰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여신의 파고를 이겨내지 못했다. 1997년 조흥은 창립 100주년을 넘기고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으로 몸부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 1962년 조흥은행 청주지점 앞-군사정부의 화폐개혁 발표로 보유하고 있던 화폐를 신권으로 교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

마지막 단계에 ‘신한조정통합추진위’가 조흥이란 명칭의 존속을 여러 차례 논의했지만 국내은행 혁신을 가져온 ‘신한은행 방식’에 밀려 이름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변화와 혁신의 105년사’(1897~2001)와 신한금융지주그룹 발전사의 일부분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일본계 대응 민족계 한성은행

사라진 조흥은행의 뿌리인 순수 민족계 한성은행(漢城銀行)은 1897년에 설립됐으니 조흥은행이 지금까지 생존했다면 올해로 117주년을 맞는다.
한성은행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세제도가 현물납에서 금납(金納)제로 바뀌고 일본계 은행의 국내진출로 경제침략이 본격화되자 상공인들과 지사형 관료들에

▲ 긴 역사만큼 여러 일화도 남아있다. 초기 한성은행에 자신이 타고온 당나귀를 대출 담보로 내놓겠다는 상인의 모습.

의해 발족됐다. 당시 탁지부(度支部) 대신과 탁지부 고문 J.M.Brown의 자문을 거쳐 한성은행 규칙을 제정, 탁지부 인가를 받아 설립됐다.
초대 행장은 관료출신의 김종한(金宗漢)씨가 맡아 일본계 은행과 힘겨운 경쟁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1903년 2월에는 공립(公立) 한성은행으로 변경코자 청원서를 제출하여 탁지부의 승인을 받고 2대 행장으로 이재완(李載完)씨가 취임했다. 다시 1906년에는 주식회사 한성은행으로 개편하여 처음으로 수원지점을 개설했다.

▲ 1980년대 초반 서울 광교의 조흥은행 본점

1912년에는 한일합방을 계기로 자본금을 대폭 증자하고 경성부 남대문통 1정목(丁目) 14번지에 서구식 신사옥을 건립했다. 1914년 세계1차 대전 때는 전시특수로 지점과 출장소를 확대했고 1918년 12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동경지점을 개설했다. 그러다가 전후 경기하락에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으로 일본경제가 극도로 침체해지면서 한성은행도 경영위기를 맞아 1927년 4월에는 휴업을 단행했다.

8.15, 6.25 다 겪고 IMF 때 추락

1937년에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켜 전시금융체제로 돌입했다. 총독부가 민족계 은행의 통폐합을 강요하여 한성은행이 동일은행계를 포함한 민족계 9개 은행을 통합하여 조흥(朝興)이라 이름 지었다.
당시 한성은행 계열은 해동은행, 구포은행, 주일은행, 대구은행, 동일은행 계열은 한일은행, 호서은행, 동래은행, 호남은행 등이었지만 이를 민족계가 1943년 10월 1일자로 조흥은행이 된 것이다.
8.15 해방으로 일제가 물러간 후 조흥은행은 미군정으로부터 귀속재산 관리 수납 대행기관으로 단독 지정되어 적산(敵産)처리 역할을 수행했다. 6.25 전쟁 때는 피난수도 부산에 전시영업 했지만 전쟁피해액이 너무나 막대했다.

▲ 2006년 조흥은행과 신한은행의 합병으로 서울 조흥은행 본점 외벽의 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그 뒤 1957년 민영화 과정을 거쳐 1970년대 경제개발기의 산업자금 공급역할을 수행했지만 IMF 구조조정기를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한보철강 부도사태로부터 삼미그룹, 진로그룹 등의 연쇄부도로 9조원이 넘는 부실여신 여파로 쓰러지고 말았다.
반면에 조흥은행을 인수한 신한은행은 2006년 4월 1일, 총자산 163조원, 임직원수 1만1,400명, 지점수 964개로 국민은행에 이어 국내 2위로 급부상했다. 비록 신한은행으로 개가(改家)하여 팔자를 고쳤노라고 자위할 수 있겠지만 조흥(朝興)이란 역사성 깊은 은행명칭이 사라진 것은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을 지금도 지워버릴 수가 없는 심정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0호(2014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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