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적 공원화 서둘라 했건만

▲ 아차산성

고구려 군과 백제 군이 격돌했던 서울의 아차산에는 ‘앗차, 두 번 실수는 안돼’라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
특히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네 변방의 역사로 격하시키며 영토 야욕을 보여주고 있을 때 ‘아차산을 사수하라’는 고고학계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린다.

‘앗차’ , 두 번 실수는 안돼
아차산을 사수하라
고구려 유적 공원화 서둘라 했건만
친중 외교에 동북공정 날벼락 맞아

명종의 ‘앗차, 짐의 실수로다’

조선조 명종 때 점술이 귀신과 같다는 홍계관에 관한 소문이 궁궐로 전해졌다. 어느 날 명종이 그를 불러 자물쇠로 굳게 잠근 궤짝 속에 “뭣이 들어있는지를 맞춰보라”고 명했다.
알아맞히면 큰상을 내리지만 못 맞추면 목을 자르겠다고 일렀다. 왕명이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내시와 상궁들마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지만 홍계관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아뢰었다.
“궤짝 속에는 쥐가 들어있사옵니다”
“몇 마리가 들어있다는 말이냐”
“두 마리, 아니 세 마리 올시다”
왕이 자물쇠를 열라고 명했다. 궤짝 안에는 쥐가 두 마리 밖에 없었다. 왕이 크게 진노했다.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지엄한 왕명을 감히 누가 어기랴. 곧 홍계관은 포졸들에게 끌려 광나루 봉화대 아래 형장으로 묶여갔다. 끌려가면서도 홍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겼다.
“거참 이상하구나, 분명 두 마리는 아니고 그렇다고 세 마리도 아니니…”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홍은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었다.
명종은 죄인이 끌려 나간 후 암컷 쥐의 배를 갈라보라고 명했다. 뱃속에는 쥐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앗뿔사 이를 어쩔고… 짐이 실수했구나”
명종은 급히 선전관을 보내 홍을 살려오도록 명했다. 선전관이 말채찍을 가하며 형장 가까이에 이르러 “어명이요, 잠시 기다리시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목은 잘리고 난 뒤였다. 국왕은 실수할 운이었고 홍은 죽을 운이었다. 이로부터 “앗차, 짐의 실수로다”가 아차산으로 바꿨다는 전설이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

고구려사 왜곡으로 영토 야욕

역사가 ‘앗차, 두 번 실수는 안된다’고 했지만 정부의 서툰 외교정책이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과 영토 야욕에 걸려든 꼴이다.
“모택동을 존경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멀리 하려고 입씨름을 벌이며 친북 친중정책 일변도로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을 때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위대한 광개토 대왕과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변방 역사로 격하시키고 있다.

▲ 아차산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물

중국 정부는 또 우리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일대에 오성기 깃발을 펄럭이며 영토에 관한 탐욕을 거의 노골화 하고 있다.
중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어떤 외교적 언사로 해명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네 귀에는 외교적, 정치적 발언이 귓전에 들리지도 않는다.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미 고구려 건국 시조에서부터 역대왕의 초상을 한족 얼굴과 복식으로 그려 그들의 지방 정부에 지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고고학계에서는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아차산 보루를 발굴 조사하고 이곳에 고구려 역사박물관을 만들고 공원화해야 한다는 종합대책을 당국에 건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친북, 친중정책에 매달려 고구려 역사 이야기마저 꺼내기를 금기로 여겨왔다. 중국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이상한 외교의 실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동북공정 반박할 중요사료

고려대 최종택 고고학 교수는 지난해 신문 칼럼을 통해 아차산에서는 1450년 백제 군과 고구려 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고 지적하고 이곳 고구려 역사의 발굴 보존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백제 군이 한성을 뺏기고 웅진으로 쫓겨 갔다가 다시 한성 탈환을 위해 이곳 아차산 보루를 기습 공격한 전투였다.
백제 군의 용맹으로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를 지키던 병사들은 전멸하고 남은 군대는 황급히 도주했다. 이 전투 현장의 발굴을 통해 고고학계에서는 고구려 군의 편제와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출토물을 발견했다. 디딜방아도 발견됐다.
1997년 아차산 제4보루에서는 토기류 538점, 칼과 화살촉 등 전쟁유물 319점이 발굴되고 99년 발굴에서는 시루봉에서 옹기, 장동호, 화살촉 등 400여점이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아차산 보루가 사적 455호로 지정될 수 있었으니 고고학계의 공적이 적지 않았다. 고고학계에서는 이곳 고구려 역사의 복원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중요한 반박사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리시가 고구려 공원화 추진

그동안 정부의 고구려 역사 발굴과 보존 대책은 너무나 미흡했다. 그동안 구리시와 서울시의 지원으로 7개의 보루를 조사했지만 보존을 위한 종합 대책은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차산 보루 가운데 5곳은 군영 헬기장과 참호시설로 원형이 무너지고 나머지도 등산로와 체육시설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곳 일대를 사적공원으로 조성하고 기념관과 박물관을 짓고 한강 남안의 백제 유적지와 연계시켜 백제와 고구려 역사 탐방 코스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구려 역사를 일방적으로 왜곡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 후 경기도 구리시가 아차산 고구려 유적지 공원화 사업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2011년까지 총 4천억 원을 들여 구리시 아천동 151-1 일대 20만평을 고구려 유적 테마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이다. 구리시는 이를 위해 금년 내로 그린벨트 지역을 도시자연공원지역으로 용도 변경하고 국가지정 문화재 및 시·도 지정 문화재 보존을 위한 박물관 건립을 위한 정부의 승인절차와 토지매입, 민간 투자신고 절차 등을 밟겠다는 방침이다.

성곽, 보루 복원 등 역사박물관

아차산 고구려 유적 공원에는 고구려 성곽과 보루를 복원하고 고분벽화도 재현시키고 고구려 역사박물관을 건립,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 광장을 조성하고 왕릉도 복원할 계획이다. 또 광개토 대왕 광장에는 고구려 생활 체험촌, 장수왕 광장에는 전투 체험장과 전통 무예 체험관을 설치하여 관광코스와 연계시킬 계획이다.
구리시는 고구려 공원화가 조성되면 인근의 조선왕조 역사 교육 특구, 구리시 갈매동에 조성되는 디지털 영상산업단지, 한강변의 코스모스 단지, 수목생태공원 등과 함께 역사문화 관광단지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기회에 아차산을 보존하여 정부가 앗차, 두 번 실수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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