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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수필] 프란치스코 교황님, 대한민국 축복 그뒤
  • 김숙(본지 상임편집위원)
  • 승인 2014.08.19 09:33
  • 댓글 0

세상일을 겪다 보면 누구든 간에 얼마만큼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풀리지 않는 매듭을 저마다 하나 이상씩은 갖고 있게 되어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대한민국 축복 그뒤

글/ 金 淑 (김숙 본지 상임 편집위원)


어찌 보면 세상이라는 시장 안에는 온갖 문제들이 상품으로 널려있고 곳곳에 지뢰도 깔려있다. 그것을 밟지 않으려면 징검다리 건너듯 요령 있게 발을 내디뎌야 한다.

▲ 프란치스코 교황

그러나 세상사가 어디 그렇게 만만하던가... 제 깐에는 요리조리 꾀쓰며 잘 버티어내고 있는 듯해도 어느 순간 삼태기로 쏟아 붓는 돌발사태의 세례를 받곤 하니 말이다. 내 발로 밟지 않고 내 손가락으로 콕 찍어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문제’ 라는 상품이 제 스스로 주인이라 여기고 따라붙는 데야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손사래를 치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나는 네 주인이 아니다”, “다른 주인을 찾아가라”고 한사코 밀어내도 이미 때는 늦었고 그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여기까지는 또 그럴 수 있다. 말 그대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뢰가 바로 옆에서 터지는 바람에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신체의 한 부분을 절단해야 하는 불행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변수를 완전히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괴변인 듯 말장난인 듯 듣기에 따라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는 있겠으나 이 차시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문제를 누가 본인의 것이라고 선택 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대명천지에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용서할 것인가

올 상반기의 나라 사정만 해도 그렇다. 절대로 원한 바 없는 문제는 여전히 얽혀 있고 아직도 복잡하다. 사안이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미궁에 빠져 오리무중인 것들도 허다하다. 입에 올리자니 지긋지긋하고 떠올리자니 진절머리가 난다. 이 쯤 되면 한계상황의 돌입인 셈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긴 하다. 아픔이나 문제나 일정 부분 사람을 단련시켜 준다는 말도 맞다. 담금질을 해주는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줌도 거의 확실하다. 다만 상처가 깊어지고 치유되지 않은 채 너덜난 세월만 연장된다면 나중에는 마음이나 기운이 꺾여 중병을 앓게 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죽은 사회가 아닌 이상 언제든 쟁의는 있을 것이고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 개개인의 의견 또한 분분할 것이며 자연 다른 색깔로 표출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와 내가 무조건 다르다는 1차원적인 차별의식이 아니라 저변에 깔려 있는 건강한 정신이다. 그 점이 핵심이다.
필자는 정치적 식견이랄 게 없는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무한 상태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빨간색도 노란색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호전적 애국주의자’ 라는 사실이다. 다수의 힘을 믿으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정치에 관한한 일개 무지렁이에 불과하나 국민의 다수가 선택한 통치자에 대한 기본자세란, 일일이 드러나지는 않아도 물밑에서 베이스캠프를 다져 힘을 북돋워주어야 함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아버지와 반목하는 자식이 잘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그런 가정이 평화로울 수도 없다.
또 얘기하자면 청문회도 그렇다. 으레 그 수준이 그 수준이기도 하거니와 어제와 오늘이 뾰족하게 달라질 기미가 없으니 딱히 시점을 못 박아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우선 안하무인격인 국회의원의 질의를 차마 눈뜨고 못 보겠다. 상대를 끌어내려 처참하게 짓밟으려는 치졸함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다는 식의 정신적 미숙함이 역겹다. 그런가 하면 한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책임져 보겠다는 사람이 국회의원 앞에서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우스꽝스러운 응답도 목불인견임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라의 판세에 회의적이다. 신문을 뒤적여도 TV 뉴스를 봐도 매일반이다. 용케 숨어 가공할만한 몸집을 키운 부조리가 곪을 대로 곪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때로는 시한폭탄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활화산이기도 하다. 그런 탓이 컸음인지 교황의 방문이 몇 갑절이나 반가웠다. 말 그대로 축복이라 여겼다.

교황이 떠난 자리의 신드롬들

마음으로는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님! 우리나라의 사정은 이렇습니다. 굽어 살펴주소서” 라며 낱낱이 고해성사를 한 바 있다.
교황이, 우리나라의 어수선한 주변을 말끔히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상황을 총체적으로 평정하고 종결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교황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었다. 이렇듯 교황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던 심정은 앞서 말 한 그대로를 사실로 믿겠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촌철살인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받아들이면 될 성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위로받기 바란다. 어떤 의미로든 가슴에 울림을 받아 특히 정치일각에서는 정당의 갈래를 초월하여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흩어져 있는 문제는 물론 남북관계에까지 영향력이 미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청빈, 겸손, 소박, 소탈, 화합, 평화... 의 표상인 교황의 행보를 눈여겨보며 “부자로 사는 수도자의 위선이 교회를 해친다”는 말처럼 물욕은 얼마나 부질없고 피해가야 하는 사회악인지를 다시 꼼꼼히 짚어 본다. 물욕만 내려놓으면 문제 풀기는 식은 죽 먹기일 수 있다.
사사건건의 문제는 대부분 물욕에서 비롯되고 죄 없는 사람들의 무수한 피해, 비록 극소수이긴 하나 자기가 원하는 자리의 고지를 코앞에 두고도 끝내 피할 수 없었던 초라한 낙마...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 뒤에는 영락없이 물욕이라는 문제가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물욕을 내려놓아야 함일 것이다. 물욕으로 가득 찬 추악한 인면수심으로는 제 아무리 그럴싸한 말과 얼굴 표정을 꾸민다 한들 공염불일 게 뻔하다.
더 이상은 사리사욕을 꾀하기 위한 부조리를 부당하게 눈감아 주거나 부끄럽게 동조하거나 비겁한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처리하려는 음흉한 악습의 고리를 철저히 뿌리 뽑고 종식시켜야 한다. 그런 후에 한 켜 한 켜 퇴적되어가는 지층이 정의로워지기를 기대하며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다.
5일간의 일정을 마친 교황이 로마로 떠났다. “비바 파파” “교황만세” 천주교 신자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열광했고 감동했다. 교황이 떠난 자리에는 신드롬이 무성하다. 곧 신화처럼 살아나 모든 사람들에게 전승되고 계승될 것이다.
다시 우리만 오롯이 남았다.
추석이 다가온다. 지그시 눈을 감고 옛 기억 속을 걸어본다. 길게 땋은 머리끝에 드리운 빨간 댕기도, 손에 손을 꼭 잡고 돌아보았던 원무(圓舞)도 그리워진다. 올 해는 다른 해에 비해 추석이 빠르다던데 토실토실한 밤이며 빛 고운 햇과일들을 미리미리 골라봐야겠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1호(2014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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