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공항까지 나가서 교황을 마중했다. 이례적인 예우다. 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작년 3월 19일 교황 착좌식에 정부 대표를 보내 친서를 전달한 것을 포함, 모두 다섯 차례나 방한을 요청하는 뜻을 밝혀 보냈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의 교황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여성 대통령시대
어디 騎士 없나요


글/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현 논설고문)

교황 마케팅, 이런 것 아니었다

취임 초의 대통령으로서 순방외교에 나서거나 주요 국가 원수를 초청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외교력을 과시하고, 이를 통해 지지기반을 강화하려 한다고 해서 전혀 흠 잡힐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삼아 이런 노력을 평가절하하려는 사람들의 심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고 한심하다.
교황의 방한을 더 반기고 더 기대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한국 천주교 교회와 그 지도자들, 그리고 540여만 명의 신도들이다. 이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교황의 방문에서 큰 힘과 위안을 얻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로 구성된 ‘십자가 순례단’은 15일 대전에서 교황을 만나 지고 다녔던 십자가를 전달했고, 교황은 이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황에게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이 치유되도록 특별법 제정에 정부와 의회가 나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압박’요청을 하기 까지 했다.
이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의 가슴에는 유가족들이 전해 준 노란리본이 달려 있었다. 16일, 124위에 대한 시복미사에 앞서 교황은 광화문 광장에서 33일째 단식 농성 중이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났고, 고 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의 손을 잡아줬다. 17일에는 주한 교황청 대사관에서 고 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의 세례식을 집전하기도 했다.
교황과는 달리, 박 대통령은 오히려 희생자 유족들로부터 원망을 받는 처지가 되어 있다. 그는 이제까지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희생자 가족들은 대통령이 아닌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런 박 대통령에 대해 교황 마케팅?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흠을 잡더라도 그럴싸한 말로 해야 한다.

‘산 넘어 또 산’ 연속아닌가

일찍이 신라시대에 3명의 여왕이 있었다. 가장 앞섰던 이가 선덕여왕이다. 사학자 이종욱은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은 성골 왕의 거주 구역인 왕궁에 살며 성골신분을 유지하였기에 성골로서 왕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신라가 한국인의 오리진이다). 골품제의 질서를 지키려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것이겠는데, 그 점을 전제로 한다 해도 ‘여왕 탄생’은 인식의 혁명이었다고 할만하다. 왕족과 귀족들로서는 칼로 맞서는 게 쉬울 수도 있었겠지만, 여왕을 받아들이고 그에 복종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에 앞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안팎으로 거부세력도 만만치는 않았을 듯하다. 대국을 자처하고 있었던 당나라는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나섰다. 삼국유사에 선덕왕 지기삼사(知機三事: 기미를 알아챈 3가지 일)가 실려 있다. 그 첫째가 모란그림 이야기다. 당나라 태종이 진홍·자주·백 등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냈다. 선덕왕이 “이 꽃은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신하들이 어떻게 아셨느냐고 묻자 “꽃은 있되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음을 알았는데, 이는 당나라 임금이 내게 배우자가 없음을 업신여긴 것”이라고 말했다(삼국사기에는 공주시절의 일로 기록돼 있다).
선덕왕 12년, 신라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 백제의 침범으로부터 나라를 구해줄 군대를 빌려달라고 호소했다(삼국사기). 이에 당 태종은 세 가지 선택지를 내놓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친척을 신라의 임금으로 삼는 방안이었다. 임금이 여자여서 이웃나라가 경멸하는 것이라면서….(그렇게 신라의 여왕에 대해 모욕을 주었던 당 태종은 자신이 총애했던 무미(武媚)가 훗날 통치권을 찬탈, 황제 노릇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 때와 경우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역사적 대사건이기에 충분하다. 다만 야당과 재야운동권의 투쟁본능을 누그러뜨릴 정도는 못되었던 모양이다. 취임 초기부터 ‘박근혜 하야’ 피켓을 든 사람들이 거리와 광장에 모여들었다. 야당은 ‘대선불복’은 아니라면서도 동참했다. 제1야당의 대표는 서울광장에 텐트를 치고 듣도 보도 못한 ‘노숙(露宿) 투쟁’ 퍼포먼스를 45일간이나 벌였다.
시련은 끝날 줄 몰랐다. 수학여행단을 태우고 제주도로 가던 연안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 304명이 사망·실종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박 대통령은 사고 현장으로, 실종자 가족들의 머물고 있던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합동분향소로 뛰어다녔다. 사과를 하고 함께 눈물도 흘렸다. 그런데도 여론은 냉담했고, 야당들은 공세의 고삐를 죄었다. 인사 난맥상이 지지도 하락을 부채질한 것도 사실이다.

어디 신사도 騎士도 없나요

이 와중에서도 여당인 새누리당은 6.4지방선거에서 이긴 듯 비긴데 이어 7·30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대통령의 리더십 회복에 다소 힘을 보탰다. 그러나 상황은 꼬여만 갔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 발견 이후 더 복잡해진 세월호 수사, 군내 총기 난사사건, 병영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사건 등 국민을 경악케 하는 온갖 사건 사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다. 경제와 민생 회생 정책은 여야의 정쟁에 발목 잡힌 채다. 북한은 미사일을 앞세운 병정놀이에 여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좀 누그러지기는 했으나 이에서 힘을 얻은 측은 아무래도 박 대통령이 아니라 그를 반대하는 측이라는 인상이 짙다.
박 대통령의 시련은, 어쩌면 퇴임하는 날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야당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이 타협 화해하고 함께 수레를 밀어줄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당 내에서도 견제·비판세력이 늘어날 수 있다. 더 시간이 가면 관료 등 공직자들도 ‘2017년 대선’ 쪽으로 관심을 돌릴 게 뻔하다. 이른바 레임덕은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에게는 숙명 같은 것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정치권의 야박성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아무리 여야가 서로 진영을 달리해서 정권 쟁취 경쟁을 벌인다고는 하지만 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 주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도리이고 의리가 아닐까? 더욱이 여성 대통령에게!

▲ 취임 초기부터 ‘ 박근혜 하야’ 피켓을 든 사람들이 거리와 광장에 모여들었다.

공직선거법은 제47조 3항에서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선거 때 후보 절반은 여성을 공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역구 선거의 경우도 여성에게 30%이상을 할애해야 한다. 당내 지도부 구성에서도 여성 배려는 강조된다. 아직도 여성이 정치적 약자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헌정사상 처음으로 당선된 여성 대통령에 대해서는 오직 공격본능만 넘실대는 분위기다.
여성 대통령이어서 무조건 봐줘야 할 까닭은 없다. 대통령보다는 국민이 더 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각별한 배려는 소망스럽다. 그래야 제2, 제3의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더 수월하게 갖추어질 것 아닌가. 여성대통령의 성공이야 말로 여성이, 배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력으로 정치적 남녀평등을 구현할 첩경이 된다. 여성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에 신사도·기사도 그런 게 발휘되면 안 되는 걸까요, 정치인 여러분?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1호 (2014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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