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여인 ‘ 꿈같은 사랑’ 에 의혹과 논란만의 죽음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4년 09월 06일자 홈페이지 <인터뷰>면에서 ˝구원판 교주 답지 않은 무연고 노숙자, 兪炳彦(유병언)왕국˝(이)라는 제목으로 "구원파 교주 유병언(兪炳彦) ...구원파 왕국의 교주","사업체에 자신의 이름은 올리지 않고 ‘얼굴 없는 오너’로 종교 사업을 조종하고 구원파 왕국을 소유하고 지배했다","유병언이 도피하고 있을 때 구원파의 본산 금수원은 너무나도 기세등등했다. 교주의 책임은 덮어두고 해경과 해수부 및 청와대를 향해 분노와 저주를 퍼부었다. 구원파가 포상금을 내걸고 교주 구원을 위한 모금도 했다."(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에 확인한 결과,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사업체를 운영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사업체의 경우 일부 신도들이 주식을 소유하거나 취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해당 교단은 유병언 전 회장을 교주로 추앙한 사실이 없으며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정상적인 기독교단으로서 특정 개인을 교주로 추앙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해당보도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4년 09월 06일자 홈페이지 <인터뷰>면에서 ""구원판교주 답지 않은 무연고 노숙자, 兪炳彦(유병언)왕국(이)라는 제목으로 ""구원파 교주 유병언(兪炳
彦)의 죽음은 외로운 노숙인 처지였다. 변사체를 자주 처리한 경험이 있는 순천경찰이 풀숲에 백골(白骨)로 누워 있는 “그가 설마 구원파 왕국의 교주일까”라며 짐작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세월호의 실질 오너로 300명이 넘는 희생을 가져온 국가적 참사로 온 국민이 낙심(落心)에 젖어 있을 때 그의 도피술은 신출귀몰에 비유됐다."",""세모그룹을 금방 번창시켰다가 부도로 망했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다시 청해진 해운 등 구원파의 사업그룹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사업체에 자신의 이름은 올리지 않고 ‘얼굴 없는 오너’로 종교 사업을 조종하고 구원파 왕국을 소유하고 지배했다"",""유병언은 오대양 사건과 연루된 혐의를 받았지만 끝내 혐의를 벗어나고 대신에 사기죄로 4년형을 살고 나와 사진 예술가로 행사했다. 그나마 ‘아해’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날려 국내외 명사들과 교류했기에 세월호 참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세월호의 불법·편법운항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면서 유병언의 진면목이 드러나 검·경의 추격을 받으면서 나라를 거의 쑥밭으로 만들고 말았다."",""유병언이 도피하고 있을 때 구원파의 본산 금수원은 너무나도 기세등등했다. 교주의 책임은 덮어두고 해경과 해수부 및 청와대를 향해 분노와 저주를 퍼부었다.구원파가 포상금을 내걸고 교주 구원을 위한 모금도 했다."", ""그의 내연녀 김혜경이 몰래 출국했고, 그 많은 구원파 무사들과 여인들도 한 명 없이 혼자 죽어갔다."",""구원파 왕국 내의 그는 지존(至尊)으로 거침없이 군림하고 통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업’이란 명목으로 헌금을 모아 이를 사업종자돈으로 활용하여 자신과 측근들의 왕국으로 축성했다. 여비서와 내연녀 등 많은 여인을 거느리고 호위무사 격의 경호팀도 따랐다. ...마지막 도피길에는 동행이 아무도 없어 돈 한 푼 챙기지 못한 채 헐레벌떡 매실밭 수풀로 피했다가 구원파 왕국의 꿈마저 숨을 거두었던 사실을 말해준다.""(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 측에 확인한 결과, 유병언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주식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 천해지의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으므로 세월호의 실질적 선주가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1981년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설립 당시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후로도 목사로 재직하거나 교주로 추앙받은 사실이 없으며, 종교와 사업을 일치시키는 주장을 하며 기독교복음침례회교인들의 헌금을 유용하거나 이를 사업확장에 사용한 바 없으며, 뜻이 맞는 교인들과 사업체를 운영하고 고용한 사실은 있으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직책을 가지거나 지분을 소유하지 않고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유병언 왕국이라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1987년, 1989년 그리고 1991년 세 번의 검찰 수사 결과 유병언 전 회장과 관련이 없음이 확인되었으며, 이를 지난 5월 21일 검찰에서 공문을 통해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보도의 김혜경 씨를 비롯하여 여비서를 고용했던 사실이 없으며, 보도의 김혜경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바 없어 내연녀라고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유병언 전 회장은 경호원을 둔 사실이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바로 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구원파 교주 유병언(兪炳彦)의 죽음은 외로운 노숙인 처지였다. 명품 점퍼에 고가 신발을 신었다고 하나 겨울바지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죽은 모습이 무연고 행려병자쯤으로 비친 모양이다. 변사체를 자주 처리한 경험이 있는 순천경찰이 풀숲에 백골(白骨)로 누워 있는 “그가 설마 구원파 왕국의 교주일까”라며 짐작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구원파 敎主(교주)’ 답지 않은
무연고 노숙자
兪炳彦(유병언)왕국, 허망한 종말 무상하지 않나
돈·여인 ‘꿈같은 사랑’ 에 의혹과 논란만의 죽음

백골로 발견된 70대 노인의 객사모양

온 나라가 유병언의 도주를 뒤쫓고 있을 때 죽음 40일이 지나 검경 수사팀이 국과수가 “백골의 DNA가 유병언과 일치한다”고 연락하자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순천경찰이 지문 채취에 실패하여 대퇴부 뼈를 잘라 국과수에 보내 DNA 검사 하는데 40일이나 걸렸다는 설명이다.
그로부터 무연고 노숙인의 죽음이 다시 나라를 시끄럽게 소란 시켰다. 유병언의 삶이란 늘 세상을 흔들었지만 죽어서도 요란과 소란이 끝없이 겹쳤으니 결국 ‘유병언 다운 죽음’이라고 해야 할까.
세월호의 실질 오너로 300명이 넘는 희생을 가져온 국가적 참사로 온 국민이 낙심(落心)에 젖어 있을 때 그의 도피술은 신출귀몰에 비유됐다. 검·경 수사팀이 쫓기면서 조롱당하고 국민으로부터 무서운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고인은 죽어서도 ‘자살이냐, 타살이냐, 자연사냐’ 등등 온갖 논란을 몰고 왔다. SNS 상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고 심지어 죽은 이가 유병언이 아닌 가짜라는 소문도 떴다.

돈·명예·여인 사라진 ‘꿈같은 사랑’

젊은 시절의 유병언은 아이디어 넘치고 사업솜씨 비범하고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달변이었다. 세모그룹을 금방 번창시켰다가 부도로 망했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다시 청해진 해운 등 구원파의 사업그룹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사업체에 자신의 이름은 올리지 않고 ‘얼굴 없는 오너’로 종교 사업을 조종하고 구원파 왕국을 소유하고 지배했다.
유병언은 오대양 사건과 연루된 혐의를 받았지만 끝내 혐의를 벗어나고 대신에 사기죄로 4년형을 살고 나와 사진 예술가로 행사했다. 그나마 ‘아해’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날려 국내외 명사들과 교류했기에 세월호 참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세월호의 불법·편법운항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면서 유병언의 진면목이 드러나 검·경의 추격을 받으면서 나라를 거의 쑥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유병언이 도피하고 있을 때 구원파의 본산 금수원은 너무나도 기세등등했다. 교주의 책임은 덮어두고 해경과 해수부 및 청와대를 향해 분노와 저주를 퍼부었다. “기춘 대원군, 갈 데까지 가보자”고 도발했다. 각계 곳곳에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구원파가 포상금을 내걸고 교주 구원을 위한 모금도 했다.
10만 성도의 이름으로 끝까지 순교정신으로 그를 지키겠다는 호위무사의 용맹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밀항설과 망명설로 검경 수사팀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그의 내연녀 김혜경이 몰래 출국했고 장남이 출국하려다 실패하고 다른 자녀들은 미국과 프랑스로 도주했다. 이에 미뤄보면 이미 거액의 자금을 이용하여 해외로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추리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말짱 거짓이었고 그의 죽음은 초라했다. 한때 열성 구원파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유병언 답지 않게 허망하다”고 말했다. 그 많은 구원파 무사들과 여인들도 한 명 없이 혼자 죽어갔다. 그의 아이디어 작명으로 믿어지는 ‘숲속의 추억’ 별장 인근 매실밭 수풀속의 죽음 주변에는 소주병과 막걸리병이 놓여 있고 주머니 속에는 육포와 콩알 20개가 남아 있었다. 가방 속에는 그의 시심(詩心)으로 구원파가 암송했다는 ‘꿈같은 사랑’이 있었다. 모두가 무상과 허망 아니고 무엇인가.

▲ 소주 빈병 ▲‘ 꿈같은 사랑’ 이 적힌 천가방 ▲ 생막걸리 빈병 ▲ 육포 2봉지

독선적 집념, 확신에 천재성 더해

고인의 집념과 확신은 독선적이었지만 천재적인 면이 있었다. 그의 종교 사업에 후원자, 조력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있었다. 태권도로 단련된 몸매에 유기농과 스쿠알렌 등으로 100세를 훨씬 넘어 장수를 장담한 것으로 들었다.
구원파 왕국 내의 그는 지존(至尊)으로 거침없이 군림하고 통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업’이란 명목으로 헌금을 모아 이를 사업종자돈으로 활용하여 자신과 측근들의 왕국으로 축성했다. 여비서와 내연녀 등 많은 여인을 거느리고 호위무사 격의 경호팀도 따랐다.
그렇지만 그의 최후는 절대적 영웅의 죽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초라한 무연고 노숙자의 모습이었으니 얼마나 처량한가. 그의 죽음을 두고 자살, 타살, 자연사 등 논란이 많았지만 이미 80%가 백골화 된 상태에다 아랫배 부분에 구더기가 하얗게 끓어 인상착의를 전혀 식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온 다습한 기온에 비도 몇 차례 내렸으니 시신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순천별장을 압수수색할 때 그가 통나무벽 속에 은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때 체포된 여비서 신 모 여인이 유병언의 도피시간을 고려하여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나중에야 이를 실토했던 모양이다.
검찰이 현장을 다시 수색해 보니 실제로 유병언이 은신했던 벽장 속에서 현금 8억3천만원과 외화 16만달러가 발견됐다. 마지막 도피길에는 동행이 아무도 없어 돈 한 푼 챙기지 못한 채 헐레벌떡 매실밭 수풀로 피했다가 구원파 왕국의 꿈마저 숨을 거두었던 사실을 말해준다.

‘내가 나를 숨기는 비겁자가 됐나’

유병언의 사인을 두고 온갖 소문이 나돌면서 국과수가 그의 시신에서 뼈와 가죽, 지문 등 여러 갈래로 검사하고 형제들의 DNA와 비교하여 완전히 일치

▲ 유병언이 남긴 메모. 거울로 봐야 읽을수있게 작성되어 있다.

한다는 결론을 재확인했다.
그러니까 살아서 워낙 논란을 많이 제기했기에 죽어서도 시신마저 조각조각 톱질되어 화학약품으로 처리되고 혈육들과도 맞춰보는 절차를 거쳐야 했으니 서글프고 처량한 노릇 아니고 무엇인가. 고인은 부인과 아들 딸 4남매를 남기고 형제들도 많이 생존해 있지만 그의 장례는 누가 어떤 절차로 치르게 될런가. 부인은 구속되고 장남은 경북지역 어디엔가 숨어있다 잡혀 재판을 받고 있고 차남과 두 딸은 해외로 도피했으니 부친의 장례를 위해 자수하고 출두하여 상주 노릇이나 할런가.
고인은 생시에 많은 일을 벌이면서 많은 의혹과 논란을 남겼다. 또한 죽어서도 끝없는 의혹과 논란이 계속되니 유병언 문제의 끝이 아니라 확대 누적이 아닌가. 구원파가 이단·사이비 논란을 불러왔지만 결국 유병언의 삶 자체가 바로 논란이었다는 느낌이다.
고인이 도피생활 중에 거꾸로 쓴 메모가 A4 용지 31쪽 분량이라고 하니 비록 검찰소환에 불응하고 도주를 택했지만 나름대로 항변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았다고 짐작된다.
“나 여기 선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마음에 없는 잡기놀이에 내가 나를 숨기는 비겁자와 같이 되었네”, “연일 터지는 방송들은 마녀사냥 도를 넘어 구시대 인민재판의 영상매체로 진화되어…”, “광란한 히틀러의 하수인들, 거짓말들 미쳐 날뛴다.”
아마도 유서 없이 외로운 죽음을 택한 그의 고혼도 지금쯤 후회와 아쉬움을 달래지 못해 몸부림치지 않을까 짐작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1호(2014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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