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풍류정신

글/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우리 겨레의 풍류정신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풍류는 신명과 정한을 양대 축으로 하는 민족정신사와 통한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학문을 사랑하고 무술을 숭상하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이웃과 화목할 줄 아는 아름다운 기풍이 있었다. 또한 착한 행실을 권하고 나쁜 소행을 삼가는 것이 사람의 바른 도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모두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 민족 고유의 풍류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조선 이래 열국시대를 거치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근원이 하늘과 태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믿고 천신(天神)에게 제사지냈으며, 천지의 조화 속에서 인간의 도리와 본분을 다 하고자 노력했다. 우리 민족은 천손족(天孫族)이다. 하늘의 자손이요 해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우리 겨레가 고조선 이래 하늘-하느님을 최고신으로 받들고 백성이 모두 모여 하늘에 제사지내며 춤추고 노래하며 공동체 의식, 집단의 유대를 다진 까닭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손, 곧 천손족이란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옛 기록에 이를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고구려에서는 동맹(東盟), 동예에서는 무천(舞天)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명칭이 전해오고 있지는 않지만 하늘과 조상신에게 감사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은 뒤에 노래와 춤으로 결속을 다지려는 이러한 공동체의 축제는 고조선 이전 원시 부족시대부터 있었을 것이다.
부여의 축제인 영고는 해마다 본격적인 사냥철이 시작되는 12월에 베풀어졌고,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에 나라(도읍지)의 동쪽에 있는 수혈(遂穴)이라는 동굴에서 조상신을 모셔온 뒤 동맹이라는 국가적인 축제 한마당을 펼쳤다. 또한 동예에서도 해마다 수확이 끝난 10월에 무천이라는 천제(天祭)를 올리고 밤낮으로 모여서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고 한다. 마한·변한·진한의 삼한시대에도 해마다 5월에 파종하고 축제를 벌였으며, 10월에 수확한 뒤에도 거국적인 축제를 펼쳤다. 이때 천지신명과 조상신에게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주와 가무를 즐겼는데, 특히 춤을 출 때에는 수십 명이 무리지어 앞 사람을 따라가며 땅을 밟고 장단에 맞춰 온몸을 흔들었다고 한다. 또한 고구려는 해마다 3월 3일이면 낙랑의 언덕에서 사냥을 벌여 잡은 멧돼지와 사슴을 제물로 바치고 하늘과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축제를 통해 집단적으로 겨레의 뿌리인 천신과 개인의 뿌리인 조상신에게 제사올리고 자연과 어우러져 흥겹게 즐기는 가운데 흥과 멋이 넘치는 고유의 풍류정신을 형성했다. 이와 같이 상하, 귀천, 남녀, 노소의 차별 없이 모두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이요 풍류사상의 발현이었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 고대의 풍류정신이 유교, 불교, 도교 등 3교의 핵심 사상을 포용하여 효도, 충성, 선행, 무위자연 같은 도덕적 가치관으로 발전하였으며, 신라시대에는 화랑 세속 5계로 구체화하였다. 이에 대해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난랑비(鸞郞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그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3교를 포함한 것으로서 많은 사람과 접촉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孔子)의 주지요, 무위의 일에 처하여 말없이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老子)의 종지요,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만들어 행하는 것이 석가(釋迦)의 교화이다....-
최치원은 단군 이래의 홍익인간 사상을 포함하여 외래 종교 사상인 유 불 선 3교의 종지를 아울러 우리 고유의 풍류도-풍류사상이 형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최치원이 여기에서 말한 나라의 현묘한 도, 즉 풍류가 단순히 화랑 세속 5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민족 고유의 선도를 중심으로 여기에 3교의 사상을 더한 풍류도야 말로 민중을 교화하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며 난세를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하늘의 보살핌을 받는 천손족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해마다 천지신명과 조상신에게 감사하는 축제를 베풀어 더불어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흥겹게 놀기를 즐겼으니, 이 흥과 멋이 고유의 풍류도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체제가 씨족사회에서 부족국가 시대를 거쳐 왕권 중심의 왕국으로 발달하는 동안 축제와 놀이의 성격도 집단적인 문화에서 점차 소수 중심이며 개인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 민족 정서의 두 줄기 큰 흐름이라면 무엇보다도 흥과 한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집단적인 놀이문화에서 흥이 비롯되었다면, 한은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는 기록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와 <황조가(黃鳥歌)>가 전해주듯이 남녀간의 관계, 즉 사랑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에서 싹텄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사실 고대사회에서는 남녀간의 관계가 매우 자연스럽고 개방적이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남녀간의 사연이 이러한 사실을 잘 전해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사랑과 이별과 죽음 같은 사건에서 민족 고유의 정한이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로부터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민족 고유의 풍류정신은 열국시대를 지나 고려조와 조선조를 거치면서 수많은 풍류 명인을 통해 그 맥을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살다 간 시대와 방식은 모두가 달랐지만 이들은 현실의 고통을 풍류의 멋으로 슬기롭게 극복, 또 다시 난세를 당해 간고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3호(2014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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