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않으면 먹지도 말라’
一日不作 一日不食

글/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현 논설고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겠다며 베이징에 갔다. 그런데 국감보다는 뮤지컬 관람이 더 급했던 모양이다. 의원들은 지난달 13일 베이징에 도착해서 현대차 공장을 시찰하고 이어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금면왕조’를 관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뮤지컬은 베이징의 대표적 관광상품이라는데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 새정치연합 김성곤, 심재권, 이해찬, 김현(대리기사 폭행사건에 연루된) 의원 등이 이 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뮤지컬 관람이 그리 급했나

5개월 동안이나 국회를 공전시키다가 겨우 활동을 시작했다면서 의원들이 서둔 것은 국정감사였다. 밖으로만 돌던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 등원을 결정한 게 어쩌면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감은 특히 야당 의원들에게는 말하자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소속 상임위 소관의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공공기관 공기업 그리고 민간 기업에 대해서까지 호통을 칠 수 있는 기회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지위를 한껏 뽐내면서 그 위력을 스스로 확인하는 데는 이만한 계기가 달리 없다.
그 점 아주 이해 못 하겠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체면이라는 게 있다. 그만큼 쉬었으면 국민에게 미안해하는 시늉이라도 할 일이다. 그런데 의원들은 되레 과욕을 부렸다. 16개 상임위가 20일 동안 672개 기관을 감사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재벌 총수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싸고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보였다. 예의 호통도 자제하는 빛이 없었다. 해외 공관 국감 또한 어김없이 실시했다. 오래 국회를 공전시키며 노느라 힘들었으니 포상 외유를 가야겠다는 뜻이었을까?
지난 14일의 주중 대사관 국감은 3시간에 끝났다고 들린다. 국감과 뮤지컬관람, 어느 것이 목적이었을까? 비는 시간에 중국을 대표하는 공연을 본 것이니 이해해 줄 수 있지 않느냐고 역성드는 사람도 없지 않아 보이나 이는 경우가 아니다.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고 갔다면 국감만 하고 바로 귀국하는 게 도리였다. 뮤지컬은 후에 개인적으로 가서 보면 되지 않겠는가.

‘정치귀족’의 특권인줄 아는가

외유성 국감에는 정무위원회가 한 수 위였다. 금융감독원 해외 사무소를 감사한다는 명목으로 지난달 17~18일 1박2일 동안 베이징에 14명, 도쿄에 10명이 다녀왔다. 금감원 베이징 사무소에는 직원 2명이, 그리고 도쿄 사무소에는 3명이 근무하고 있다던가. 올 초부터 잇따라 터진 국민, 우리, 신한, 기업은행의 일본 도쿄지점 부당 대출 사건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는데 그렇다면 서울의 금융감독원에서 보고를 받을 일이었다.
현행 국감제도 그 자체도 문제다. 매년 일정한 기간을 정해 국정 전반에 대해 감사를 한다는 것인데, 굳이 이런 형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상임위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국회운영을 제대로 함으로써 상시 국정감사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텐데 정기 국감 방식에 집착하는 것은 정부에 대해 본때를 확실하게 보여줄 기회라는 상징성 때문일까? 아니면 국감이라는 행사를 벌여야 국회의원으로서의 위세를 과시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래도 국민의 눈치는 보이는지 내년도 의원 세비는 동결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말 기획재정부가 3.8%의 세비 인상안을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마자 국민들의 격한 비난이 쏟아졌다. 뭘 했다고 세비를 인상하느냐 해서였다. 그러잖아도 의원들이 추석 상여금 388만원을 날름 챙긴데 대한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비난은 당연한 반응이었다고 하겠다.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한들 이 판에 세비를 올리겠다고 할 일이겠는가.

국정 잘하면 세비탓 않는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당 혁신기구를 구성, 그 실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시기다. 그 이름값을 위해서라도 각성하는 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썩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난달 13일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 세비를 동결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당 최고위원회에 보고한 바 있다. 이어 15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의원총회에서 역시 세비 동결을 결의했다.
나쁘진 않지만 별로 자랑할 일은 못 될 듯하다. 지난 대선 당시에 여야는 세비 30% 삭감을 공약했었다. 그래놓고는 두어해 동결로 생색을 냈다. 그러다가 이번엔 정부 측에서 공무원 봉급 인상률에 맞춰 세비도 올리겠다는 안을 내놨으나 국회의원들은 이게 목에 걸려 못 삼키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물론 동결 또는 삭감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을 잘한다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날마다 당과 자신들의 이해에 얽혀 정쟁만을 일삼으면서 세비는 또박또박 받아 챙기는 꼴을 국민은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국회의원은 월급쟁이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봉사자다. 근대민주정치의 종가인 영국 의회의 전통이 그러했다. 하긴 그건 귀족정치의 연장이었을 수도 있다. 충분한 재산을 가진 귀족이나 부호들로서는 정치의 대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귀족들의 의무이자 기득권과 위상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전통은 서민들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가난한 사람도 의원이 되어 활동할 수 있으려면 금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영국 의회가 1911년부터 의원들에게 봉급을 지급하게 된 배경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국회의원 세비에 대해 지나치게 인색할 일은 아니다. 생활 걱정 없이 소신껏 활동할 수 있을 정도의 세비를 지급하는 것이 의회정치를 발전시키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두고보자 ‘무노동 무임금’ 약속

다만 이는 일하는 국회, 일하는 의원에 국한되는 말이다.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도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적용하는 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새누리당과 중국 공산당의 정당정책대화 발제를 통해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폐지하고, 과도한 세비를 줄여야 부패를 막을 수 있다”며 그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바람직한 구상인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국회에 등원해 열심히 일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소속 정당이 당리당략으로 개별 의원들의 등원을 가로막고 이들을 태업시키거나, 광장 혹은 거리로 내모는 데 있다. 따라서 등원을 거부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국고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조치가 동시에 취해져야 한다. 일하기를 거부하는 정당에 대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경비를 감당해줘야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 백장(百丈)선사(720~814)의 이야기다. 그는 90세가 되어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말려도 듣지 않자 제자들이 농기구를 감춰 버렸다.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면서 종일 굶었다.
일하지 않는 입에는 밥이 들어갈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대가가 주어져서도 안 될 일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삶의 대원칙이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다. 마땅히 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여야 공히 ‘당 혁신’을 공언하고 있는 만큼 적어도 이 ‘당연한 도리’만은 꼭 실천되도록 제도를 다듬어주기를 바란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3호 (2014년 11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