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와 JP 두 컷 사진이 감동

[원로 정치논객 칼럼]

YS와 JP 두 컷 사진이 감동
추억 ‘3김정치’에서
챙길 것은 무엇일까


글/ 鄭在虎 (정재호 헌정회 원로회의 부의장, 제8대국회비서실장, 9· 10대의원,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

▲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휠체어에 탄 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입원한 부인 박영옥 여사를 간병하고 있다.

일세를 풍미했던 두 사람이다. 그러나 끝자락의 뒷모습은 여느 노인의 음지(陰地)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름 석자에 각인된 삶의 음양각(陰陽刻)이 풍기는 진한 향취가 유별날 뿐이다. 요 얼마 전 신문, 방송에 실린 두 장의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JP의 부인간병, YS 차남과 부자유친

사진을 살펴보자. 김종필(JP) 전 총리가 허리를 다쳐 입원중인 부인 박영옥(85) 여사의 병상을 지키는 간병 사진이다. 뒤이은 또 하나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해를 넘긴 오랜 병고에서 몸을 일으켜 야윈 손가락으로 V자 포즈를 취한 장면이다.
망구(望九)의 JP는 거동이 불편하여 휠체어에 몸을 맡긴지 5년차. 병상 테이블 위에 물컵 하나, 조그맣게 조각낸 케이크를 올려놓은 접시 한 점이 놓여있다.
회복중인 부인의 식욕이 아직은 온전하지 못함을 식탁의 허전한 차림새가 눈치 채게 한다.
마주보는 노부부의 시선에서 고운 정 미운 정 64년의 긴 여정, 그 굽이마다에 걸려있는 애환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을 법도 하다. 애틋한 순애보의 현장. 보기에도 잔잔한 정감이 우러난다.
YS는 18개월을 폐렴과 씨름한 고된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차남 현철씨와 나란히 얼굴을 맞댄 그림은 부자유친을 돋보이게 한 인상적인 포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쳤던 민주투사 YS 젊은 날의 투혼이 오버랩(overlap)됐지만 그의 얼굴에서 왕년의 기백을 찾을 순 없다. 내일 모레이면 미수를 맞는 상노인이다. 몰라보게 수척한 YS에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인생 감동과 권력 무상의 색깔이 진하게 버무려진 두 장의 사진에서 사람들은 정치9단 3인방이 용호상박전을 펼쳤던 ‘3인3국지’(三人三國志) 그 갈피 속에서 3김시대를 새김질 한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서둘러 먼저 떠났지만 ‘옛날’은 남는 법. 고전(古典)의 생명력이 긴 까닭이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퇴원을 앞둔 아버지의 건강하신 모습입니다”라는 글과 사진을 공개했다.

3김 이후 ‘빅브라더’ 없는 국회

만년(晩年)에 만추(晩秋)가 겹친 탓인가. 가슴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 이지만 오늘의 여의도 정치쪽으로 생각을 옮기면 금세 가슴이 답답하다.
국회 위상이 ‘필요악’으로 내몰렸다. 필요악이란 ‘없는 것이 바람직하나 부득이 그냥 둔다’는 뜻이 아닌가. 언필칭 민의의 전당이 오죽하면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게 됐는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5개월간 여의도 정치가 연출한 의사당 안팎 풍경은 ‘다수결’의 헌법적 가치가 실종된 현장이었다.
국회는 150여일 동안 무주공산 딱히 세월호 유가족의 ‘신탁통치’ 하에서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참사를 애도하는 노란리본은 한때 유세(有勢)를 뽐내는 표식으로 통했다. 목청의 크기가 대세를 주름잡는 풍조가 곳곳에 넘쳐흐른다.
‘떼법’의 권력화가 새 풍속도로 부상했다. 운동권 출신의 ‘홍위병’들이 막말 퍼 나르기의 선봉에 섰다.
되먹지 못한 욕지거리가 판치는 한 여의도 정치는 끝내 성난 민심의 ‘역모’(逆謀)앞에 무릎을 꿇을지 모른다.
알량한 선진화법은 무능국회를 담보하는 보증수표로 진화했다. 집권당과 소수당의 한계를 단숨에 부셔버린 괴력을 과시한다.
사사건건 대통령을 걸고넘어지는 ‘막가파 투사’들의 굿판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정당정치의 파행적 행태를 바로 잡을만한 리더십은 도통 부재(不在)다.
국회해산, 의원 특권포기, 의원의 무노동무임금, 의원소환제, 의원총사퇴론 등 요란한 구호가 숲을 이루는 까닭은 분명하다. 정치불신의 폭발음인 것이다. 정치판을 어지간히 들여다 볼줄 아는 사람들은 개탄한다. 길 잃은 오늘의 여의도 정치판에 ‘군계일학’(群鷄一鶴=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의 리더십이 없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 악수하는 3김 -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악수를 하고 있다.

3김시대 ‘온고지신’ 생각난다

아래 위 할 것 없이 동상이몽의 싸움닭이 무리지어 있을 뿐. 출중한 맏형 구실의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없다는 현실적인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나같이 도토리 키 재기의 올망졸망한 면면이 아닌가.
사진 두 컷에서 ‘3김정치’를 추억하는 분위기가 사이버 공간을 달군 까닭은 여의도 정치에 대한 맹렬한 현실비판의 반증이다. ‘온고’(溫故)에서 ‘지신’(知新)하라는 또 하나의 바람을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주의를 낳았다는 비판이 분명 뜨거웠지만 지독한 싸움판에서도 끝내 품격과 금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뚜렷했던 ‘3김정치’의 언어품격을 오늘의 시점에서 복기해 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YS의 말투는 투박했다. 말로 장난치는 꼼수 따위는 없다. 직선적인 그의 언어 속에서 감칠맛을 찾을 순 없다. YS어격(語格)은 짜임새보다 정직성에 무게를 두는 육중함을 품고 있다.
DJ는 흔한 말로 서생(書生)적이다. 여기에 상업적인 색상을 교직시켜 말을 구사했다. DJ화법의 특징은 짐짓 돌아돌아 집으로 가는 귀납형이다. 듣는 사람의 인내심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았다.
JP언어의 특색은 시정(詩情)을 곁들인 말의 격조에 있다. 말을 굴리는 행간에 동·서를 아우르는 고사(故事)와 클래식(classic)이 말의 운치를 살리는 양념으로 등장한다. 끌어당기는 말의 깜냥이 돋보인다. 그의 말에는 정제된 율동미와 더불어 순간포착의 기민성이 공존한다. 결코 말 뼈를 놓치지 않는 JP 특유의 언중유골의 전형이다.
‘3김시대’의 향수 속에서 건져 올려 오늘에 되살릴 길은 없을까. 정치권의 몫이다.

▲ 연설하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 (오른쪽) ▲ 취임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3호(2014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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