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미국 작품 감독 : 오슨 웰스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 ①]

시민케인 (Citizen Kane)
1941년 미국 작품 감독 : 오슨 웰스
출연 : 오슨 웰스. 조셉 코튼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세상엔 정말 영화가 많기도 하다.
1895년 영화가 발명된 이래 120년- 그간 전 세계에서 제작, 상영된 영화는 줄잡아 극영화만 100만 편에 이를 것이다.
그 가운데 오직 한편의 영화를 Best Movie로 선정하라면 어떤 영화를 선택해야 할까?
영화 아카데미라고 하면 미국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매년 아카데미상을 시상하고 있지만, 영국에도 영화아카데미가 있는데 ‘Sight & Sound’라는 영화전문잡지를 발간하면서 1952년부터 매 10년마다 전 세계의 영화학자, 비평가, 감독 약 250여명으로부터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를 받아서 Best Top Ten Movie를 발표해오고 있다.
미국의 아카데미, 프랑스의 칸느, 이태리의 베니스, 독일의 베를린 등 여러 나라의 영화제에서 수상해온 영화들이 많이 있지만 ‘Sight & Sound’의 리스트는 가장 보편적으로 그 권위와 평가가 인정되고 있는 위대한 영화의 목록이다.

▲ 영화 ‘ 시민 케인’ (Citizen Kane)

베스트 톱10 영화 5회 1위 차지

‘시민 케인’은 2012년까지 그간 발표된 총 7회 가운데 5회 1위를 차지했으며, 2회 2위로 선정될 만큼 70년이란 긴 세월동안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전문가들에 의해 가장 위대한 영화로 공인된 작품으로는 그에 필적할만한 작품이 없다.
소위 위대한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영화의 상당수가 흑백으로 촬영된 것처럼 1941년에 제작된 이영화도 흑백영화이다.
CITIZEN KANE이란 자막이 화면을 꽉 메우는 타이틀 백부터 이 영화는 전혀 예사롭지가 않다.
‘출입금지’라고 씌인 팻말에서 시작되는 첫장면- 카메라는 출입금지를 무시하고 철조망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간다. 엄청나게 거대한 저택에는 동물원도 있고, 9홀 짜리 골프 코스도 있다.
어둠에 잠긴 성같은 저택에는 방 하나에만 불이 켜있고 음산한 음악이 뚝 그치면서 불빛이 깜박인다.
방안의 케인은 ‘로즈 버드’란 단 한마디만 하고 죽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그의 살아있는 순간을 겨우 몇 초 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를 취재하려는 기자에 의해 그의 삶의 행적이 하나하나 밝혀지는데, 그와 가까웠던 다섯 사람이 그에 대해 증언하는 형식을 취한다. 따라서 케인은 다른 사람들의 회상 속에서 유령처럼 살아 움직인다.
story의 맨 끝을 맨 앞에 가져다놓은 구성이며, 순환방식으로 과거의 사건들이 재현되는 매우 특이한 플롯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회상구조의 narrative를 관통하며 이끌어나가는 끈은 그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인 ‘rosebud’란 단어로서 영화역사상 가장 유명한 단어의 하나다.
기자는 이 말뜻을 알아내려고 과거 케인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다섯 사람을 찾아다니며 그림퍼즐 조각들을 맞춰가는 가운데, 추리소설처럼 서스펜스를 이끌어 낸다.
관객들도 점차 로즈버드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진다.
영화의 끝부분에 관객들은 드디어 로즈버드가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게 되지만 (등장인물들은 끝내 알지 못한다)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적같은 작품

이 영화에 사용된 영상기법이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완전히 독창적이고 신선한 감각으로 촬영되어, 모든 장면 하나 하나가 새롭고, 단 하나의 쇼트도 세심한 계산 없이 찍힌 것은 없었다.
저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말대로 “모든 영화적 지혜를 취합한 작품으로 걸작의 수준을 뛰어넘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적 같은 작품 중 한편”이다.
케인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뉴스릴이 끝난 영사실에는 영사기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기자들이 움직일 때마다 빛이 폭포처럼 일렁인다.
수잔의 나이트클럽 포스터를 잡고 있던 크레인 카메라는 위로 올라가 지붕위의 네온사인을 지나 번개가 번쩍 하는 순간 디졸브되어 천창에서 아래로 내리 꼿히듯 하강한다.
어린 케인을 재정 후원자에게 맡기는 장면을 보면, 전경의 후원자와 어머니, 중경의 아버지, 후경의 창 너머로 썰매타는 케인까지 모두 디프 포커스(초점이 모두 맞는것)로 처리하여, 이들 모두의 반응을 한 화면에서 보여준다.
대개 이런 장면은 세부분으로 나누어 찍은 후 편집으로 연결하지만, <시민케인>은 한 장면 속에 이모든 부분을 담아냄으로써, 관객에게 자유롭게 선택적으로 시선을 줄 수 있도록 유도 하는데, 이 디프 포커스기법을 <시민케인>에서 처음으로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수잔의 오페라 데뷔장면. 막이 올라가고 제인이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카메라는 뜻밖에도 가수를 잡지 않고 위로 위로 올라가면, 무대 기술자가 형편없다는 듯 코를 쥔다.
제인의 성악교습 장면. 참다못한 선생이 외친다.
“노래는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지. 당신은 불가능이야 불가능! ” 이때 들어온 케인이 말한다.
“당신의 평가는 필요 없소. 성악교습이나 계속해 주시오”
“음악계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걱정 마시오. 나는 신문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소”
결국 선생은 수업을 계속 한다. “내 그럴줄 알았소”
이 장면이 모두 롱 테이크, 한 커트로 코믹하게 처리 된다.
주요하지 않은 등장인물은 일일이 조명으로 밝게 처리하지 않는다. 심지어 플롯을 이끌어가는 기자의 모습은 항상 뒷모습이거나 어둠속에 남겨져 얼굴마저 분간이 안될 지경이다.
양심선언서를 작성하는 케인은 처음엔 밝은 조명아래 있지만 이윽고 얼굴이 어둠에 잠긴다. 훗날 그가 양심선언서를 이행하지 못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미니어쳐와 실사, 매트기법을 이용한 탁월한 장면합성은 케인이 선거캠페인을 벌이는 장면에서 최고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윗 층에서 경쟁자가 케인을 내려다보는 장면은 세 개의 별도 쇼트를 합성한 것이다.

천재 오슨 웰스의 첫 작품 완벽 3박자

‘시민케인’의 편집은 변화무쌍한 스타일의 연속이다.
때로는 기나긴 롱 테이크에 이어 짧은 쇼트가 연사되고, 몽따쥬는 과감하게 시간을 뛰어넘는, 대담하고 화려한 연출의 계산된 표현이다.

▲ 어린 케인을 재정 후원자에게 맡기는 장면.

“메리 크리스마스”그리고 “해피 뉴이어” 이 두 마디 사이에 20년 세월을 뛰어 넘기도 하고, 부부가 식탁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2분간 두 사람 사이의 10년 동안의 식어가는 애정을 극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수전이 그녀의 방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은 고급아파트의 방으로 디졸브되면서 노래는 그대로 이어진다. 오디오 몽따쥬이다.
웰스는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었던 경험으로 음향원리를 충분히 이해했으며, 거의 모든 시각적 기법에는 그에 걸 맞는 음향기법을 구사했다.
많은 씬에서 음향을 상징적 목적으로 차용하는데, 수잔이 오페라 순회공연에서 보여주는 절망감은 신음소리에 가까워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지직거리고 마침내 전구의 필라멘트가 터진다.
로즈버드 썰매와 허접쓰레기를 태운 연기는 하늘로 치솟고 그의 저택에서 물러난 카메라는 다시 철조망을 타 넘고 내려와 ‘출입금지’팻말에서 영화가 끝난다.
관객은 출입금지 영역을 헤메다가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시민케인>은 복잡하게 분절화된 내러티브로 인해 관객이 줄거리를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상실을 주제로 이토록 깊은 감명을 주는 영화도 아주 드물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듯이 보이던 한 인물이 하나하나 모든 것을 잃고 외롭고 쓸쓸하게 최후를 맞는 것을 보면, 새삼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며,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25세의 천재 오슨 웰스의 첫 작품으로 거장 그레그 톨런드의 촬영, 허먼의 음악까지 세 박자가 완벽하게 들어맞은 이 영화는 다시 보면 볼수록 그 매력에 더욱 빠져 들게 되는 몇 안되는 정말 위대한 영화이다.
그리고 사실, 케인이 “로즈버드”라고 말한 것을 들은 사람은 관객뿐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3호(2014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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