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들의 세상보기]

청와대를 향한 민심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글/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새누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국회 예결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갖기 직전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와 별도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대해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도대체 말이 되느냐. 그들은 일개 내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언론들이 보도했다.

박 대통령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은 자신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국민, 그리고 정관계 인사들, 심지어 청와대 관계자들에게도 이들은 특별한 지위를 가진 ‘권력실세’로 비치고 있다. 청와대 집무실의 문고리를 쥔 사람이 권력자라고들 한다.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가 파워를 결정한다는 말도 있다. 그 점에서라면 3인방을 따를 사람이 없다.

‘십상시’란 말이 나왔던 분위기 인식

대통령의 수하들에 대한 ‘무한 신뢰’는 흠될 일이 아니다. 남의 윗사람으로서 상찬 받을 만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대통령이 민심 동향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 있다. ‘문고리 권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진작 나왔다. 정부 인사가 난맥상을 보이면서 의심의 눈길이 이들을 향한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그것으로 걷힐 의혹은 아니었다. 그것은 최고 권력자 최측근의 운명 같은 것이다. 실제로 그 위력이 입증된 바도 있다. 어떤 사람이 작년에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사칭, 모 대기업에 자신의 취업을 부탁해서 1년간 간부로 근무한 사례가 드러났었다. 거짓 전화 한 통화의 효과만으로도 그의 힘을 짐작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당사자들로서는 대단히 모욕적으로 들리겠지만 ‘십상시’란 이름은 지위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행사하는 힘이 크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예컨대 국무총리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해서 그런 별칭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하위직에 있는 사람, ‘일개 비서관’이 분에 넘치는 권력을 행사한다고 여겨지는 바람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3인의 비서관들이 대통령을 믿고 위세를 떨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박 대통령이 그간 보여 온 이미지로 미루어 짐작컨대 아랫사람의 분수 넘는 행동을 용인할 리가 없다. 자기 절제라는 면에서 박 대통령은 남다른 데가 있다. 수하에 대해서도 그런 자세를 기대하고 주문하게 마련이다.

신뢰를 중시하는 만큼 아랫사람들에 대한 책임의식 또한 확고하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요지부동의 원칙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3인의 비서관을 일일이 거명하며 “이들 3명은 15년 동안 내 곁에 있었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왔다, 그간 물의를 일으키거나 잘못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 것이 그 단면이다.

대통령의 개인적 의리와 국가 및 국민에 대한 도리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측근 인사들의 결백을 입증해 주기 위해 여론과 맞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현명한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들의 의구심을 씻어주고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다. 그걸 위해서라면 작은 의리는 희생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특히 측근정치 혹은 가신정치는 위험 부담이 크다. 국회의원일 때, 정당 대표일 때의 보좌진과 대통령일 때의 보좌진이 같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문제다. 개개인의 능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의 조력자는 천하에서 물색되어야 한다. 보필조직의 인적 폐쇄성은 대통령과 민심의 괴리를 초래한다. ‘내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하면 저절로 인의 장막이 만들어진다.

박 대통령의 마음고초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몇몇 전직 대통령들의 예에서 배워야 할 바가 그것이다. 가신그룹의 보필을 받는 대통령은 안일에 빠지기 쉽다. 국정최고책임자에게 무엇보다 소망스러운 것은 ‘직언’이다. 그런데 가신에게 직언을 기대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충성스럽기는 하되 강직하지는 못한 말을 들어버릇하면 눈과 귀가 자기 편한 쪽으로 기울게 된다.

박 대통령의 임기 5년 중 1년 10개월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3년여에 불과하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서 3년, 짧게는 2년 반이다. 가장 역동적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할 그 시기 대부분을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과 세월호참사로 우왕좌왕하며 보내고 말았다. 겨우 그 고비를 넘기는 듯하자 이번에는 ‘십상시 국정농단 의혹’이다.

지난달 2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 때 박 대통령은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마음의 고초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겪어야 하는 것도, 극복해내야 하는 것도 온전히 대통령의 몫이다. 여론을 상대로 잘잘못을 따질 시간이 없다. 여론은 진리나 진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및 상황의 대중적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여론과 대결을 벌이는 것은 현명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가 없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성공적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그러자면 국민의 표정을 살피고 민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급선무다. 국민과의 소통보다 더 효과적인 국정운영 방식은 달리 없다. 여론에 아부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론을 다독일 줄 아는 것, 국민의 이해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노련한 리더십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새해는 정치사의 새 지평을 여는 기회

당연히 국민의 입을 막으려하거나 자신의 귀를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옛 사람들도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막힌 물은 반드시 둑을 무너뜨리고 홍수를 일으킨다. 사실이 아닌 것을 보도했다고 해서 청와대 비서관들이 신문사를 고소하고 나선 것도 본질에서 이와 다를 바 없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포기하지 못하면 민심의 동조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소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버려야 할 경우도 있는 법이다. 심기일전, 분위기일신을 위해서라도 청와대 조직 및 인사의 쇄신이 절실하다.

박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여야 할 본연의 책무와 함께 특별한 부가적 의무가 지워져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갖는 의미와 그에 대한 정치사적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았다. 어쩌면 그간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더 많고 잡다한 도전에 직면했을 수도 있다. 앞으로도 파고는 만만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여성대통령의 탁월한 성공’을 구현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여성들에 대한 의무이자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사명이고 정치사의 새 지평을 여는 과업이기도 하다.

아울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등장과 ‘조국 근대화·산업화’ 추진을 역사적 필연으로 승화시킬 책임을 짊어졌다. 박 대통령의 성공이 곧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공이 된다. 이를 통해 ‘박정희 시대’가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국가로 발전시키는 핵심적 엔진 역할을 했음을 입증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15년, 이 새해는 박 대통령에게도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성취의 한 해, 승리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5호 (2015년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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