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 ③]

La Grande Illusion
위대한 환상
1937년 프랑스 장 르느와르 감독
장 갸방,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위대한 환상>은 장 르느와르 감독의 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게임의 규칙>을 들지만 나는 <위대한 환상>이 더 좋다. 아니 사랑한다. 누구나 이 영화를 보고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장 르느와르 감독의 <위대한 환상> (오른쪽 사진)▲포로들이 프랑스국가를 합창하는 장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감독 장 르느와르

장 르느와르 감독은 1930~50년대 프랑스 영화가 시적 사실주의를 필두로 한창 낭만적인 영화를 꽃피우던 시절 기라성처럼 뛰어난 감독 군에 묻혀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감독이다.
그러나 60년대 트뤼포를 비롯한 카이에 뒤 씨네마 그룹들이 그를 재조명하면서 지금은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명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장센에 원근법을 도입하여 딥 포커스의 원조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 시절 무겁고 커다란 카메라를 끊임없이 이동시키면서 팬, 트래킹하여 이동화면의 대가로 인정된다.
하나의 쇼트는 인물에서 대상으로 다시 인물로 계속 훑어가면서 끊임없이 서사를 위한 정보를 관객에게 신호로 보내주며, 편집으로 인한 서사의 단절을 피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카메라는 독방에 갇힌 마레샬이 순간 열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가 다시 끌려 들어와 던져지는 장면까지 하나의 쇼트로 따라 다니고 있고, 포로들이 프랑스국가를 합창하는 장면에서는 가수에서 포로들로, 다시 당황하는 독일군으로, 다시 포로들로, 카메라가 마치 유영을 하는듯하다.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장 갸방이 프랑스군 전투기 조종사 마레샬 중위로 나오는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격추되어 독일군 포로가 된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비행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그를 격추시킨 독일군 비행대 부대장은 “프랑스 손님을 맞게 되어 영광이요”하며 정중히 점심식사에 초대하는가 하면, 격추되어 사망한 프랑스군 조종사를 위해 조화를 바치고 “용맹스런 우리의 적이 편안히 잠들기를” 하며 묵념을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 독방에 갇힌 마레샬에게 독일군 경비병은 자신의 하모니카를 주며 상심한 그의 마음을 달랜다. (오른쪽)▲감독은 제1차 세계대전의 소모전속에서, 모두들 전쟁이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했던 당시를 표현한다.

피아간에 전쟁이 끝나기만 고대하던 상황

이 영화는 1937년,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2년 전에 제작되었고, 장 르느와르 감독은 아무도 제작비를 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아버지 피에르 르느와르의 그림을 팔아가며 2~3년을 기다려야했다.
어느 누가 이런 황당한 환상에 투자를 하겠는가?
그야말로 르느와르 감독의 위대한 환상은 계속된다.
철조망도 없는 포로수용소에 도착한 포로들은 여름 캠프에라도 놀러온 듯 유유자적하고, 피아간에 적대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구정물 맛이군” 수용소의 독일군은 양배추 스프나 먹으면서도 포로에게는 음식물 반입을 허용하여, 부유한 유태인 로젠탈 중위에게 온 음식 소포 덕에 포로들은 최고급식당 푸켓의 꼬냑까지 마셔가며 성찬의 식사를 즐긴다.
포로들이 벌이던 흥겨운 공연장에서 프랑스국가를 부른 바람에 독방에 갇힌 마레샬에게 독일군 경비병은 자신의 하모니카를 주며 상심한 그의 마음을 달랜다. 극히 인간적이다.
게시판에는 두오몽이란 도시가 함락되었다가 탈환했다가, 다시 함락되었다가 재탈환했다는 벽보가 계속 나붙는다.
독일군과 프랑스군 병사들은 “아주 쑥대밭을 만드는군”
“전쟁이 너무 길어”하며 탄식한다.
피아간에 모두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뿐이다.
르느와르 감독은 제1차 세계대전의 끝없는 소모전속에서, 모두들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고대했던 당시를 떠올리게 하려 애쓴다.
포로들은 탈출을 위한 땅굴을 파지만, 다른 수용소로 이감되는 바람에 허사가 되고, 고성의 수용소에서 독일군 폰 라우펜슈타인 대위와 재회한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그는 격추되어 전신에 화상을 입고 이제는 포로수용소의 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소장은 탈주경력이 화려한 마레샬과 보엘디외 대위에게 고성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손수 성안을 안내하고, 같은 귀족계급 출신인 보엘디외 대위에게 특히 각별하게 대한다.
눈이 온 날 포로들은 태평하게 눈싸움을 벌이고, 와중에 세 사람은 탈주를 감행한다.
경비병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모두들 피리를 불어대는데 갑자기 그 많은 피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 장면은 너무나 엉터리 발상이어서 그야말로 환상 자체이다.
마레샬의 탈주를 돕기 위해 따로 성벽을 오르던 보엘디외 대위는 소장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그의 방에서 치료를 받는다.
소장 “용서하시오”
보엘디외 “나라도 똑같이 총을 쏘았을 것이오. 배에 총알이 박혔다고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어”
소장 “다리를 겨누었는데 빗 맞았소”
보엘디외 “거리가 150미터나 되고 어두운데다 내가 움직이고 있어서 빗 맞추었을 거요” 소장을 위로하고 죽는다.
소장은 항상 물을 주며 키우던 제라니움 꽃을 가위로 잘라버리며 그의 상심을 나타낸다.

▲ 보엘디외 대위는 소장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그의 방에 서 치료를 받는다. (오른쪽)▲탈주에 성공한 마레샬은 그에게 도움을 준 독일인 과부에게 전쟁이 끝나면 가정을 이루자고 약속한다.

상대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버릴 수 있다면…

참으로 꿈같은 얘기를, 르느와르 감독은 펼쳐간다.
한술 더 떠서 탈주에 성공한 마레샬은 독일 농가에서 젊은 독일인 과부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로 떠나기 전,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돌아와 함께 가정을 이루자고 약속한다.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똑같은 인간이기에 서로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버린다면, 사랑과 신뢰 속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열심히 보여 준다.
르느와르 감독은 이렇게 위대한 환상을 꿈꾸었다.
그의 꿈에 세계가, 특히 독일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도 그렇게 많은 인류가 또다시 전쟁의 대 참화를 겪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탈주하면서 마레샬과 로젠탈이 말한다.
“이놈의 전쟁을 빨리 끝내야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하고...” “그만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라고”
이 영화가 상영되고 불과 2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모두 5천만 명이 희생되었다.
오래전 1차 세계대전의 최고의 격전장 베르덩을 찾았다.
피아간에 무려 7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엄청난 규모의 지하요새나 거대한 대포, 거미줄처럼 끝없이 이어진 교통호보다도 나의 눈길을 끄는 높다란 기념탑이 하나 있었다.
지하 4층 규모의 깊숙하고 커다란 기단부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골이 산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기념탑의 명문에는 프랑스군인지 독일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인골의 탑이라고 쓰여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5호 (2015년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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