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마음의 주름
나이 듦의 넉넉함

글/성귀옥(시인·자유기고가)

친구들 모임 카톡 방에 2044년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글이 올라왔다.
이유인즉 2044년의 10월 연휴가 장장 9일(1일 토, 2일 일, 3일 월-개천절, 4일 화-추석 연휴, 5일 수-추석, 6일 목-추석연휴, 7일 금-추석연휴, 8일 토, 9일 일요일)로 단군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환갑 넘긴 할머니들의 계산으로 29년 후는 90살이 넘게 된다.
친구들 대다수가 지금같이 평균수명이 길어지다 보면 2044년까지 살아있을 확률이 많다고 한다. 집안 어르신들 중에 90을 넘긴 분들이 많은 장수 집안의 친구가 그 나이가 되면 일 년 열두 달이 매일 연휴라고 알려준다.
어떤 친구는 그 때까지 건강해서 함께 여행가자고 한다.
앞으로 까마득한 29년 후의 9일 연휴를 생각하지 않아도 이번 구정 연휴 또한 토 일 주말을 합쳐 장장 5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연휴 일을 피해 평일, 주말을 피해서 주중에 여행가고 놀러가는 나이가 되었으면서도 29년 후의 9일 연휴가 어찌될지 아까워서 친구들과 관심을 한번 쏟아 보며 잠시 젊어졌었다.
연휴와 여행이란 단어에서 생동감이 느껴져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지만 성경에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삶이 수고와 슬픔이라는데 평균 수명이 길어지며 우리의 연수가 길게 잡은 80을 넘어 매일 매일을 연휴로 지낼 90을 바라보게 된다니...
약간의 공포감이 엄습하며 생로병사의 인생이 추구하는 참 행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동네 길이 지금처럼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땅바닥에서 공기놀이, 선을 그어가며 하는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놀다 저녁이 되면 집에서 부르는 소리에 흙먼지 털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우리도 살다가 하늘에서 오라고 종치면 세상 쌓아놓은 모든 것 한줌 가져갈 수 없이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
인생이 크게 보니 어릴 때 하루 소꿉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외모는 20대까지의 성장이 멈추고 나면 하루하루 거울로 마주 대하면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아주 조금씩 노화되어 간다. 그러다 중년이 넘어서면서 부터는 간혹 사진이라도 찍히게 되어 들여다보면 낯선 내가 보인다.
노년에 들어서서는 손녀와 마주보며 행복하게 웃었는데 사진 속에는 나는 없고 할머니가 들어서 있다. 손 자녀가 있는데 인생의 나이테를 어찌 숨기랴.
외모의 변화에 대한 아쉬움인지 누군가가 마음에 주름살지는 것 본 사람 있느냐고 한다. 젊어서는 그 말을 들으면 육체는 쇠해가도 마음은 그대로 청춘이라는 의미로 들렸었다.
그러나 막상 노년으로 들어서니 마음에도 주름살이 생기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주름살은 마음먹기에 따라 젊음을 상쇄 할 만큼 넉넉하고 매력적이다. 어려서 할머니는 학교도 안가고 집안일도 안하니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나의 삶보다는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의 주름살만큼 폭 넓은 염려를 하게 된다. 신문의 국제 면을 들여다보며 세계 경제를 걱정하고 TV종편을 보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사회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사건들을 보면 마냥 남의 일로만 보아지지 않고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 갈 사회가 좀 더 안전하고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진다.
자녀교육에 온 정성을 다 할 때만 해도 어른의 마음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 어릴 때는 나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머니가 되어서는 아이들만 생각하며 지냈는데, 아이들이 행여 뒤처질까 눈이 벌게 앞서 걸으라고 했는데, 그것이 열심히 사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자녀들이 품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고 그들의 뒷모습을 보자니 어렴풋이 세상이 보인다.
치열한 경쟁사회, 전쟁 터 같은 삶의 현장,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인생에서 아이들이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더불어 가는 모습이 보고 싶다.
이런 줄 알았더라면 여유 갖고 살라고 가르칠 것을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괜찮다, 괜찮다

내 어머니가 나를 꾸짖으실 때
할머니는 옆에서
괜찮다 괜찮다 그까짓 것 괜찮다 하셨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속 끓일 때
내 어머니가 옆에서
괜찮다 괜찮다 그까짓 것 괜찮다 하셨다

며느리가 손녀를 무릎 꿇릴 때
할머니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
이제는 내가 옆에서
괜찮다 괜찮다 그까짓 것 괜찮다 하고 있다

나이 듦이란
모든 것이 넉넉하게 보이는 것인가 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6호 (2015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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