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3월···
즐거운 행진

글/金 淑 (김숙 본지 상임 편집위원)

3월이다.
March, 행진의 개막 직전 서곡인가...
3월이 주는 의미에 맞게 되도록 희망적인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인생은 누구에게든 말랑하지만은 않다. 그러기에 희망적일 수도 없다. 호락호락 전개되어지지도 않는다.
인생이 제 뜻대로 펼쳐지는 것이었다면 너나없이 이미 정점에 도달해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맹랑한 구석이 있는 녀석은 오늘도 아홉 개의 꼬리를 감추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벌써 10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지인을 따라 충북의 어느 절을 갔던 기억이 있다. 막연히 절을 찾아갔다는 말 보다는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갔었다고 말함이 옳다.
여름이었다. 끝부분에 메아리가 있는 매미소리가 하도 맑고 깨끗하여 청량음료를 마신 것 같았던 그날, 법문의 요지는 ‘인생은 나를 배반한다. 계획을 세우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뼈아픈 고배를 마신 적이 별로 없었다. 인생에게 배반당하며 살았다고 탄식했던 적이 없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지도 않았고 그날이 그날인 필자의 인생은 젊었던(지금보다) 시절을 포함, 어느 한 순간도 ‘펄스트 펭귄’이었던 적이 없었다. 모험은커녕 도전도 힘겨웠던 데다 변화를 싫어했고 거부했었다.
그러니 보여지는 부분에서는 고인물의 고요 그 자체였다.
학창시절만 해도 그렇다. 중간고사, 학기말고사, 학년말고사, 방학, 입시··· 그렇게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조차도 이렇다 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다. 단기간을 두고도 그랬으니 하물며 미래에 대해서야 오죽하랴···
예나 지금이나 솔직히 체질적으로 계획성 있는 편이 아니다. 그러는 데에는 내면이 정리되지 않은 탓도 있는 것 같고, 일말의 뻔뻔하지 못한 성격도 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필자의 인생이 몇 살까지 예비되어 있는지, 건강의 정도는 어떤지··· 그 외에도 기타 등등의 기준이 모호한데 계획만 세운다 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생활에서의 계획이 설령 치밀하다 한들 허구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떨쳐낼 수 없다.
결국 필자는 그럴싸한 청사진을 펼치기 보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처해진 처지에 맞추어 살기로 정리했다. 꽤나 복잡하고 입체적인 삶의 방향을 무척 간단하고 명쾌하게 매듭지은 셈이다.
그 이유는 어딘가에 남아있을 혹은 숨어 있을 변수를 인정하자는 의미에서다.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은 어느 날 문득 나타나 인생에 돌발 사태로 끼어들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지를 남겨두자는 필자의 무계획은 한낱 무계획하지 만은 않다는 대의명분(?)이 있기도 하고 여백이 자연스럽게 색칠해져야 한다는 순리이기도 하다.
나름대로는 여태 주도권을 갖고 갑으로 살았으니 족하다. 앞으로는 갑에 얹혀 지내며 조용히 견디는 을로 살 것이다.
언뜻 들으면 소극적이고 나약하다고 나무랄 수도 있다.
하지만 비겁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을이나 병으로 사는 것도 섭리에 따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의 삶은 변치 않는 틀에 끼워 맞춰 단순하고 즐겁게 살기 또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아주 합리적이고도 실질적인 ‘맞춤형 계획’ 쯤이 될 성 싶다.
변화무쌍하지만 근본이나 이치는 절대불변인 자연에 묻혀 그의 등에 납작 엎드려 입장이나 분수에 맞게 살아갈 것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학설도 변한다. 언어도 그렇다. 예전에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은 와 봐야 안다고 한다. 물론 농담섞인 얘기다.
몸과 마음을 낮추고 비우고 또 비우면 분명 다시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다. 배반당하지 않겠다는 주요 골자를 담고 필자가 낮은 포복을 한 채 인생을 귀하게 대접하고 섬긴다면 혹시 아는가. 필자도 인생의 배반이 아닌 제대로의 섬김을 받을 수 있을는지···.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7호 (2015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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