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3금세월…황금· 소금· 지금
달관세대의 특권

글 / 성귀옥(시인· 자유기고가)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니 사람들도 봄바람에 마음이 살랑살랑해지고 들뜨게 된다.
성급한 친구들은 봄맞이를 하러 남쪽으로 내려가 예쁜 동백꽃과 만개한 매화를 찍어 보내오고 있다. 부지런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친구가 자신은 산티아고 순례 길을 꼭 걸어보고 싶다고 한다.
듣던 친구가 우리나이에는 무리라며 제주도 올레길이나 가면 적당하다고 한다. 몸이 아픈 친구가 자신은 제주도도 못 간다며 병원이나 안 다녔으면 좋겠다고 한다. 모두들 서울도 가 볼만한 좋은 곳 많다며 멀리 갈 것 없이 시간되는 대로 만나서 남산 길도 걷고 부암동 백사실 계곡에도 가고 올림픽 공원도 가자고 결론을 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세대 특권

어느 새 가고 싶은 곳도 제대로 가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의 ‘금’이 돈을 상징하는 황금, 음식을 상징하는 소금, 시간을 상징하는 지금이라는 글이 공감이 가는지 스마트폰의 카톡을 통해서 이 친구, 저 친구들에게서 몇 번을 받아보았다.
아마 돌고 돌아 많은 사람들이 읽어 보았을 것 같다.
아무리 장수를 한다고 해도 앞으로 살날이 살아 온 날들 보다 짧은 나이가 되어 살아 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수많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아 왔지만 우리의 기억에 한계가 있어서 인지 단순한 하나의 크로키 선으로만 정리가 된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무엇을 느끼며 살아 왔는지 기억 속에 잘 잡혀지지 않은 채 몸만 무거워져 가고 있다.
삶의 책임감이 없었던 학창시절이 가장 좋았는지 그 친구들을 만나는 게 가장 즐겁다. 주름진 얼굴로도 어릴 적처럼 깔깔 웃을 수 있어서인지 나이 들면서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 만나는 게 가장 즐겁다고 열심히 모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대다수가 돌아가고 싶은 지난날이 별반 없고 나이 들은 지금이 가장 좋다고 들 한다.
나이 들어 지금이 좋은 이유는 참 많다. 자녀 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났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도 물러났으니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욕심도 내려놓았다. 수입은 줄었지만 지출할 일도 줄었고 소비하고 싶은 욕구도 별반 못 느낀다. 비싼 물품을 보면 몇 년을 더 쓸 수 있을까 계산해 보다 구입을 자제하게 된다.
체력도 안 받쳐 주니 비용부담이 많은 여행보다 영화 한편으로 시간도 잘 보낸다. 식구도 줄고 식욕도 예전 같지 않으니 적게 먹고 주거도 더 넓혀 보겠다고 아등바등 하며 모델하우스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그저 의식주 자족하며 지금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삶을 터득해 온 나이든 세대가 즐기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줄여 조촐한 삶에 자족하니

그러나 노년이 되어 달관된 자세로 즐기는 이런 조촐한 삶의 방식은 소비가 줄어들며 경제 활성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 일찍 고령화로 접어 든 나라이다. 일본에서는 대형마트가 지고 편의점이 뜨는 추세라고 한다. 마트보다 편의점을 이용한다는 것은 구매력이 줄어드는 동시에 자동차 사용도 안 한다는 이야기이다. 혼자 살던 고령자들이 양로원 등 노인 복지시설에 입소하거나 사망하면서 빈 집 또한 계속 늘어간다고 한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말하지만 인구 고령화로 인한 경기침체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의 경제 활성화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요즘 어느 신문에서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행복하다는 젊은이들의 달관세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정규직에 목메지 않고 계약직, 프리랜서, 파트타임으로 직장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직장에 자신의 삶을 바치기 보다는 시간의 여유를 택하고 소비를 줄여 자족하는 삶으로 전환해서 살고 있다.
정규직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노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 정규직 보다 조금 덜 버는 대신 스트레스 덜 받으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즐기겠다는 것이다.
심각한 양극화사회에서 전력투구 애써서 취업을 하고 평생을 허리 띠 졸라가며 산다고 해도 내 집 마련이 까마득한 현실이 젊은이들에게 차라리 소박하게 지금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벼랑 끝 같은 치열한 삶의 전투에서 자신들이 행복하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면 경쟁사회로 들어가지 않는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 활성화가 쉽지 않은 고령사회에서 노년들의 생활 방식에 젊은이들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앞으로 나라 경제가 심히 염려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8호 (2015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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