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박사, 이익환 사장의 이야기

[원자력연구회고 (9)]

후세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4)
유능한 혁신적 사고의 동반자
김병구 박사, 이익환 사장의 이야기

글/ 故 한필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장

1980년대 초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 기술은 마치 사람의 조종에 따라 몸만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나 다름없었고, 원자력연구소(KAERI)는 원자력 선진국이 행사하는 힘에 의해 두뇌 없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보따리장사꾼처럼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 한전이나 정부 공무원의 입맛에 맞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며 연구다운 연구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시간을 보냈다.
한 때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 집단이 국가지도자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한 순간에 가장 무능한 집단으로 취급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 국내외 정치적 파란 속에서 미국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원자력연구소-대덕공학센터(KAERI-DEC)의 축소 압력을 요구했고 그 영향으로 감원 태풍마저 불어 닥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연구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거니와 연구를 할 수 있는 재원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고 한필순 박사가 남긴 4번째 ‘후세에 전하고 싶은 원자력 기술자립 주역들의 일화’에서는 모진 풍파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원자력의 발전(發展)을 이끌어 오늘날 가장 핵심적인 기술인 원자로계통설계(NSSS, Nuclear Steam Supply System)기술을 존재하게 한 革新家인 김병구 박사와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KNFC)사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革新的사고의 나의 同伴者, 김병구 박사

필자는 1982년 부푼 꿈을 안고 부임한 대덕공학센터의 연구원들의 모습에서 1945년 패망한 일본의 병사들을 떠올렸다. 당시 대덕공학센터에 남아 있는 연구원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시작된 정치적 역경 속에서 희생양이 된 핵연료개발공단(이하, 핵공단) 출신들이었다.
김병구 박사는 미국의 명문대인 Caltech에서 기계공학으로 석ㆍ박사학위 취득 후 첫 직장인 NASA Jet Propulsion Lab에서 근무하던 중인 1970년대 중반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의 유치과학자로 초빙되었다.
필자가 1982년 3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KAERI의 분소인 대덕공학센터(DEC)로 부임 후 간부들의 보고를 듣고 느낀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자면, 전혀 재기의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러던 중 일본출장에서 돌아온 김병구 박사가 2장으로 요약된 출장보고서를 들고 필자에게 첫 인사를 왔다. 그의 보고서에는 “텐덤(Tandem)”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적혀있었다.
필자는 김 박사로부터 텐덤(Tandem)에 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경수로(PWR)에서 태우고 난 연료 속에는 약 1%이상의 U-235가 남는데 여기에서 핵분열생성물질(Fission products)만 제거하면, 천연우라늄 중 0.7%를 차지하는 U-235를 연료로 하는 중수로(PHWR 또는 CANDU)에서 재사용할 가치가 있습니다.” “PWR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여 CANDU핵연료로 연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Tandem Fuel Cycle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명쾌한 김 박사의 설명에 필자는 ‘모래 속 진주알과 같은 명답이 텐덤 속에 있다’라고 생각과 함께 假死직전에 처한 대덕공학센터의 ‘당면 과제는 텐덤이다.’라는 직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한편 ‘이런 아이디어가 일본에서 개최된 학회에서 발표되었다니!’라는 부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후일 텐덤 프로젝트는 대덕공학센터의 핵주기공정연구실 박현수 실장에게 맡겨져 우리나라 핵주기 기술의 효시를 마련하였다.
김병구 박사와의 첫 만남 후, 필자는 중수로핵연료 국산화 사업을 시작으로 핵증기공급계통(NSSS)설계 기술 자립에 이르기까지 김 박사에게 어려운 미션을 맡겼고 그 때마다 기적과 같은 성공을 거두었다.

기술자립 꿈을 현실로, 이익환 전 KNFC사장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기술 자립의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기관 육성을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확보가 최우선이다. 필자는 80년대 초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원자력계가 처한 난관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우수한 인재들에게 끊임없는 구애작전을 펼쳤다. 두 번째 글의 주인공인 이익환 전 한전연료주식회사(KNFC)사장 역시 NSSS설계 기술자립을 위한 사업관리 책임자로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긴지 7년만에 친정인 KAERI로 돌아와 주었다.
이익환 전 KNFC사장은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졸업 후, 1971년 과학기술처 산하 원자력국 근무를 거쳐 KAERI에 입소하였다. 그는 신규 연구용 원자로 설치와 장치 개발에 이어 중수로 개발에 참여하며 기술 관리자로서 탄탄한 기반을 쌓아올렸다. 그러던 중,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겨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책임자로서 사업 관리 능력을 발휘하였다.
필자는 NSSS설계 기술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재를 찾던 중 김병구 박사로부터 이익환 실장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현대건설에서 이익환 실장과 같은 인재를 순순히 놓아줄 리가 없었다.
어느 날 당시 현대건설의 고중명 부사장이 이명박 사장의 지시로 필자에게 연락을 해 왔다. 필자는 고중명 부사장에게 당시 KAERI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익환 실장의 능력을 국가를 위해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 했다. 다행히 현대건설 측에서도 원자력기술자립을 위해 이익환 실장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어려운 결정을 해 주었다.
그 후 이익환 실장은 발전로계통설계기술자립의 사업관리 책임자로서 대덕과 미국 현지에서 활약하였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8호 (2015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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