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 절호의 기회
한국원자력의 기술자립


글/김병구 전 원자력연구소 응용역학실장. 현 사우디 원자력에너지청 자문관

태릉에서 영광까지

원자로설계업무를 주관해 보자는 연구소의 의지는 70년대 중반 당시 태릉원자력연구소(KAERI) 시절 재료시험 및 연구용 원자로인 MTR의 설계업무로부터 비롯된다. 그 후 에너지연구소(KAERI)로 명칭변경, 핵연료개발공단(핵공단)과의 통폐합, 대덕 이전의 변천과정을 거치며 발전용 원자로 설계업무에 우리 연구소가 주된 책임을 맡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중수로형 핵연료 국산화사업과 경수로형 핵연료 설계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우리도 원자력 핵심기술의 최종 보루인 NSSS설계업무에 본격 착수하게 된 결정적인 시기는 바로 기술자립을 지상목표로 내세운 영광 3, 4호기 건설 사업과 이에 참여하는 연구소의 역할분담이 확정되면서 부터였다.
한국전력, 한국중공업, 한국전력기술, 핵연료주식회사 등 전력그룹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우리 연구소가 영광 3, 4호기의 원자력계통설계와 핵연료설계 책임의 주계약자로 천명된 1985년 7월 29일 제214차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은 연구소의 기존 R&D 수행방식에서 대형사업 참여를 통한 첨단기술의 적극 수용시대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1985년 7월, 33인으로 발족된 발전로계통사업부는 그 후 숨 가쁘게 이어진 영광 3, 4호기 사업 입찰, 평가, 계약업무 등 전혀 생소한 업무의 연속을 치러내면서 과거 연구를 위한 연구자의 자세에서 원전 설계기술 중 알짜 기술을 배우고 바로 활용하는 사업부로의 변신을 이룩하였다.
연구소가 고상한 연구나 할 일이지 어쩌자고 장사꾼들의 싸움인 사업에 뛰어 들었느냐는 조소가 담긴 비판과 때로는 동정을 감수하면서도 영광 3, 4호기 사업 참여의 기회는 우리 일생에 단 한번 있을 기술자립 절호의 기회라는 신념이 참여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KAERI에는 국내외, 특히 해외에서 우수한 교육과 경험을 갖춘 고급 두뇌들이 속속 모여들어 1990년 당시 150명의 연구소 전문인력이 full time으로 오로지 핵증기공급(Nuclear Steam Supply System, NSSS) 계통설계에만 전념하는 대조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어느 일요일의 결심

1985년 여름, 어느 주말로 기억한다. 그 당시 연구소는 새로 참여하게 된 영광 3, 4호기 NSSS사업을 목전에 두고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겠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던 요인은 연구소 고유의 연구업무에만 젖어있던 연구원들이 과연 대형사업 참여를 통해 원자력발전 기술자립이란 본연의 목적을 이루어내겠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 때 마침 당시 과기처 김성진 장관께서 대덕을 방문하신 어느 일요일 오후, 우리 사업준비팀과 허물없는 대화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연구소가 한전의 원자력발전사업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필연성 그리고 사명감을 국가정책차원에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우리 연구소가 겪어야 했던 번민과 일에 대한 소임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듯 했다.
이때부터 분명해진 것은 나의 모든 경험, 즉 학교와 직장경력이 바로 이 사업하나 제대로 해내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는 새로운 인식과 또 앞으로 일생을 걸어 볼 만한 일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것이니 소명 것 뛰어 보겠노라고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핵증기공급(NSSS) 계통설계 업무는 그동안 9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면서도 매번 100% 외국설계에 의존해왔던 터이라,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도전이었다. 한편 기술업무에 대한 불안감과 외부의 불신을 해소하는 방안은 오로지 치밀한 계획 하에 수행된 국내ㆍ외 훈련과 실전에 있었다. 해외훈련 파견 대상자 1진 50여명을 대상으로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연수원에서부터 시작된 합숙훈련, 이에 이은 대덕 연구원 교육, 어학교육 및 CE 전문가 초청 전문 강좌 등은 앞으로 수행될 해외교육과 공동설계 등 해외 장기파견에 대비한 Team Work과 전문기초지식을 정리하는 귀중한 시기가 되었다.
1986년 12월 4일, 마침내 만 1년 반여 기간의 국내 훈련에 합격한 44명의 공동설계팀 1진을 기술 공급선인 미국 Combustion Engineering(CE)사의 Windsor NSSS engineering center로 떠나보내는 출정식 조찬회에서 참석자 전원은 힘차게 “핵증기공급계통 必 설계기술자립!”을 외치고, 한필순 소장의 제안에 따라 만세 삼창을 따라하며 성공을 다짐하였다.

미국 Windsor의 KAERI마을

우리가 택한 기술파트너인 CE사는 미국 동북부 Connecticut Windsor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1636년 영국에서 넘어온 Pilgrim이민으로 역사가 시작되어 미국 내에서도 가장 유서 깊고 뼈대 있다는 이 동네에 어느 날 갑자기 처자를 포함한 100여명의 KAERI연구원들의 정착은 제2의 Pilgrim을 연상할 만 하였다. 한때는 현지 사무소 산하 총 KAERI직원 92명, 가족까지 합하면 약 200명이 Windsor에 KAERI 마을을 이루었다. 연구소 50년 역사 이래 최대 규모의 해외 진출이요 발돋움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그 양적인 규모보다는 우리 직원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훈련과 실무경험을 토대로 그곳 CE 기술진과 1대1로 떳떳하게 공동설계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각 개인의 노력과 응집된 단결력으로 영광 3, 4호기 원자로설계사업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CE사의 기술개방정책과 우리 현지 직원들의 의욕에 찬 참여자세 및 대덕 본소 설계지원 인력의 적극적인 지원이 조화를 이루어 최고의 성과를 거두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1989년 말부터는 디자인센터의 대덕이전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Windsor의 KAERI마을도 철수되기 시작했다. 남은 영광 3, 4호기 설계를 명실공히 우리 기술로 우리 체제하에서 우리 주도로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자력발전 기술자립으로의 길

우리가 선택한 원자력발전 기술자립의 길에는 좋은 선생님과 똑똑한 학생들,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든든한 학부형의 뒷바라지가 함께했다. 그 덕분에 외국에서 수십년간 쌓아올린 선진기술을 단시일에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
1950년대부터 착수된 ‘제3의 불 원자력 발전기술’은 지난 반세기동안 선진 강국들이 수백억불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여 이룩한, 참으로 거대한 기술의 총 결정체라 하겠다. 이 기술에 대한 정면 도전이 처음에는 우리 기술진에게 과욕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하면 된다!’는 집념이 성공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사업 착수 3년 만에 우리의 좌표를 평가해 보니 분명 당초 예상했던 길을 또박또박 확실하게 닦아가고 있었다. Windsor에 파견된 우리 기술진들이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일정대로 귀국하였고, 1989년에는 디자인센터가 미국에서 대덕 연구소로 이전하여 영광3,4호기 건설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 정도의 기술자립은 스스로의 판단뿐이 아닌 CE측이 제안해 오는 제3국 해외 수출시장 공동 개척안이나, 다음 세대 원자로설계를 겨냥한 ALWR개량형 원자로설계 공동 추진안 등에서도 상호 신뢰받는 위치의 인정이 아닌가 싶다. 불과 20년 후인 2009년 원자로 계통설계기술에서 진화한 한국형 원전 APR1400 로형이 원전 종주국인 미국과 프랑스의 nuclear vendor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당당히 UAE에 우리나라 수출역사상 최대 규모이며 최초인 원전 수출로 이어진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진정한 의미의 연구란 무엇인지’ 본 사업 참여를 통해서 터득한 평범한 진리는, 과연 우리의 바람직한 연구는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그러기 위해서는 대형 원전 사업 참여를 통해 그 문제의 핵심을 피부로 느끼는 기회를 갖는 경험이 원자력연구원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초 모방에서 시작한 발전로 계통설계기술이 모체가 되어 기존 상용 원전의 설계개량은 물론, 해외에서 한번도 지어보지 못한 순수 우리 기술의 신형 원자로, 연구로 등의 개발에 앞장 서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 좋은 실례가 영광3,4호기 사업팀이 주축으로 개발 완료하여 2012년 표준인허가를 획득한 원자로인 일체형 중소형로 (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 SMART)이다. 앞으로 SMART가 해외 시장에 제2의 원전 수출로 이어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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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자 주 : 15년 3월 3일 한.사우디 정상회담에서 SMART의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및 수출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음. 이 MOU에 따라 향후 사우디아라비아에 2기 이상 건설을 목표로 사전엔진니어링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사우디 K.A.CARE(원자력, 재생에너지원)가 공동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며, 관련 인력양성을 위해 협력할 것임.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호 (2015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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