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미국영화, 감독 스탠리 크레이머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 ⑦]

Defiant Ones
흑과 백
1958년 미국영화, 감독 스탠리 크레이머
토니 커티스, 시드니 포이티어, 테오도어 비킬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지금은 흑인 혼혈의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만큼 세상이 변했지만, 이영화가 발표되었던 1950년대 말 남부에선 흑인은 백인 전용 식당이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고, 버스에서는 빈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감히 선언할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 항상 사회문제를 냉철하게 파고들면서 현실 비판적이고,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이 영화는 원제목인 ‘도전하는 사람들’ 그대로 흑백의 인종차별 문제에 예언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흑과 백이 사슬에 묶여 필사의 도주

캄캄한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한 대의 죄수 호송트럭이 달려온다. “오래전에 떠났지 그는 운도 좋아. 켄터키로 멀리 떠났네. 재봉틀 바느질이 너무 빨라 열한 땀을 꿰매네. 새끼 고양이의 꼬리에..”
타이틀백에 그대로 깔리는 흑인 특유의 노래.
참다못한 죄수 한명이 흑인에게 “이 검둥이 닥쳐”라고 소리치고, 그 말에 분개한 흑인이 벌떡 일어나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운전사는 앞서 오던 차를 피하려다 난간을 들이받고 차는 전복된다.
현장에 온 보안관 맥스 밀러는 살인미수 죄로 10년에서 20년 형을 받은 흑인 노아 컬린과, 무장강도 죄로 5년에서 10년형을 받은 백인 조 잭슨이 탈출한 것을 확인한다.
기이하게도 그 둘은 하나의 사슬에 묶여 있었다.
“왜 백인과 흑인을 한데 묶어 놓은 거지?” 묻는 기자에게 “감옥소장이 유머가 있거든”하고 답한다.
그만큼 흑인은 철저히 차별되어 죄수라도 백인과 함께 묶는 일은 흔치 않았다.
“소장 말이 5마일도 못 가서 서로 죽일 거라더군”
경찰서장 후랭크가 추격대랍시고 동네 사냥꾼들을 데려왔다. “이 사람들은 왜 데려 온 거야?”
“우린 사냥하러 왔어 맥스. 토끼 사냥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들은 사람이야” “토끼나 그들이나 똑같아”
“아니야. 똑같지 않아” 보안관 맥스는 정색을 한다.
약 1미터의 쇠사슬에 한데 묶인 채 필사적으로 도주하던두 사람은 돌을 내리쳐 쇠사슬을 끊어 보려하지만 끊어질 리가 없고, 날카로운 의견대립으로 으르렁 거리지만 결국사슬로 연결된 채라 하는 수 없이 함께 행동한다.
수색대는 사냥개를 이끌고 출발하고, 둘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되자 서로 끌어 당겨주며 도울 수밖에 없다.

살인미수죄와 강도죄 상호 실토

물에서 끌어내준 조에게 컬린이 고맙다고 하자, “너를 끌어내준 게 아니야 내가 끌려가지 않도록 한 거지” 냉담하게 답한다. 잠이 깨어 자기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든 컬린을 보고 조는 그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밀어낸다.
흑인에 대한 강한 반감과 멸시, 그리고 백인으로서의 잠재적 우월감을 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연탄을 연탄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 검둥이(neger)란 말 듣기 싫어도 내가 지어낸 거 아니야. 그게 세상이고 그 규칙을 만든 건 내가 아니야.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인마”
“인마라고 부르지 마 조. 넌 태어날 때부터 흑인을 경멸하라고 배워왔어 그게 너야”
깊은 웅덩이에 빠진 둘은 다투고 서로 돕고 또 다툰다.
사슬은 운명처럼 둘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간신히 빠져나온 두 사람. 조의 수갑 찬 손목 상처가 심한 것을 본 컬린이 진흙을 발라주고 헝겊으로 묶어주려 하자, 조는 “나에게 잘하려고 하지 마”하며 애써 외면한다.
조그만 마을에 도착하여 밤이 이슥하기를 기다리면서 두 사람은 각자 신상얘기를 털어놓으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컬린은 어릴 적 신발도 없이 살던 이야기, 결혼 후 힘들게 밭농사를 지으면서 늘 가족에게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이야기, 그리고 빚을 받으러온 사내에게서 자신을 겨눈 총을 빼앗아 그를 때렸다가 그만 살인 미수죄가 된 내막을 털어놓는다.
조는 호텔 주차장에서 팁을 받으며 일하다가, 후엔 자동차를 정비하는 일을 하며 부자가 되고 싶은 허황된 꿈에 어설픈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힌 과거를 털어놓는다. 둘 다 사회가 격리해야할 흉악범이라기보다 각박한 사회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의 모습이다.
조의 흰 얼굴에 검게 흙칠을 하고 잡화점 천장으로 침입했다가 둘은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힌다.

수갑 끊고 분리된 후 서로를 발견

목을 달아맬 밧줄을 걸어놓고 린치하려는 사람들에게 조는 “당신들은 날 죽일 수 없어요. 난 백인이니까...”
그러면 흑인인 컬린은 교수형에 처해도 된다는 말인가?
컬린이 어이가 없어서 조를 노려본다. 마을 사람들 중에 건장한 샘이 나서서 린치를 저지하고 동네사람들을 해산한 후 둘을 창고에 가둔다.
기둥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묶인 흑인과 백인- 컬린은 도입부에서 부르던 노래를 다시 부른다.
새벽. 샘이 몰래 문을 열고 들어와 둘을 풀어 주고, 도망치던 두 사람. 또다시 서로 으르렁대다가 치고 박고 격돌한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 싸우게 될 거라고 했지? 그래 지금이다” 한창 치고 받는 두 사람에게 한 소년이 총을 겨누고 싸움을 멈추게 한다. 소년은 당연히 백인이 흑인죄수를 호송중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는 소년의 외딴 집에 간 두 사람은 주인 여자에게 음식을 부탁하고, 조에게만 음식을 가져다주자 조는 컬린에게도 음식을 가져오라고 요청한다.
정과 망치를 가져다 수갑을 끊고 이제 둘은 분리되었다.
더 이상 함께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도진 조는 실신하고, 남편이 떠난 후 외로웠던 여인은 조를 간호하며 잘 생긴 그에게 연정을 느낀다.
여인은 조에게 단둘이 부부행세를 하며 자신의 차로 도망가자고 제안하고, 컬린에게는 늪지대를 지나서 철로변으로 가면 기차를 타고 도주할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
어차피 함께 다니면 붙잡힐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하고 컬린은 늪 쪽으로 떠난다.
“컬린이 무사할까?” 걱정하는 조에게 여인은 “걱정하지 말아요. 그는 절대 잡히지 않아요. 늪지대는 아무도 살아서는 못 나가요”
“그게 무슨 소리요? 그를 일부러 사지로 몰아 보냈다는 거요?” “그가 잡히면 어떻게 해요. 모두 말할 거잖아요?”
“뭘 말해?” “왜 저따위 검둥이 때문에 흥분을 해요? 모두다 우리 둘을 위한 거라고요”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나를 제발 여기서 데려가 줘요”하며 매달리는 여인을 사납게 뿌리치자 소년이 총을 쏘고, 어깨에 부상을 입은 조는 늪지대로 달려가 컬린을 찾아 헤맨다.
간신히 컬린을 찾은 조는 여인이 일부러 위험한 사지로 보냈다고 알려주고 자신은 더 이상 지쳐서 못가겠다고 말한다.

마침내 흑과 백은 진정으로 포옹

조의 진심을 읽은 컬린은 “어서 움직여 너와 나는 사슬로 묶여 있잖아” 조를 부축하여 함께 늪지대를 벗어나 철로변으로 나온다.
때마침 화물열차가 달려오고 둘은 열차에 올라타려고 전력을 다해 따라잡으려 달린다. 컬린은 겨우 열차에 올라타고 조에게 손을 내민다. “못 하겠어” “힘내”
팔을 뻗어 그의 손을 잡는다. “꽉 잡아” 간신히 손을 잡은 조는 죽어라 달리지만 결국 힘이 부쳐 손을 놓고 만다.
순간 둘은 아직도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철로아래 비탈길로 함께 굴러 떨어지고 컬린은 조를 끌어당겨 뒤에서 안고 담배를 물려준다.
“많이 아파?” “아니 괜찮아” “우린 잘 했어” “그래”
총을 뽑아 들고 혼자 다가온 보안관 맥스는 부둥켜안고 있는 둘을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는 듯 총을 집어넣는다.
컬린은 그가 아는 유일한 노래를 부른다.
“오래전에 떠났지. 그는 운도 좋아. 켄터키로 멀리 떠났네. 재봉틀 ...”
혐오와 증오로 가득 찬 흑인과 백인 두 사람이 함께 사슬에 묶였다는 사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함께 행동하면서,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드디어는 자신을 희생할 만큼 인간적으로 소통해 가는 과정을 차분히 그려낸 이 영화는 아마도 흑백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가운데 백미일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89호 (2015년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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