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주부시절
동창모임 잡상

글/金淑 (김숙 본지 상임 편집위원)

3~4년 전 동창생들 다섯이 수안보를 갔었다. 그때나 이때나 주부들이 여행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당일치기라도 그 수준은 거의 같다. 굳이 콩이야 팥이야 말하지 않더라도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을 밀어두고 나온 이상 찰떡같은 시간을 개떡같이 써서는 안 되는 게 일종의 묵계다.
청량리역에서 아침 일곱 시에 만난 일행은 곧 충주로 출발했다. 필자가 운전병이었다.
점심 메뉴로는 산꿩 샤브샤브를 먹고 고수동굴을 다녀 와 특산물 판매장을 들렀다가 저녁 식사 후 온천욕을 했다. 무방비상태의 50대 체력으로는 무리라 할 만한 일정이었다.
그랬음에도 콘도나 뭐, 흔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낼 입장들은 못되었다. 귀경을 서둘렀다. 달리는 내내 악셀을 힘주어 밟았다.
다시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친구들은 종종걸음을 치며 지하도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뒷좌석에 앉은 한 친구가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몹시 피곤하다며 집 근처까지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음이 내심 유쾌할 리야 없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방향을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제기동인지 경동인지 약령시장을 지나고도 거의 30여분 가량 연신 오른 손 집게손가락을 세워가며 우회전 좌회전 우회전 좌회전을 읊어댔다.
그녀가 내리고 차 문을 닫자마자 냅다 꽁무니를 뺐다. 그러나 실은 속력을 낼만한 길은 아니었다. 잠시 한쪽 모퉁이에 차를 세워두고 뒷목을 꾹꾹 눌렀다. 가뜩이나 길치인데다가 초행길이라 거리도 분간 못하겠고 밤이 깊어 무서웠다. 피로가 일시에 몰려왔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년 초에 누가 누군지 모를 때 담임선생님 마음대로 임시 반장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한 번 쯤은 익히 봐 왔음직한 교실안의 풍경일 것이다. 특별히 결격사유가 없는 한 그 학생은 1 년 동안 반장을 해야 하는 불행(?)을 겪는 수가 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으니 하는 말이다.
꼭 그 꼴이었던 것이, 생일이 제일 늦은 친구가 동창회 초대총무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12월 22일인 필자가 총무를 맡아야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뒤로는 후임이 나타나지 않았다. 강제유임을 지나 꼼짝없이 영원한 총무직을 수행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때도 그녀는 장소가 맘에 안 든다, 음식 값이 비싸다, 회비가 비싸다, 잔고가 없다는 게 말이냐... 등등 쉴 새 없이 불만을 쏟아냈다. 급기야 그녀의 무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어느 날 정리하던 수첩과 그날 걷은 회비를 그녀 쪽으로 집어던졌다.
회비를 걷을 때마다 일일이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지쳤었고 모자랄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성가심에도 상당히 짜증스러웠었다. 딴에는 금전적인 마이너스를 겪으면서도 소리 소문 없이 메꿔가며 해결했던 터수였다. 그러다가 한계상황에 돌입한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 자율적인 모임이 자율적인 모양새를 갖추지 못한다면 깔끔하게 흩어짐이 오히려 백 번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바로 그녀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그 후로는 동창회가 있어도 부담 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숫제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어도 자연스러워졌다. 표면상으로는 그 일이 발단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물 밑으로는 결속력 없는 동창생들에게 신물이 나 있었던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었다고 볼 수 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동창생들은 필자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갔고 일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제였다. 인천에 사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망치로 뒤통수 한 대를 호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기별이었다.
성격이 지나치게 날카롭고 매사에 불만투성이였을망정 치열이 가지런하여 어쩌다 웃으면 잇속이 참 보기 좋았었다. 유난히 흰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화내고 짜증낼 때마다 외모와 걸맞지 않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를 차기도 했었다.
끝내... 왜 죽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오래 전 마음으로부터 멀찌감치 밀어낸 사람의 정황을 이제사 궁금해 함이 필자의 양심에 허락되지 않았다. 또 구구절절이 딱한 처지의 상황을 물어야 함도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단지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는 현실만 남아있다.
화해할 기회도 없이 끝내 고약한 친구로 기억되었을 것을 괴로워해야 함은 오롯이 필자의 몫이다. 늦었지만 혼자 밀어내고 일방적으로 떨쳐냈던 옹졸했음을 사과한다. 함부로 미워했던 우매함도 용서를 바란다. 유구무언인 심정으로 그녀의 명복을 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해인-]
지금 밖에는 더운 바람이 분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0호 (2015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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