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관리시대…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 조장호의 시장이야기③ ]

하드웨어(HW)에서
소프트웨어(SW)시대

감성관리시대…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글/ 조장호 전 경제기자· 한라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경제연구소장

2007년 아이폰(iPhone) 선풍으로 세계 1·2위인 노키아와 모토롤라가 도산될 당시, 3위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일대 위기에 봉착했다. 애플이 스마트폰의 핵심 운영체제(OS)인 앱스토어(app-store)를 독점, 다른 기업들이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됐기 때문이다. 이때 삼성을 구해준 것이 구글이다. 구글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android)를 삼성에 주어 생산을 가능케 했다. 지금은 삼성, LG, 모토롤라, HTC, 소니, 에릭슨 등 애플의 아이폰과 MS의 윈도우폰(window Phone)을 뺀 거의 모든 스마트폰들이 안드로이드를 장착함으로써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막강한 구글사단(점유율 81.2%)을 이루고 있다.

구글이 구해준 삼성전자

사실 이 안드로이드를 만든 앤디 루빈(Andy Rubin)이 계획서를 들고 처음 찾아 온 곳은 삼성전자였다. 아이폰이 나오기 3년 전인 2004년의 일이다. 삼성은 이를 거절했고 구글은 받아들였다. 루빈은 구글의 개발담당수석부사장으로, 자신이 데리고 간 팀과 함께 구글이 만드는 각종 SW(구글검색, 구글메일, 구글지도, 구글토크, 유투브 등)를 기본에 탑재시킨 안드로이드를 완성했다. 궁금한 일은 삼성이 왜 이를 거절했을까 인데, 루빈이 창업한 기업이 연구원 10명의 소규모 구멍가게였던 데다(삼성은 박사인력만 수천명), 제시한 포트폴리오나 데모도 그냥 심플해서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핸드폰업체가 아닌 구글이 덥석 받은 것을 보면 진짜 이유는 SW에 대한 이해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기본적으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TV, 핸드폰 등을 만드는 HW기업이어서 노키아나 모토롤라처럼 SW의 중요성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일례로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한 OS를 완전개방체제로 하자는 루빈의 주장에 삼성임원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10년도 넘는 그때는 “그러고서 장사를 어떻게?”였을 것이다.
어찌됐던 애플의 앱스토어도, 구글의 안드로이드도, 완전 개방체제(open platform system)로 운영함으로써 많은 창업자들이 수많은 어플리케이션SW(application, 어플)를 들고 와서 사업하는 장소 값만으로도 두 기업에 막대한 수입원(cash cow)이 되고 있다. 이 오픈 플렛홈이야 말로 개방의 진수(眞髓)라고 하겠는데, 애플이나 구글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개발하지 못한 어플들이 누군가에 의해 개발되어 입점함으로써 투자비 한 푼 안들이고 수익을 올려준다.

외형보다 실리…SW 저비용고수익

사실 애플이나 구글은 처음부터 HW에는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익이 HW(기기)보다 거기 실리는 SW(컨텐츠)에서 더 많이 창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SW는 저비용고수익형이다. 거대한 공장도 필요 없고 골치 아픈 노조관리도, 재고관리도 필요 없다. 그래서 고비용저수익형인 HW는 가능한 한 외부에 맡긴다. 애플은 부품을 그의 최대 경쟁자인 삼성전자 LG 등에서 조달해서, 완성품은 대만의 폭스콘(Foxcon)등에 위탁생산하고 있다. 구글은 아예 스마트폰을 생산하지 않는데, 그보다는 OS(안드로이드)를 구글사단에게 무상으로 주어, 여기 탑재된 구글의 수많은 SW들을 사용하게 해서 얻는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세계 주요기업들의 연간실적 중 애플과 삼성전자를 보면, 매출액은 삼성이 애플을 두 배가량 앞서지만, 수익은 애플이 삼성의 두 배를 넘고 기업가치는 무려 네 배를 넘는다. SW의 부가가치가 HW의 그것을 훨씬 능가함을 말해 준다. HW(하드웨어)시대가 끝나고 SW(소프트웨어)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SW화의 조짐은 일찍부터 있어왔고 이에 따른 기업변신도 잇따랐다. 세계정상권 신흥기업들인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버크셔 헤서웨이(기업의 실적보다 가치에 중점을 둔 투자사), 오라클, 아마존, 페이스북 등 이 모두 SW회사이며, 컴퓨터를 만들던 HW전문업체인 IBM, 인텔, 휴렛패커드, 애플 등이 컴퓨터 생산을 중단(축소)하고 SW업체로 전환했다.
지금까지 IT산업을 예로 들었는데 사실은 SW화가 단지 IT산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행정, 국방, 교육, 문화, 금융, 보건, 제조, 물류 등 어디에서도 진행된다. 오프로드용 수제자동차 “랠리 파이터(rally fighter)”를 생산하는 미국의 로컬모터스(Local Motors)는 종합장치산업인 자동차를 협업에 의한 SW산업으로 바꾼 회사다. 즉 공개, 공유를 뜻하는 위키(wiki)와 제조업(manufacturing)의 합성어인 위키팩처링(wikifacturing)회사다.
이 회사는 외부인이 참여하는 자동차제작동호회(local motors community)를 먼저 결성하고 그 간사를 맡았다. 로컬모터스는 동호회 멤버들이 올린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온라인투표로 선정해서, 부품회사에서 필요한 부품을 조달받아 조립 생산한다. 그러니까 지극히 소수의 인력(현재 12명)만으로 뚝딱 자동차를 만드는 이른바 공장 없는 자동차 생산업체다. 이 회사의 특징은 제품기획부터 전 과정을 공개하는 오픈소스(open source)로 운용한다는 점이다. 소비자(유통업자 및 사용자)가 관심분야에 참여해서 제안도 하게 되는데, 회사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제안은 제작과정에 반영해서 자유롭게 변형도 하고 재배포도 한다.

SW 창업에서 신흥부자들

SW란 것이 원래 실체가 없는 상품이어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수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회사를 클라우드 소싱(cloud sourcing)기업이라고도 한다. 특기할 것은 이 랠리파이터가 한국인 김상호 씨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회사는 이것을 3D그래픽으로 소개해서 온라인으로 주문생산하고 있는데, 이제는 미군이 공모한 미래형 첨단 전투차량도 납품하고 3D프린트로 전기자동차 스트래티(strati)도 제조한다.
자동차는 거대산업이다.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은 수조원(기아차 2조14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본금으로 수천억원의 개발비와 몇년동안의 시간을 투자해서 비밀리에 신차를 개발하고, 또 수만명의 본사 직원(현대차 6만명)과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부품회사 인력을 동원해서 자동차를 만든다. 그러니 상식을 깨고 등장한 랠리파이터의 출현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도 남을 일이다. 앞서 로컬모터스의 인력이 12명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행정 및 작업요원이고, 두뇌격인 동호인회 멤버는 2만5천명을 훨씬 넘는다. 이들은 모두 교수 엔지니어 디자이너 레이서 등 관련 직업인이거나 자동차 제작을 꿈꾸는 학생들로 구성된 전문가적 소비자들(prosumer)이다. 지난 2008년 창업한 이 회사는 이제, 고객이 자신이 사용할 차를 직접 디자인해서 요구사항을 제시하면 그 요구에 맞추어 동호인들의 토론과 협력으로 세부사항을 조정해서 자동차를 만들어 주는 맞춤형자동차를 생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랠리파이터는 불필요한 부품을 대폭 줄이고 최상급 부품을 사용해서 안정성을 높이고, 외관이 날렵하고 단단해서 사막이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최적화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당초 5만달러에 팔았던 기본가격이 9만9천달러까지 뛰었고, 여기에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 추가부품 등 옵션을 더하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그런데도 수요가 몰리는 것은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가지는 유일한 차’라는 최상의 가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정부 또한 2017년까지 24조원을 들여 1만개 제조공장을 스마트 공장화하는 제조업생산체제혁신계획을 발표했다. 스마트공장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제조현장과 결합해서 생산효율을 극대화 하는 SW공장으로, 이를 위해 사물인터넷(IoT,사람의 조작이 필요 없는 지능형 인터넷)등 8대 기술의 연구개발, 제조업의 SW화, 융합신제품 개발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다.
SW사업이 최근 들어 얼마나 막대한 부(富)를 가져다주는 지는 국내·외의 신흥부자들이 모두 SW전문기업의 창업자이거나 CEO들로 채워져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블룸버그 발표에 따른 세계 10대 부자 중에 빌 게이츠(MS), 워렌 버핏(금융), 래리 엘리슨(오라클), 크리스티 월튼, 짐 월튼(월마트) 등 5명이 SW산업관계자이고, 브랜드 가치 역시 세계 10위권 안에 애플, 구글, MS, 아마존, IBM 등 5개가 차지하고 있다.

따뜻한 자본주의의 태동

우리나라 신흥부자도 상속자녀들을 빼곤 모두 컴퓨터포털, 게임, 한류 등 SW관련 창업자들이다. 이해찬(NHN), 박관호(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김택진(엔씨소프트), 손주은(메가스터디), 이수만(SM엔터테인먼트) 등등이다. 이들은 어떤 새로운 기계(HW)를 발명해 큰돈을 번 것이 아니라, 이 HW를 이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가진 SW개발로 이익을 창출한다.
SW화는 금융부문에서도 활발하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에서 받은 배당은 연간 2천억원대인데 증권시장에서의 보유주가(株價)는 그 10배나 되는 2조원대씩 늘어났다. 이는 생산활동과 관계없이 시장에서 벌어지는 금융자본들의 머니게임에 따른 것으로 부익부빈익빈구조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4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월가시위(Occupy Wall Street), 즉 1%의 가진 자에 대한 못 가진 자 99%의 울분은 그런 만큼 이유가 있다. 이 회장이 증권시장에서 큰돈을 버는 것은 본인의사가 아니다. 삼성전자의 기업가치가 높이 인정받아 그 주식이 금융자본의 대상이 된데서 절로 얻어진 소득이다. 그렇다고 당연한 소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시장의 글로벌화로 투기자본의 이동과 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생긴 현대자본주의의 병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진 자들이 금융시장에서 쉽게 얻은 돈을 사회에 돌려주자는 따뜻한 자본주의(warm capitalism, 博愛資本主義, 자본주의4.0)가 힘을 얻고 있다. 그 효시가 지난 2007년 1월 24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빌 게이츠가 제창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다. 이에 따라 2010년 미국의 최대부호(super rich)들인 워렌 버핏, 마이클 불름버그, 오프라 윈프리, 테드 터너(CNN),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래리 엘리슨(오라클), 빌 게이츠 등 52명이 재산의 절반이상을 내놓기로 하는 더 기빙 플렛지(The Giving Pledge)를 출범시켜, 작년말 현재 전 세계 1백34명이 서명했다. 이들 중 테드 터너는 관값을 뺀 전 재산, 워렌 버핏은 99%, 빌 게이츠는 95%를 내놓기로 했다.
슈퍼부자들의 사회공여책임론은 부자세(버핏세)제안으로도 나타났다. 슈퍼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서 재정난에 빠진 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것으로, 미국의 워렌 버핏, 프랑스의 릴리안 베탕구르(로레알 상속자), 대만의 궈타이밍(폭스콘회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0호 (2015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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