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이태리영화,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 ⑧]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88년 이태리영화,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살바토레 카시오, 엔조 카나바레, 필립 느와레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시칠리아의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약관 32세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영화 한편으로 전 세계에 이탈리아 영화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고 해서가 아니다. 정말 이렇게 기적 같은 영화는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30년에 걸친 영원한 사랑이야기

이 영화는 전형적 성장 영화처럼 3부로 되어있다.

▲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어린 토토 <사진=필자 캡쳐>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그리고 현재 중년이 된 주인공. 당연히 세 명의 배우가 각자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러나 세 개의 사랑이 긴 세월을 관통하며 존재한다.
첫째는 주인공의 영화를 향한 사랑이다. 어린 나이에 영화의 마력에 빠져든 토토는 결국 평생을 영화와 함께한다. 둘째는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토토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다. 고향을 떠난 후 알프레도가 죽을 때까지 다시는 만나지 않았지만 그 기간마저 그들은 함께했다. 셋째는 청소년 사춘기에 이성으로 만나 처음 사랑에 빠지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한 여성에 대한 사랑이다.
30년이 지나도록 고향집 한 번 안 찾은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기억도 하지 못할 거예요”
“아니다. 꼭 기억하고 있을 거야. 나중에라도 연락하지 않은 걸 알면 서운해 할 거야”
밤늦게 귀가한 살바토레에게 “알프레도라는 사람이 죽었대요. 내일이 장례식이래요” 전화를 받았던 여인이 전해준다. 그는 침대에 누워 회상에 빠져든다.
어린 시절 시칠리아의 조그만 마을 성당에서 신부보조로 일하던 때. 신부는 극장에서 상영할 영화를 검열하면서 성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장면에선 종을 울리고 영사기사는 표시를 했다가 나중에 잘라낸다.
어린 토토는 영사실에서 잘려나간 화면들을 슬쩍 집에 가져와 대사를 붙여가며 논다. 어린 나이에 이미 영화광이 된 것이다.
영사실에서 쫓겨났던 토토는 우여곡절 끝에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배려로 제대로 영사기술을 배우게 된다.
사시사철 영사실에서 말 상대도 없이 혼자 지내야하는 알프레도는 토토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인정하고 동료로 받아들인 것이다.
다양한 관객들, 별의별 군상들이 다 등장한다. 영화 보며 잠자는 사람, 침 뱉는 사람, 욕하는 사람, 박수치며 좋아하는 사람, 영화를 몽땅 외우는 사람, 시골 마을의 유일한 오락거리인 영화관은 항상 초만원이다.
영화를 못 보게 된 사람들을 위해 건물 벽에 영사를 하다가 필름에 불이 붙어 영화관에 화재가 나자 모두 도망가는 와중에, 어린 토토는 영사실로 달려가 필사적으로 알프레도를 구해 낸다.
다 타버린 영화관 대신에 시네마 천국이란 이름의 새 영화관이 들어서고, 시각을 잃은 알프레도를 대신해 어린 토토가 영사기사가 된다.
이제 취직이 됐으니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토토에게 “이건 네가 할 일이 아니야. 네겐 훨씬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어”라며 학업을 계속하도록 충고한다.
토토의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 손을 떼면서 청소년이 된 토토, 세월이 흐른 거다. 이제 키스신도 무삭제로 볼 수 있게 된 관객들, 키스신에서 환호한다. “이제 우리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도시락을 먹어가며 영사기사 일을 하는 토토는 이제 자신의 영화를 찍고 싶어서 16밀리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을 한다.

로마로 가라…떠나 있으면 잊게 된다

어느 날. 전학 온 부유한 여학생 엘레나에게 한눈에 반한 토토가 그녀를 촬영한 화면을

▲ 명장면으로 꼽히는 토토와 엘레나의 키스신 <사진=필자 캡쳐>

시사하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자 알프레도는 “사랑에 빠지면 괴로울 뿐이야 막다른 골목이기 때문이지” 하고 말한다. “멋진 대사군요” “내말이 아니야. 존 웨인의 대사지”
엘레나가 영사되는 스크린에 키스할 만큼 그녀에 대한 사랑에 깊이 빠진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공주를 사랑한 근위대 병사의 옛 얘기를 들려준다.
엘레나에게 애정을 고백했다 거절당한 토토는 그 병사처럼 그녀의 집 창밖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9달이 지나고 새해가 오도록 응답 없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영사실에 엘레나가 찾아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필름이 다 돌아가고 영화가 중단돼 관객이 아우성치도록 사랑의 기쁨에 들떴던 둘의 사이를 알게 된 엘레나의 집에선 난리가 나고, 토토는 한 여름 야외 영화관으로, 엘레나는 가족여행으로 떨어져 지내지만, 열렬한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간다.
야외영화관에 비가 쏟아지고 모두들 비를 피하는 와중에 찾아온 엘레나와의 키스신(율리시즈가 상영되는 스크린을 배경으로)은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입영통지를 받은 토토에게 엘레나는 영사실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다급한 토토는 알프레도에게 영사실을 맡기고 고물차를 몰아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집은 텅 비어있고, 돌아온 토토는 알프레도에게 그가 비운 사이 그녀가 왔었느냐고 묻지만 “아니 안 왔다”고 대꾸한다.
입영한 토토는 수없이 편지를 쓰지만 주소 불명으로 돌아오고 끝내 연락이 두절된 채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온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이곳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인생은 네가 본 영화와는 달라. 훨씬 힘들지. 로마로 가거라. 넌 아직 젊고 앞날이 창창해. 떠나 있으면 그녀도 잊게 될 게다” 엘레나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확신하게 된 토토는 결국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돌아와선 안 된다. 모두 잊어버려. 만일 못 참고 돌아오면 다신 널 만나지 않겠다. 알겠니? 무슨 일을 하던 자신의 일을 사랑하렴” 떠나는 토토에게 역에서 알프레도는 신신 당부한다.
초인종소리에 뜨개질하던 어머니는 바늘을 떨어뜨리고 실이 한없이 풀려나가다가 멎는다. 토토가 집에 온 것이다.

엘레나 이후 30년 기다려

장례식이 끝나고 바에 들른 토토는 엘레나를 꼭 닮은 처녀를 보고 놀란다. 옛날 자신이

▲ 30년만에 재회한 두 사람.<사진=필자 캡쳐>

촬영한 엘레나의 필름을 돌려본 토토는 그 처녀가 엘레나의 딸임을 직감한다.
“어머닌 젊으셨을 때 아름다우셨잖아요. 더 나은 삶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재혼 안하셨어요?”
“네 아버지는 내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야. 난 다시 사랑에 빠질 자신이 없었단다.”
어머니처럼 토토도 엘레나 이후 여러 여자들을 만났지만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없었다.
엘레나의 집을 알아내고 전화를 하지만 창문 커튼 뒤로 실루엣만 보이는 그녀가 전화를 받자 아무 말도 못하고 얼른 전화를 끊는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떨리는 가슴으로 전화를 했다가 상대가 전화를 받으면 이렇게 끊었던 것일까? 잠시 후 큰맘 먹고 다시 전화하는 토토.
“여보세요. 엘레나씨 계십니까?”
“네 전데요” 심장이 멎는 듯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살바토레야 기억해?” 한동안의 침묵 “기억해”
“네 집 앞이야.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다 지난일이야 내 생각엔 만나지 않는게 좋겠어” 하고 전화를 끊는다.
방파제를 찾아 파도치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토토. 그때 어둠속에서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차 한 대가 다가와 문을 열고 “살바토레” 하고 타라고 한다.
어둠속에 묻는다.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해변을 좋아했잖아 여기 있을 거라 짐작했지”
토토는 실내등을 켠다. “여전히 아름답구나”
“난 이제 늙었어” 엘레나는 다시 실내등을 끈다. 늙은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이다.
다시 어둠속. 바람에 흔들리는 외등의 불빛만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하며 차속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춘다.
“난 결혼도 안했어” “나를 기다렸던 거니?”
“널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나도 그래”
“왜 그날 약속대로 천국 영화관에 안온거니? 널 30년간 기다렸어”
“갔었어. 하지만 너무 늦었지. 네가 없길래 알프레도 아저씨에게 나 이사 간다고 꼭 전해 달라고 했어. 그는 이제 우린 만나지 말아야한다고, 널 위해서도 잊어야한다고 했어. 그래도 난 메모지에 친구주소를 적어 놓고 널 기다렸지만 넌 연락도 없이 사라졌어”
“난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널 찾았는지 몰라. 그러나 헛수고였지 그래서 떠난 거야.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사랑이었는데 아버지처럼 여겼던 그 노인이 망치다니...”
“아니야 그는 진정으로 널 이해한 사람이야. 우리가 결혼했다면 아마 넌 그 위대한 영화들을 만들지 못 했을 거야” 30년 만에 진실을 알게 된 두 사람 힘껏 포옹한다.

천국 영화관 폭파되고 추억도 사라져

▲ 시네마천국 라스트신중 한장면.<사진=필자 캡쳐>

6년 전 문을 닫아 폐가처럼 된 천국 영화관의 영사실에서 토토는 그녀가 남겼던 메모를 찾아내 읽는다.
“우린 오늘밤 떠나. 친구주소를 남길게 꼭 연락해. 내 맘은 절대 변함이 없을 거야. 널 사랑해. 절대 날 버리면 안 돼 키스 너의 엘레나”
너무나 후회스럽고 통곡이라도 하고픈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돌아서서 읽는다.
떠나는 날 토토는 엘레나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다음에...”
“아니,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 과거만 있을 뿐이야.
어제의 만남은 아름다운 꿈에 지나지 않아. 이것보다 더 나은 끝맺음은 없을 거야” “당신 말에 동의 못해 절대로”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굉음과 함께 천국영화관은 폭파되어 무너져 내리고, 토토의 과거와 추억도 함께 무너져 먼지처럼 사라진다.
돌아온 토토는 알프레도가 그에게 남긴 필름 통을 시사실에 넘기고 영사를 부탁한다.
그리고 영화사상 가장 감동적인 라스트신의 하나가 펼쳐진다. 스크린에는 수많은 키스신을 포함해서 신부에 의해 검열에서 삭제되었던 장면들이 이어져 비춰지고 있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에겐 끝사랑이 가장 중요하단 말이 있다.
결국 엘레나도 그렇게 사랑하던 토토 대신 택한 현재의 남편과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그와의 사랑을 과거 속에 묻어버린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실제로 시골 영화관의 영사기사에게서 영화기술을 배웠으며, 그를 모델로 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고 감독을 맡았다.
세심하게 계산되고 완벽하게 연출된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원숙함을 과시하는데, 이어 발표된 작품들도 걸작들이지만, 이 영화만큼 탁월함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전편을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감미롭고도 유려한 음악은 장면과 완벽하게 일치하면서 이 영화의 완성도를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천국같은 영화가 있다면 바로 이 영화일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0호 (2015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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