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외톨이’ 정진문화가 없다

[제2 경제기적의 길③]

바보와 천재의 두 얼굴
아인슈타인이 성공한 사회
한국엔 ‘외톨이’ 정진문화가 없다


글/ 심상근 버클리 공학박사· 박근혜대통령 정책자문

“남한은 그러한 왜곡되고 망국적인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재벌들 때문에 나라가 잘 먹고 잘살았다. 잘 먹고 잘 살면 많은 문제점들이 가리어진다. 박정희는 ‘신앙촌적 민족성’을 고치려는 우를 범하는 대신, 그것을 응용한 재벌들을 육성함으로써, 즉 ‘경제적 칭기즈칸 군대’들을 육성함으로써 경제부흥과 국가중흥을 기하였다. 박정희는 영웅이기도 하지만 완전 천재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잘 먹고 잘 살게 된 이유가 그러하다면, 서양인들이 잘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벌총수라는 일종의 교주 하에 신앙촌적 무리를 만들어 칭기즈칸 군대처럼 맹렬하게 움직이는 재벌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10등 수준의 경제강국으로 만들었다면, 미국과 유럽의 백인들이 지난 수백 년 간 세계문명의 앞장을 서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을 파악하기 전에는 대한민국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나를 알고 또 상대를 알아야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낙제점수로 대학서 쫓겨나

서양이 중세기는 물론 현대에서도 문명에 앞장서고 가장 잘 먹고 잘 사는 근원적 이유는 ‘천하의 로너(loner;외톨이) 아인슈타인’에게 숨을 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분위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만 파악하면 서양문명의 진수가 손금처럼 읽혀진다. 같은 이야기는 에디슨에게도 적용되고, 기라성 같은 실리콘밸리 영웅들에게도 적용된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에서 쫓겨났다. 학업성적이 너무 나빴었기 때문이다. 그 것도 그럴 것이, 아인슈타인은 입학부터 이상했다. 그 명문 공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에는 전반적으로 성적이 너무 나빴다. 그러나 교수들의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수학 능력이었다. 그의 수학 능력은 이미 대학의 수학과 교수를 능가하였다. 이에 감명 받은 그 대학은 아인슈타인을 예외적 조처로써 입학시켰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입학시켜준 대학에 대하여 감지덕지하여 행실을 바로 잡고 열심히 공부하는 대신, 아예 강의에 들어가지 않고 그 대학 교정을 가로지르는 강가에 앉아 하염없는 사념에 빠져 있었다. 그의 성적은 물론 낙제점수였고, 할 수 없이 그 대학은 그를 내쫓았다.
그의 기숙사 룸메이트는 아버지가 특허청장이었다. 아버지를 조르고 떼를 써서 아인슈타인에게 특허청 말단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아인슈타인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도서관에서 그의 사념을 이어갔다.
그에게 학을 뗀 것은 그 대학뿐이 아니었다. 하숙집 아주머니도 아인슈타인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밤중에 잠을 깨우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 저, 아인슈타인입니다. 또 부탁드려 죄송한데, 또 깜박 제 방 열쇠를 잊고 나왔는데, 문 좀 열어주셨으면…” 한두 번도 아니고 노상 이러므로 그 하숙집 아주머니는 아인슈타인을 바보천치로 아예 돌려놓고 있었다.

마담 퀴리가 밀어줘 노벨상 수상

대학졸업장도 없는 아인슈타인은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었고 게재되었다. 그의 논문들을 눈 여겨 본 사람들 중에는 마담 퀴리가 있었다. 마담 퀴리는 이미 노벨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학자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마담 퀴리는 아인슈타인이 내놓은 우주관에 감명을 받았고 아인슈타인을 학계에서 밀어주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대학 졸업장도 없는 아인슈타인은, 어럽쇼,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사진=einstein.biz 사이트)

이에 가장 놀랜 사람들은 그를 쫓아낸 대학교와 아인슈타인을 바보로 취급하였던 하숙집 아주머니였을 것이다. 그 대학은 밤을 도와 졸업장을 인쇄하여 아인슈타인에게 보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어떻게 반응을 보였는지는 문헌에 밝혀진 바가 없다. 아마도 큰 케이크를 구어 아인슈타인에게 전했을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은 전기자기 현상을 설명한 소위 맥스웰의 이론을 완전한 이론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는 그 이론을 훨씬 더 큰 물리체계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강의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이미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그 이상의 물리적 체계를 정립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당시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야기하여 주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벼농사를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을까? 벼는 좀 특수한 작물로 여겨진다. 수초처럼 물이 고인 곳에서 크지만, 밭에서 나는 보리와 밀처럼 곡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어느 곡물보다도 더 아름답고 맛있고 영양가가 훨씬 높다. 밀처럼 어느 사람들에게 소화불량의 증세도 주지 않는다. 당시 글도 존재하지 않았고, 물론 신문이나 그런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누가 어디서 언제 처음으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획기적인 발명이었을 것이다. 베트남에서 중국, 한국 일본에 걸쳐 식사를 하는 것은 즉 밥을 먹는 것이고 그 밥은 벼농사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가래떡, 인절미, 시루떡, 송편, … 이러한 맛있는 별미 음식들도 벼농사 덕분에 창안된 음식들이다. 병이 들면 먹는 미음에서부터 여행 중 휴대하고 다니던 미숫가루 등도 벼농사 덕분에 생긴 메뉴들이다.
아인슈타인의 발견과 발명들은 현대 과학에서 벼농사 비슷한 것이다. 그의 연구로 인하여 우주의 이치를 더 잘 알게 된 것은 물론, 햇빛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광전지, 광섬유통신과 홀로그래피(holography;입체영상기술) 등의 근간을 이루는 레이저도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양자역학을 집대성한 물리학자들은 ‘현대의 벼농사’를 가능케 한 공신들이다. 그들이 아니라면 휴대폰, 광섬유통신, 반도체 응용 제품들 등 기라성 같은 현대 첨단기술제품들과 그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지구상에 서양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베트남에서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양국가들만 존재하였다면 이러한 시장들은 오늘도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은 수만 년 전에 발명한 벼농사에 매달려 그저 세끼 먹으면 다행이고 장땡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양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성공하고 기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면 서양을 이길 수 있는 방안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대한민국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바보 아인슈타인이 천재성을 발휘한 사회

그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은 ‘예수 덕분’이고 긴 답은 아래와 같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천재들은 동양에도 물론 태어난다. 관건은 그러한 천재들이 기여할 수 있을 만큼 사회여건이 우호적이냐 하는 것이다. 진기한 산삼이 특수한 토양과 환경에서만 크게 자랄 수 있듯이, 천재들에게도 특수한 사회적 여건이 필수이다.
앞질러서 이야기하자면, 현재 즉 2015년 초를 기점으로 ‘아인슈타인’이 천재로서 성장하여 빛을 발할 수 있는 사회로서 미국 및 서구를 100으로 잡으면, 일본은 70, 중국은 60, 인도 50, 한국은 0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차차 밝혀질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서양인들은 사자와 같고, 일본인들을 고양이 같고, 중국인은 코끼리 같고 인도인은 산양 같고, 한국인은 이리와 같다.
서구문화의 근원은 유목민 문화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가축을 키우며 물과 풀을 찾아 수시로 이동하는 유목민들의 이야기이다. 한 곳에서 수백 년 이상, 반영구적으로 정착하여 살아가던 동양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를 가졌었다. 그렇게 반영구적으로 모여 사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염치’이다. 이는 법 훨씬 이전의 개념이다. 염치없이 행동하면 동네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고 당장 아들 딸 결혼시키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었다. 심지어 동네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수저가 몇 개인지 까지 동네와 인근이 상호 모두 알고 지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일본과 미국을 비교하면 일본의 경우, 천 명 당 엔지니어 수효는 미국에 비하여 열 배가 넘지만 천 명 당 경찰 수효는 미국에 비하여 십 분지 일도 안 된다. 농경문화적 일본의 경우, 경찰서에 불려가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큰 수치였다. 무죄건 유죄건 상관없이 수치였다. 그런 처지와는 천 리 만 리 거리를 두고 항상 조심조심, 신중하고 모범적으로 사는 것이 모두에게 요구된다. 즉, ‘염치’를 잊으면 안 된다. 법에 걸리는 것은 고사하고, 죄처럼 보이는 것(appearance)조차 금기였다. 모두가 법을 어겼다는 것을 아는데도, 유능하고 교활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무죄선고를 받으면 의기양양해 하는 미국인과는 달라도 엄청 다르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짓, 즉 ‘염치’를 어기는 일을 하는 것조차 절대로 “No, No!”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경우 인구 당 경찰의 수효가 미국의 30분지 1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서구문화의 경우, 상황은 정반대였다. 이웃은 항상 변하고 유동적이었다. 그러므로 절대적 계명이 필요했고 유일신이 필요하였다. 그들에게는 두리뭉실한 ‘염치’가 아닌, 대쪽처럼 엄정하고 정교한 법과 계명이 필요하였다.

미국과 서구는 예수의 땅

미국과 서구는 ‘예수의 땅’이다. 이전에 이야기한대로, 근 2천 년간 천주교는 수백 만 명의 여성들을 이단으로 불태워 죽이고 왕조차 파문으로 위협하며 예수의 계명을 종교에서 문화로, 문화에서 관습으로, 관습에서 습성으로, 습성에서 버릇으로, 완전히 토착화시켰다. 그러므로 미국과 서구 백인들은 이제는 교회를 가건 안 가건 소용없다. 숨 쉬는 모든 사회공간이 그와 같이 이미 완전히 교화 내지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식은 예수가 18년 간 위탁한 존재들이었다. 부모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가르침은 예수의 가르침으로 통일되었다. 심지어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도 예수의 사랑을 전달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예수는 모든 규범과 사랑을 전매특허화 하였고, 들판의 빛이 모두 태양에서 오듯이 모든 사랑은 예수로부터 온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전의 글을 다시 인용하자면, “예수는 한국인들처럼 작당하여 끼리끼리 보아주고 거짓말도 해주고, 나라야 망하건 말건, 각 무리들이 사적 이익을 위하여 무한투쟁을 하는 것을 인간들이 ‘함께 사는 법’ 중 가장 큰 죄악이라고 천명하였고 이를 계명으로써 가르쳤다. “만약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대하기를 너의 친형제 대하는 것보다 눈곱만치라도 소홀하게 대한다면 너는 필히 지옥에 갈 것이다!” 표현은 이와 다소 다르지만, 이는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계명이다. “이웃을 사랑하라!”의 본질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이웃일지라도 친형제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같은 교회 다니는 교우들과 작당하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상례이다. 예수 이야기대로라면 한국에서는 교회에 안 갈수록 천당에 갈 확률이 현저히 높아진다. (인용 끝)”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고 왕들을 무릎 꿇리면 근 2천 년간 예수의 가르침은 서구사회를 제압하였다. 자식과 형제들조차 내 자식 내 형제이기 이전에 예수의 자식들이었고, 그러므로 예수가 정한 규범이 우선시 되었다. 그 결과, 인간관계는 부모 자식 지간에도 거리가 있고 지킬 것은 상호 지켜야 하고 상대의 공간(space)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 등, 상당히 엄정하게 된 바가 있고, 고로 미국 애들은 한국 어른들보다 더 어른스럽다. 이는 진실이다.
무릇 인간 행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외로움 관리법’이다. 이것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규정한다. 외로움은 생물의 속성이다. 모두 홀로 태어나고 홀로 죽는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실제로 모른다. 서구에서는 근 2천 년간 ‘외로움’을 인정하지 않았다. 언제나 ‘예수’가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외롭다면 신심이 모자란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끝이 아니다. 천당이건 지옥이건 평소 행실에 따라 가는 곳이 정해진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은 모두 ‘사자(lion)’처럼 살았다. 모두가 예수 앞에서 평등한 예수의 자식들이었고, 그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이 정의되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사자 대 사자처럼 상호 최대의 존중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상식이었고 생활규범이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서 서구사회에서는 “떼를 쓴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망동으로 여겨진다. 3살짜리 애기도 부모에게 떼를 안 쓴다. 떼를 쓰는 것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히 인간 대 인간으로 즉 인격체로 키운다.
이는 미국과 서구의 소설 혹은 영화를 관찰하면 인식되는 일이다. 어른과 애들 모두, 상당히 독립적이고 어른스러우며, 한국인 관점에서는 거의 사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서로 뭉개기’식 삶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몇 달 안에 삐쩍 말라서 비실거리다가 병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서구인들에게 없는 한 필수요소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서로 뭉개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서구인들 사이에서는 서로 뭉개는 것은 결코 용허되지 않는다. 부모 자식 지간이건, 친구 사이건, 부부 사이건, 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인에게는 ‘서로 뭉개기’는 세끼 밥만큼 중요하다. 거기에서 모든 삶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서로 뭉개기’는 일종의 마약이고 마취제이다. 뭐 나쁜 뜻은 아니다. 그 효용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로 뭉개며 산다. 그래서 포장마차집을 위시한 술집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목표는 ‘외로울 사이가 없는 인생’이다. 그 면에서 핸드폰(cellular phone)은 한국인을 위하여 탄생한 제품이다. 한 시도 혼자 있지 않고 싶은 한민족을 위하여 하늘이 준 선물이 핸드폰이다. 아니, 핸드폰은 한국인들에게는 일종의 신(god)이다. 삼성이 핸드폰 장사에서 챔피언이 된 이유 중 하나는 삼성이 한국 회사이기 때문이다. 내수가 끝내준다.
그러므로 미국 공원에 가보면, 백인들은 혼자서 개를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고 많아야 부부 두 명, 가족 서너 명이 고작이다. 예외가 없다. 한국 교포들은 떼로 온다. 교회 교우 단위로 수십 명이 오거나 적어도 여러 가족들이 함께 온다. 백인들은 결코 그와 같이 몰려다니는 법이 없다. 미국에서 몰려다니는 순서로는 한국인, 흑인, 멕시코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서구 사회에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낳자마자 어른대접을 받았다. 즉, 외로움을 스스로 해결하기를 요구 받았다. 서구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외로움을 결코 해소해 주지 않는다. 애기가 심심해서 자꾸 안아달라고 보채는 경우, 그냥 울다 지쳐서 잠들도록 한다. 몇 번 그러고 나면 아기는 포기하고 외로움을 스스로 삭인다. 이는 진실이다.
그러므로 서구인에게는 외로움은 속성이다. 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 해소해야 할 개인적 문제이다.
그러므로 백인들은 애기 때부터 죽을 때까지 홀로 무엇인가에 스스로 집중하고 골몰하는 것이 통례다. 상호 외로움을 해소시켜주지 않는 것이 사회규범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서도 이 규범은 작동한다. 사랑한다고 서로 애기 보아주듯이 공간(space) 없이 마구 다가가는 것은 수용되지 않는다. 각기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사랑이 존재한다.

정이 많지만 낯을 가려 처신 서툴러

한국인 기준으로는 그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는 확실하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던 즈음, 어느 여름 날 저녁에 산보를 나갔더니 7살쯤 되는 소녀가 동네 길가 덤불을 뒤적이고 있었다. 물어보니, 놀다가 인형을 잃어버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러자 그 소녀가 하는 소리에 나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할 수 없네요.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요.” 당시는 여름이었다.
한국 애 같으면 당장 새 인형 사달라고 조르고 떼를 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소녀는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려야 부모님이 인형을 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떼를 쓸 수 없는 사회, 떼를 쓸 수 없는 문화, 그것을 목격한 순간, 나는 그 소녀를 잡고 울고 싶었다. 그것은 ‘외로움’의 문제였다. 밤이면 옆에 끼고 자던 인형을 잃었어도, 그 인형을 잃은 외로움과 인형이 없이 잠이 들어야 하는 그 외로움을 그 어린 소녀는 당연한 듯이 감내하고 있었다. 한국문화 관점에서 그 것은 비극이다.
미국에서 크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한국계 애들끼리 모이면 난리가 벌어진다. 던지고 뛰고 구르고 난리를 치며, 어머니들은 대견하다는 듯이 깔깔거린다. 그러나 그 애가 백인 집에 가면 영국 왕실의 왕자처럼 행동한다. 그 집 엄마가 아이스크림이라도 내오면 식탁에 곧추 앉아 의젓하게 인사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왕자처럼 먹는다. 이와 같이 어린 교포 아이들조차 한국문화와 서구문화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한국계 아이 집에서는 마구 뭉개고 백인 아이 집에 가면 영국왕실의 왕자처럼 행동한다.
중국계 집에 가면 그 중간이지만 백인계 쪽에 훨씬 가깝다. 중국문화에서도 ‘응석과 떼’, ‘뭉개기’는 결코 받아주지 않는다. 기저귀 찬 애기 때부터 어른스럽게 대하고 커가는 자식들이 어른스럽고 책임감 있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중국계는 어른이 되어도 백인들보다 오히려 더 어른스럽다. 백인과 중국계가 섞이면 중국계가 맏형 노릇을 하는 적이 대부분이다. 백인들을 막냇동생처럼 다독이고 배려한다. 이는 나에게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일본인계들도 백인들, 중국계들 못지않게 홀로 서고 어른스럽다. 그리고 행실이 아주 깔끔하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그런 일은 죽는 것처럼 싫어하고 피한다.
포용력으로 치면 중국인들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백인, 일본인 순서다. 일본인은 포용력보다는 사무적으로 정갈하고 깔끔하게 처신함으로써 존재감과 장악력을 높이는 기질이다.
중국인, 백인, 일본인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애기 같다. 정이 많고 그렇지만 낯을 많이 탄다. 워낙 친한 사람들끼리 뭉개며 살아온 탓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하면 서투르다.
다만, 소위 ‘삼성맨’들은 백인들 비슷하게 독립적이고 깔끔하게 처신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회사 문화가 그런 방향인 듯하다. LG 쪽은 사훈도 ‘인화’ 이런 것을 강조하는 반면, 삼성은 효율성 같은 것을 더 강조하는 느낌을 받았고, 한국인들 중에 그래도 가장 백인들 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내가 접했던 인사들은 사장 등 임원들, 그리고 국제적 수준의 첨단기술제품에 관련된 사람들이므로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접한 바에 의하면 그랬다.

백인들은 장인정신처럼 자기 일에 몰두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흘러간 느낌인데, 아인슈타인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수학에 조예가 깊은 한 친척 아저씨가 10살도 안 된 아인슈타인에게 수학책을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그 수학책을 만화책처럼 열중하여 읽고 만화책처럼 쉽게 터득하였다. 이에 감명을 받은 그 아저씨는 정도를 높여가며 수학책을 주었고, 아인슈타인은 당나귀가 당근 먹듯이 소화해 내었다. 제 좋은 일에만 골몰하는 천재답게 다른 과목 성적은 별로였으나 고등학교 졸업 당시 아인슈타인의 수학 실력은 명문 대학교 수학교수들의 실력과 맞먹거나 오히려 더 높았다. 이에 감명 받아 다른 과목들은 죽을 쑤었을망정 명문 공과대학에 입학이 되었으나, 이전에 이야기한대로 퇴학생-특허청 직원-노벨 수상자의 길을 걸었다.
‘외로움’은 공기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그 것들로 차있다. 한 사회의 문화는 대체적으로 그 구성원들이 그 ‘외로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의하여 규정된다. 외로움을 각자 삭이도록 규정된 서구사회에서는 그러므로 대부분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정진한다. 이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외로움은 비수와 같다. 영혼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위험하고 지독한 것이다. 서구인들은 그러므로 외로움에 의하여 다치거나 심지어 죽지 않기 위하여 어느 일에 매달리고 정진한다. 아인슈타인도 그 중 하나였고, 단지 그는 수억 명 중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였고 그래서 그 희한한 진실과 진리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미국 백인 남성들은 대부분 자기 차의 가벼운 고장은 스스로 고칠 능력이 있다. 많은 경우 엔진을 분해하였다가 조립할 수 있다. 지붕을 고치거나 개조하거나 심지어 집을 바닥부터 지을 능력도 있다. 집안에 무엇이 고장이 나면 대부분 스스로 고칠 능력이 있다. 이는 모두 외로움을 홀로 삭이고 해소해야 하는 존재들로서의 몸부림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백인들은 일과 후 근 100%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주말에도 대부분 각기 집에 있다. 부부 단위, 거족단위로 지낸다. 회식이라는 것은 미국에 없다. 무슨 경사 등이 있으면 점심 때 나가서 피자를 먹고 들어오는 것이 고작이다. 크리스마스 때 모임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혼자 하는 일이 없는 것은 곧 지옥이다. 그래서 백인들은 별 것 별 것을 다 할 줄 안다. 자기 차 엔진을 통째로 갈아 끼우는 일 같은 것은 예삿일이다. 그런 일조차 안 하면 무료함에 지쳐 죽을 것이다.
이는 장인정신과 관련이 깊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개인적 외로움을 각기 삭이고 해결해야 하는 문화로 인하여, 즉, 놀아주는 사람들이 전혀 없으므로, 백인들은 시간이 엄청 많고, 자기만 원하면, 그리고 그 분야가 요구하는 두뇌 혹은 소질만 있다면, 어느 분야에서 장인이 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처럼 천재가 아닌 경우에도 서구인들은 대체로 모두 자기 일에 집중하고 산다. 아니면 외로움에 지쳐 죽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책임감 있게 훈육

에디슨은 초등학교 다니다가 때려치웠지만, 눈만 뜨면 책을 읽고 연구하였다. 고로 그의 지식의 양은 박사 수준을 넘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공부로 아는 한국문화와는 아주 다르다. 백인답게 에디슨은 로너(loner;외톨이)이었다. 상당히 유명해진 후에도 그랬다. 하루는 스스로 하루 휴가를 내어 집에서 쉬었는데, 한 시도 앉지 않고 서성거렸다. 보다 못해 그의 아내가 일렀다: “모처럼 휴가 날 그렇게 서성거리지만 말고 가장 재미있는 일을 생각해서 하세요!” 그러니까 에디슨은 손으로 자기 이마를 치며,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하고는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연구실로 출근했다.
일본인들도 상당히 백인들과 유사하다. 자기 외로움으로 타인을 개기지 않는다. 부모건 형제건 친구건 동료건 심지어 부부건, 각기 홀로 설 능력을 간난이 때부터 훈련 받고 일생 소유하고 있다. 그러한 상태로서 타인을 대한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은 백인들과 비슷하게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능력과 소질이 있는 경우 대가(大家)를 이룬다. 일본인들이 심심치 않게 과학부문 노벨상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인들도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간난이 때부터 책임감 있고 어른스럽기를 요구 받으며 그렇게 훈육된다. 중국계는 그러므로 미국에서 과학부문에서 노벨상을 수상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인도인들도 ‘외로움’을 홀로, 어른스럽게 다스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미국 첨단기술계에서 중국계 다음으로 많은 연구개발에 종사한다. 미국 첨단기술계의 고급 기술인력의 90% 이상이 중국계와 인도계이다. 베트남계가 조금 있고 한국계는 통계상 완전 영이다. 미국에서도 한국계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강아지들처럼 거의 항상 뭉쳐서 몰려다닌다. 부모 성화에 고등학교 때 과외까지 하며 공부를 하여 하버드에 진학하는 한국계가 상당히 있지만, 일단 입학한 후에는 인종 중 한국계의 성적이 가장 낮다. 이는 하버드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큰 문젯거리이다.
그리고 이공계는 공부하기가 인문계보다 열 배, 백 배 더 힘들다. 상식적인 것은 전혀 없고 모두가 외국어처럼 생소한 내용이고 대부분 난해한 수학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계는 이공계에서 탁월해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매진할 수 있을 만큼 홀로 ‘외로움’을 매니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홀로 정진하는 외로움 매니지 문화 없다

‘외로움’은 영혼의 향기이다. 저녁에 밖에 나가 공기를 숨 쉬며 그 향기를 느껴보는 것처럼, 외로움은 공기처럼 항상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영혼의 향기’이다. 그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중요하고, 그 것과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 받는 것은 중요하다.
‘외로움’은 상추와 같다. 소박하고 은은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상추를 따로 먹지 못한다. 양념된장, 삼겹살, 풋고추, 새우젓, 뭐 그런 것들을 싸서 함께 먹는다. 혹은 고추장에 푹 찍어서 고추장 덩어리로 만들어 먹는다. 상추는 외로움처럼 너무 밍밍하고 은은하고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개선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백인이건, 일본인이건, 중국인이건, 인도인이건, 한국인이건, 자신의 문화는 결코 바꿀 수 없다. 얼굴은 성형하여 바꿀 수 있어도 전통과 문화와 관습은 바꾸지 못한다.
다만, 이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남한은 그러한 왜곡되고 망국적인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재벌들 때문에 나라가 잘 먹고 잘살았다. 잘 먹고 잘 살면 많은 문제점들이 가리어진다. 박정희는 ‘신앙촌적 민족성’을 고치려는 우를 범하는 대신, 그 것을 응용한 재벌들을 육성함으로써, 즉 ‘경제적 칭기즈칸 군대’들을 육성함으로써 경제부흥과 국가중흥을 기하였다. 박정희는 영웅이기도 하지만 완전 천재다.” (인용 끝)
대한민국은 그로 인하여 단군 이래 처음으로 잘 먹고 잘 살았지만, 그 방법은 이와 같이 특수한 것이었고 극히 제한적이다.
이전에 재벌총수들에게 보낸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그 전략의 효과를 상당히 둔화시키고 있다. 모든 것을 법대로, 정식으로 하는 미국인, 일본인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돈 버는 일이라면 법도, 상식도 없다. 한국인들이 돈 버는 데 마적 같다면 중국인들은 소리 없이 움직이는 도깨비들 같다. ‘한강의 기적’ 이후 그런 적은 한국에게 처음이다.” (인용 끝)
백인들과 일본인들을 넘어 등장한 중국인들을 대처하고 시장에서 이겨내기 위한 전략으로서, 대한민국은 ‘아인슈타인’을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실리콘밸리의 그 기라성 같은 이공계 챔피언들을 기대할 수 없다. 좀 성공했다 하면 안철수 식으로 정계를 넘실거린다. 왜? 홀로 정진할 수 있을 만큼 ‘외로움’을 매니지하는 문화가 대한민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는 것이 최선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안철수는 하였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안철수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기 전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는 것이다.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간보기와 망보기로 정치를 하는 그는 ‘외로움’에 응아-하고 우는 간난아기일 뿐이다. 오래 전 한글 소프트웨어를 처음으로 개발한 이찬진도 그랬다. 비례국회의원 한 번 하고 스타 급 여성과 결혼하고, 그렇게 안철수처럼 이공계를 방기하였다. 미국 첨단기술계 인력의 90% 이상이 중국계와 인도계인 반면 한국계는 통계상 완전히 영인 이유도, 그리고 하버드에서 한인계 성적이 가장 낮은 것처럼, 우리 모두는 ‘외로움’을 무서워하는 애기들이다.
그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무슨 정책을 동원하여도 대한민국에서는 아인슈타인이나 빌 게이트, 스티브 잡스 같은 이공계 챔피언들이 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다음에 그 방법론에 대하여 이야기하겠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0호 (2015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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