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중 서울소식

유럽 여행중 서울소식
메르스 유감천만

글/金淑 (김숙 본지 상임 편집위원)

해마다 거의 같은 일정으로 서유럽이나 북유럽이나, 좌우간 유럽의 어딘가를 누비고 다닌다면 우선 배부른 자랑한다고 뒤통수에 대고 눈을 흘길 게 뻔하다. 어쩌면, 그 것으로는 모자라 고생하는 사람 앞에 두고 어깃장 놓을 거냐고 따지며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소비 위축심리가 길어지더니 요즘 들어서는 경기침체가 바닥을 치다 못해 뚫을 지경이라 너나없이 지쳐 있고 힘들어 하는 실정이다. 울고 싶은데 때려주는 사람 없냐는 듯 대상모를 불만도 많고 불특정다수를 향한 횡포도 늘어난다. 그러니 거기에 대고 스웨덴의 복지정책이 어떻고 이태리의 패션거리가 어떻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주책없이 늘어 놓다가는 한 대 얻어맞거나 끝내 멱살잡이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만 해도 그런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일이다. 안부를 묻는 지인에게 별 생각 없이 동유럽 쪽을 여행 중이라 했더니 다짜고짜 여유며 오만이라고 필자를 매도하는 거였다. 하기는 힘겨운 현실을 버티어내고자 굵은 땀방울을 떨구어내고 있는 마당에 제3자의 철없는 행보를 듣거나 지켜봄으로 상당부분 심사가 뒤틀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다가 아닌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 중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다. 필자의 경우는 아들네부부가 북유럽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사는 까닭에 연례행사로 그쪽을 오가고 있다. 그때마다 떡 본 김에 제사 좀 지내보자는 심리로, 이를테면 엎혀 가는 여행을 계획하는 잔꾀를 부려보자는 속셈이다. 그 기간이 하필 4월에서 5, 6월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야 세월호 참사를 겪든 말든, 메르스 감염자가 늘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한심하다 싶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자니 제 편할 대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도 있고 시쳇말로 팔자가 늘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지은 죄 없이 죄인이 된 꼴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는 입장이고 또 거기에는 남들 모르는 후유증도 부분부분 남아 있기도 하다. 때로는 발목의 복숭아뼈가 삐끗할 수도 있고 무릎께가 깨져 피가 철철 흐를 수도 있다. 심지어 허리를 다쳐 신경이 저릴 수도 있다.
그런 일련의 크고 작은 상처를 감수하더라도 1년에 한 번 쯤은 움직여야 한다. 이미 해외동포가 되어버린 자식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다보며 감정적인 부상병이 되어 돌아오는 필자의 쓸쓸함이나 아픔 따위는 누구도 감히 눈치 채지 못한다. 거기에는 쉽사리 입을 뗄 수 없는 민감한 부분의 문제(?)들을 더러더러 감추어두고 있는 탓도 있고 부지불식간 표정을 관리하는 탓도 다분히 있다. 그렇다 해서 아들 부부가 불효를 저지른 적은 없다. 그만저만하다 할 수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다만 시각의, 입장의, 세대 간의 차이가 간격을 만든다. 절대로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슬프고 안타깝다는 얘기다.
이런 말이 있다, 그 말이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해도 웃어른이 말하면 잔소리고 아랫사람이 말하면 대든다는...
이 부분에서 필자는 시어른께 송구한 마음을 갖는다. 고인이 된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말이다. 특히 시어머니께는 염치가 없어 고개도 제대로 못 들겠다. 시집이 경북인데 서울과 경북지방의 다른 문화나 풍습, 가풍이나 정서가 부딪칠 때마다 늘 할 말을 다하는 소신(?) 넘치는 며느리였다. 그것도 격앙된 목소리나 자극적 행동이 아닌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챙겨가며 말이다. 시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며느리가 달가울 까닭이란 터럭만큼도 없었겠지만 일일이 꼬집어 말한다거나 나무라지는 않았었다. 필시 속으로는 개탄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인간사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공평한 것도 세상사다. 친정 부모님의 말을 안 듣고 자란 딸은 꼭 그와 같은 딸을 낳아 키우게 되어있고 시어머니께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던 며느리는 또 그와 같은 며느리를 맞게 되어있다. 그 부분이 매력적이다. 주었던 상처도, 쌓은 공덕도 용케 제 주인을 알아보고 찾아간다. 무서우리만큼 그대로 돌려받는다. 게다가 어느 때는 도에 넘치는 예의를 갖춰 한 수 위의 덤까지 얹어주는 경우도 있으니 벌려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래저래 요즘 필자가 느끼는 슬픔은 제법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심하게 오락가락한다.
자식농사 만점이라는 말에는 어린애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면서도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보는 안타까운 부모자식 간임에도 사소한 무정함이 눈에 띌 때마다 가슴 아프다.
유럽을 그렇게 자주 여행할 수 있다니 부럽다는 주변사람들의 말에는 고개 끄덕거리면서도 혼자 여유부리냐는 빈정거림에는 금방 눈자위가 붉어진다.
그래, 더 슬퍼해야 한다. 아직 내려놓아야 할 일들도 많이 남아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1호 (2015년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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