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12)]

동도회고(東都懷古)
비로소 정자를 열고
웅장함 자랑했는데


글/ 張喜久 (장희구 문학박사/문학평론가·시조시인)

신라의 옛터를 찾고, 백제의 옛터도 찾는다. 중국의 동북삼성 지역을 가면 화려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맥없이 무너졌던 역사의 뒤안길에서 우리는 그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떠올린다. 중국 하남성인 낙양은 조선의 동경이자 금성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도 그렇게 나타난다. 성주풀이에서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구름은]이란 말도 생각해 본다. 중국 낙양에 비로소 가서 우리의 수도를 생각했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東都懷古(동도회고) / 이지 장일
▲ <사진제공=장희구 필자>

장군과 재상의 정자 열고 자랑했건만
번화함 화려함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들에서 살구꽃 복사꽃 이슬방울 울리네.

四百年前將相家 競開臺幾雄誇
사백년전장상가 경개대사기웅과
只今繁麗憑誰問 野杏山桃泣露華
지금번려빙수문 야행산도읍로화

비로소 정자를 열고 그 웅장함을 자랑했는데(東都懷古)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이지(弛之) 장일(張鎰:1207˜1276)로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최씨 무신정권기에 한사로서 등용되어 고종〜충렬왕 대까지 주로 문한과 대간 직을 두루 맡아보았다. 몽골 황제에게 올리는 표문을 작성하고 사신으로 파견되는 등 대몽외교에도 간여하였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백년 전의 장군과 재상의 집안은 / 다투어 정자를 열고 얼마나 그 웅장함을 자랑했는가 // 지금은 그 번화 화려했음을 누구에게 의지해 물을 것인가 / 들의 살구꽃과 산의 복사꽃이 이슬을 울린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중국 낙양(경주)을 회고함]으로 번역된다. 백제가 중원을 다스렸고, 고구려가 만주를 떡 주무르듯이 누비어 다스렸던 기록은 우리의 역사보다는 중국의 역사 더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중국25사]가 그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뻔뻔스럽게 동복공정을 통해서 숨기려 한다.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작자는 삼국중흥의 역사를 떠올리고 있음이 시적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경주라고 불렀던 낙양성에서 옛날 역사를 회고한다. 번성했던 시절에 온갖 영화를 다 누렸던 장군과 재상들의 좋은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그들은 천년만년 영화를 누릴 것이라 믿고 정자를 열었던 것이 눈에 보이듯이 훤히 보인다. 그 웅장함도 만천하에 자랑했을 것은 분명하겠다.
그렇지만 화자는 중원을 차지했던 그 때의 화려했던 역사를 누구에게 물어 알 수 있을 것인가 되묻는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없어진 왕조와 인걸은 그 흔적 모두를 찾을 수가 없다. 화자가 부르짖는 착상은 오직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 합리화로 선을 긋는다. 산야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살구꽃과 복사꽃만이 이슬을 울리고 있다 하면서…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장군과 재상 집엔 웅장함을 자랑하네, 화려했음 물을 길 없어 이슬 울린 복사꽃’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四百年前: 사백년 전. 將相家: 장군과 재상의 집안. 競開: 다투어 열다. 臺: 누대와 정자. 幾: 얼마나. 雄誇: 웅장함을 자랑하다. 只今: 다만 지금. 繁麗: 번화하고 화려하다. 憑誰: 누구에게 의지하다. 問: 묻다. 野杏: 들의 살구꽃. 山桃: 산의 복숭아. 泣露華: 이슬의 화려함을 울린다. (계속)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2호 (2015년 8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