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곳곳, 연해주와 참전국 노병 찾아

권영해 전 국방 부부
8순 노장군의 애국충정
전국곳곳, 연해주와 참전국 노병 찾아
연중무휴 안보강의, ‘참전보은’ 출장


글/이도형 전 한국논단 발행인(6.25 참전용사,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휴전선에서 연해주, 해남도, 필리핀, 호주를 누비며 365일 봉사하는 권영해(權寧海) 8순의 백발장군과 70대 중반의 노부인이 까만 기아차를 타고 달린다. 부인은 운전석에, 그 옆자리에 노인이 앉아 있다. 백발노인은 육군사관학교 제15기 출신의 장군으로 국방장관, 안기부장 등을 역임했다. 바늘에 실처럼 늘 운전을 하며 함께 국내외를 누비고 다니는 노부인은 명문대 음악대학을 나온 한 때 미모(美貌)의 재원(才媛)이다.

전국곳곳 누비며 안보, 국제관계 열강

이 노부부는 북으로는 휴전선 전방부대로부터, 남으로는 부산, 남해 등지의 교회 학교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돌아다닌다. 해마다 6.25를 전후해서는 대학생들을 인솔하고 250km 휴전선을 강행군하며 살아있는 ‘현대사’를 가르치기도 한다.
권 장군은 알려진 명강사(名講師)다. 우리나라의 안보현황, 국제관계, 사회현실…에 관해 한 시간, 때로는 2~3시간 동안 강연을 하면 막판의 청중들은 눈시울이 벌개진다. 그렇다고 높은 톤의 열변을 토하는 것도 아니다. 담담하게 조근조근 사랑방에서 나누는 두런두런한 그의 담화가 매우 논리적이면서 감동적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면 가슴이 뭉클하고 온 몸에 전율을 느낀다.
이쯤 하면 그를 아는 사람이면 금세 누군가를 짐작할 것이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장직에 있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정치보복으로 10년 동안 옥고(獄苦)를 치른 권영해(權寧海)씨와 그 부인 김효순(金孝淳)씨 얘기다. 권 씨의 죄명은 대통령으로 선출된 김대중 씨가 북한의 첩자들과 접촉한 사실을 추적, 문서화 한데 있었다. 그는 국가 안전기획부장으로서 국가안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 후 권 씨 부부는 좌절하지 않고 국가를 위한 일을 했다. 국내에서는 휴전선에서 부산, 남해를 누비고 다니지만, 일 년에 절반가량은 밖에서 지낸다. 중국, 유라시아에서 하이난도(海南島),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돌아다닌다.
가는 곳마다 일이 있다. 들어보면 꼭 그가 해야 할 일도 아니다. 국가나 사회단체가 할 일들이다.

해남도 조선촌 천인갱 추모행사

최근에 그가 다녀왔고, 8월 초 다시 다녀온 해남도에 또 간다고 떠났다. 자주 가는 목적은 ‘해남도 조선촌 천인갱(坑) 탐방 및 추도행사’를 위해서였다. 그는 대한민국건국회 회장의 자격으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와 ‘대한민국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 ‘일제 강제동원 징용자 피해 유족회’ 등과 함께 해남도를 탐방, 추도행사를 주도하고 있었다. 8월 6일부터 10일 사이였다.
해남도 천인갱에서 학살, 암매장된 조선인은 1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군은 2차 대전 패망직전인 1945년 8월 14일, 2천여 명의 조선인징용자들을 강제노역 시키다가 해남도 싼야시(三亞市) 난딩촌(南丁村) 부근 산기슭에 굴을 파고 무기와 군수물자를 감췄다.
작업이 끝나자 일본군은 무기은닉 굴 옆에 또 하나의 굴을 파게 했다. 이들 조선인 징용자들을 몽둥이 죽창 등으로 때리고 찔러 죽여 그 굴속에 생매장 했다는 것. 난딩촌 학살지 일대 마을이 원주민들에 의해 ‘조선촌’으로 개명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 1998.3.2.일자)

참전용사들에게 기념메달 전달

권 전 장관은 필리핀도 자주 간다. 민다나오 레이테섬에 구호활동으로 갔다가 그곳에 인류미답(未踏)의 땅을 발견하고 여기를 개간, 식량을 생산해야겠다고 착안 했다는 것. 그는 국방장관 재직 시 우리 해군이 쓰던 노후 PT를 필리핀에 무상으로 공여한 적이 있다.
필리핀 정부 당국은 그 은혜를 잊지 못해 권 전 장관에게 필리핀에서의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농지개간은 필리핀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같은 목적으로 연해주(沿海州)도 자주 간다. 독립운동의 요람지이기도 한 연해주에는 조선의 유랑민 정착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도 수백만, 수천만 평에 달하는 미답지가 널려 있다. 권영해 씨는 통일이 되면 연해주는 우리나라 식량기지가 될 수 있다고 착안했다. 여기서도 그의 농지개간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권 씨는 호주로도 날아간다. 호주는 한국전쟁 때 연 1만7천명을 파병, 그중 390명이 전사했다. 아직도 생존 중인 노병은 5백여명, 권 장관은 6.25 남침전쟁 60주년이 되는 지난 6월 25일 호주 멜버른과 브리스번으로 날아가 6.25 참전 호주장병들에게 기념메달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아직도 생존한 80~90대 호주 참전자 5백여 명 중 메달을 전달받은 150명은 눈물을 흘리며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내년 6.25에는 참전용사들을 찾아 호주 선샤인 코스트도 갈 예정이라고 한다. 전직 국방장관이 한국 휴전선상의 철조망을 거두어 포철의 협조로 녹여서 만든 메달을 전달한데 대해 노병들은 더욱 감격했다고 한다. 그 많은 경비, 여비는 어떻게 충당하는가.
그는 전국 방방곡곡의 교회, 학교, 지방자치단체 등을 누비며 강연해서 번 돈, 몇몇 독지가와 행정안전부 등 정부로부터 약간의 보조를 받는다고도 했다. 예비역 장군으로서 예편 후 공직자로서 퇴직 후, 더구나 정치보복으로 10년 옥살이 하고도 좌절하지 않는 권영해 장군. 그는 명실공히 용감한 장군이요, 의병과 같은 애국자다.

조선촌 천인갱(朝鮮村 千人坑)이란

일제 강점기인 1943년 봄부터 1944년 말까지 사이에 일본정부에서 우리 동포 2,000여 명을 강제로 중국 해남도로 끌고 가 강제노역을 시키던 중 구타, 학살 등 온갖 만행을 자행

▲ 필자 이도형 전 한국논단 발행인

해 오다가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연합군에 패망하자 동포 1천여 명을 동원 이곳 남정촌 산기슭에 굴을 파고 군수물자를 은닉시킨 다음 그들의 흔적을 없애고자 동원된 동포들을 부근에 땅을 파게 하고 그곳에 가두어 칼로 난자하여 찔러 죽이고 불태워 죽이는 등 참혹하게 학살, 매장하였으니 현지주민들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여 남정촌을 조선촌으로 개명하고 이를 가리켜 조선촌 천인갱(朝鮮村 千人坑)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천인갱(千人坑) 학살사건은 야만적인 일본정부에서 이를 은닉, 함구하며 감추고 있고 우리 정부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있기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1,000여 명의 동포 대학살 사건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3호 (2015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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