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균형 및 평화통일 외교의 결단

한·중 노붕우(老朋友)관계
역사의 반전과 역전
항일 ‘환난지교’ (患難之交) 공동코드
자주· 균형 및 평화통일 외교의 결단

중국의 전승 70주년 기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TV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동북아 역사의 반전(反轉)·역전(逆轉)의 국익관계를 실감한다.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정설을 재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반전 위치에 박근혜·시진핑

▲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각국 정상들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3일 오전 중국 베이징 자금성에서 텐안문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한·중 관계는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로 수교한 이래 23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깊어지고 있으며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국가 주석간 최상의 신뢰관계가 돋보인다. 박근혜·시진핑 양국 신정부는 출범 2년 반 동안 6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진 반면 북한 김일성 3대 세습 왕조는 김정은 집권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2015년 9월 3일 상오, 천안문 성루에서 가진 중국의 전승 7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 오른편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박근혜 대통령, 6번째는 일본으로부터 “중립위치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위치했다. 시 주석 왼편에는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차지했다. 반면에 김정은을 대신한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오른쪽 맨 끝자락에 자리가 주어졌다.
세월의 변신이자 국익관계의 반전·역전임이 분명하다. 모택동 주석시절 김일성이 위치했던 자리에 시진핑과 박근혜가 차지한 역사의 반전을 어떻게 해석할까.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협조로 6.25 남침전쟁을 벌였을 때 중공군은 ‘항미원조’(抗美援朝)로 참전하여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그로부터 65년의 세월이 흘러 김일성의 자리를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신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일본 군국주의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겪었지만 지금은 아베정권과 가장 강력한 미·일 동맹관계로 반전했으니 한·중 관계의 역전과 다를 것이 없다.

항일투쟁과 역사부정 항변 공동코드

중국의 승전 70주년 행사는 천안문 광장의 예보 70발로 시작됐다. 오성홍기의 게양식이 장엄하면서도 항일투쟁의 역사적 의미를 강렬하게 인식시켰다. 청나라가 일본에게 패전한 갑오년 청일전쟁(1894년)으로부터 2015년까지 121년간 중국인들의 고난의 역사를 의장대의 국가 게양식으로 표현했다.
항일, 공산혁명 순국선열들을 모신 민족영웅 기념탑에서 게양대까지 4분 20초간 의장대의 힘찬 걸음이 121보였다.
시 주석은 세계평화의 수호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군사굴기(軍事堀起)의 퍼레이드가 너무나 막강했다. 중국의 국산 신무기 420종이 공개되고 미국대륙에 닿을 수 있는 1만4,000km의 ICBM 등도 과시했다. 이 군사 퍼레이드에 박 대통령이 참관할 수 있는 코드가 항일과 과거사 부정에 대한 공동전선이다.
시 주석은 한·중 양국이 식민침략에 항쟁하고 민족해방 투쟁을 위해 단결하고 협력했노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환난지교’(患難之交)라고 화답했다. 또 인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일본정부의 과거 침략사 부정에 대한 강력한 비판임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중국 승전절 행사에 참석한 것은 항일과 역사부정의 공동 코드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상하이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서 임시정부 청사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청와대>

자주·국익·균형·통일외교 결단

시 주석이 미국과 일본이 거부한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을 ‘가장 귀중한 손님’으로 극진하게 예우한 것은 마땅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망설임과 고뇌 끝에 ‘참가결단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국내에도 찬반양론이 있었고 미국과 일본의 우려와 견제도 있었다. 일본의 극우논객은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끌어다가 사대주의(事大主義) 외교라고 악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참석은 자주·국익·균형외교이자 통일외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중국 언론이 ‘지혜로운 결단’, ‘전략적 선택’이라고 논평했지만 양국관계는 이미 인적교류 1,000만명을 돌파한 오랜 친구 ‘노붕우’(老朋友·라오펑요)관계에 이르렀다. 여기에 전승절 참가 초청을 받고 상당기간 망설이고 고뇌하다가 결단했기에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주적 외교력을 갖추지 못해 망국(亡國)의 서러움과 일제 식민시대 암울한 세월을 참고 견뎌온 대한민국은 8.15와 함께 국토가 분단되고 6.25 침략으로 죽다가 살아났다. 그 뒤 냉전시대와 탈냉전에 이르기까지 북의 직·간접 침략도발 앞에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4강국 틈새에서 종속관계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 사실 아닌가.
지금 이 시각 현재까지 김일성 왕조의 미사일과 핵 공갈에다 일본의 우경화 속에 자주·균형외교 및 평화통일 외교가 얼마나 절실한가를 생각하면 너무나 획기적인 결단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상해 임정청사의 재개관도 역사발전의 교훈

박 대통령이 지난 4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 행사에 참석한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정부가 재개관 비용 7억원을 전액 부담했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김구 등 독립유공자 후손 50여명과 인사하고 임정 외교부장 조소항의 종손자인 조범래 독립기념관 학예연구관의 안내로 백범(白凡) 흉상 앞에서 “임정의 애국정신을 살려 진정한 광복인 평화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결의를 펴보였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관해 합의한 바 있으며 중국과 곧 평화통일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상하이 시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양국 국민의 독립항쟁 역사의 공동재산”이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하얼빈역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꾸며 개설했고 옛 홍구공원에는 윤봉길의사의 폭탄의거 기념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정부가 우리의 항일 독립투쟁사를 양국의 공동재산으로 보존하려는 각별한 정성을 보여주고 있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탈냉전 이후 국익의 중심축이 크게 변화한 역사의 반전을 달리 해석할 까닭이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일투쟁 할 때 모택동의 공산당보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더 많이 지원하지 않았는가는 더 이상은 논란할 필요가 없다.
연합군을 대표한 장개석 정부가 대만으로 옮기고 모택동이 대륙을 통일한 후 등소평을 거쳐 지금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것이 바로 역사의 전개이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도 장개석 정부를 대신하여 현 중국정부가 계승했다. 이번 전승절 열병식 때 시 주석이 평소의 양복 대신에 삼민주의를 제창한 손문(孫文)의 중산(中山·아호)복을 입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를 거쳐 이승만의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6.25와 5.16을 거쳐 경제발전을 통해 민주화 시대를 열고 선거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맞아 분단된 국토의 평화통일을 추진해야 할 시기다. 그렇지만 북한은 김일성 왕조가 3대를 세습하면서 세계와 동북아 역사의 반전을 거역하고 있으니 고립무원을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다.
이미 ‘항미원조’(抗美援朝)의 혈맹관계는 역사발전에 따라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 냉혹한 역사의 가르침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4호 (2015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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