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전지전능 영생불멸
육친의 신(神)



글 / 金淑 (김숙 주부, 자유기고가)

태초에 신(神)이 있었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영생불멸하다.
또 하나의 신이 있다. 후자(後者)의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아도 되고 영생불멸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의 출생과 더불어 신이 되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저마다 ‘고유의 신(神)’을 가슴에 안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일일이 우리와 같이 있어주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보냈다는 개개인의 전령사, 오롯이 우리를 보호해주는 육친의 신, 바로 부모님의 다른 이름이다.
여기에 40년이 다 되어가는 글을 잠시 소개해 본다. 그 시절 유명 월간지에서 부모님에 대한 수기를 공모했던 적이 있었다. 수상했던 작품은 주인공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을 돌아다보며 적은 회고형식의 글이었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내용을 간추려 보자면 다음과 같다.
-소년이 있다. 소년은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 그 중에서도 맨 꼭대기에 살고 있다. 보름날 밤에 나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둥글고 환한 달이 잡힐 것 같다.
종종걸음 치는 아줌마의 양 손에서는 누런 새끼줄에 끼워져 대롱거리는 연탄이 언덕배기를 올라간다.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의 손에 들려있는 간 고등어 한 마리도 짚으로 엮은 새끼줄아래에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런 모습들이 동네의 흔한 풍경이다. 시장길 모퉁이에서는 소년의 부모님이 채소를 팔고 있다. 소년의 아버지는 한 쪽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안개비가 내리던 어느 이른 겨울날,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소년은 부모님의 뒷모습을 본다. 수레에 배추를 잔뜩 실은 채 앞에서 아버지가 끌고 뒤에서 어머니가 밀고 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버럭 화가 난다. 소년은 일부러 딴 곳을 보며 부모님을 못 본 척한다.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천연덕스럽게 따라간다. 가파른 비탈길은 아니라 해도 비스듬히 기울어진 길에서 흔들거리는 수레를 보면 볼수록 울화가 치밀어 오름을 참을 수 없다. 길바닥에 뾰족 하니 솟아있는 돌멩이에 화풀이를 한다. 발끝에 채인 돌멩이는 허공을 낮게 날다 어딘가에 툭 떨어진다. 불공평한 세상에 대고 침을 뱉는다.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에 끌어 오르는 분(憤)을 삭이지 못한 채 결국 방향을 바꾸어 거꾸로 내려간다.
그날 부모님은 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병원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소년이 주먹 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간다. 어머니의 한쪽 다리는 이미 붕대로 칭칭 감겨있다.
빗길에서 미끄러진 수레바퀴에 왼쪽 다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는 어머니... 우두망찰 병원의 흰 벽에 시선을 두고 정물이 되어버린 아버지... 어머니의 다리를 붙잡고 오열하는 소년... 철없음이 몰고 온 엄청난 슬픔... 우두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
그러나 뜨거운 참회는 소년을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준다. 비록 어머니가 절뚝거리게 된 후의 때늦은 깨달음이었을망정 초라한 직업과 남루한 현실을 두 번 다시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수레를 끄는 일도 청소나 밥을 짓는 일도 담담히 받아들인다. 중략...
소년은 훗날 법조인이 된다.-
솔직히 말해 신파 같은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그 시절의 팩트다.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나라의 정의로운 아들로 성장시켜 준 경우라 할 수 있다. 장애를 겪는 부모님에 대한 얘기나 감동적인 내용의 글이 어디 그 뿐이랴 마는 그래도 그 소재가 기사화될 수 있었던 까닭은 철부지 소년의 깊은 뉘우침과 끝없는 효심으로 우뚝 선 인간승리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부모님이 많이 배우지 않았다면 어떤가, 부모님의 능력이 좀 부족하면 어떤가, 설령 가진 게 없고 변변찮아 천한 직업으로 살아가면 또 어떤가... 부모님은 자리에 있어줌 만으로 족하다. 같은 하늘아래 살아있음 만으로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괴변일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신에 비하자면, 부모님은 훨씬 더 삶의 구체성이 있는 현실적인 신이라 말하고 싶다. 세상에 태어나 오직 자식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기도하고 염원해주는 유일한 신이 우리의 부모님이니 말이다.
바람이 분다. 스산한 바람이 추위를 재촉한다. 찬바람을 맞고 서 있는 민둥산의 억새풀 같은 부모님의 머리카락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가... 가만히 다가가 머리카락에 묻은 세월만큼 안아드릴 일이다.
햇살로, 바람으로, 구름으로 밖에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이라면 추워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서둘러 찾아가 봉분위에 한 줌 흙이라도 덮어 다독여드리고 돌아올 일이다. 다시 바람이 분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 바란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5호 (2015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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