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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영웅 백선엽장군]명예군사학박사 1호국방대, 창설 60주년 기념 첫 증정
  • 경제풍월 기자
  • 승인 2015.11.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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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영웅…백선엽장군
명예군사학박사 1호

국방대, 창설 60주년 기념 첫 증정
다부동 혈전 승리, 평양탈환 전공

6.25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돼 온 올해 아흔다섯의 백선엽(白善燁) 장군이 지난 13일 국방대학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국방대 최초의 명예군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위승호 국방대 총장은 노장군에게 명예박사 학위 증서를 전달한 후 백 장군이 6.25 남침전쟁 발발 초기 전선에서부터 북진과 정전회담 및 그 뒤 대한민국 강군육성에 이르기까지 큰 공적을 세웠다고 밝혔다.

▲ 13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국방대학교에서 열린 창설 60주년 기념식에서 백선엽 장군이 명예군사학박사(제1호) 학위를 받았다. <사진=국방대학교>

살아있는 6.25영웅에게 명예군사학박사

군사학 명예박사 제1호인 백선엽 장군은 평남 강서 출신으로 평양사범을 나와 만주국 봉천 군관학교를 거쳐 8.15 후 국방경비대로부터 국군 창설에 참여한 생존해 있는 최고 군 원로이자 6.25 전쟁영웅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 백선엽 장군. <사진=국방대학교>

백 장군은 낙동강 전선으로까지 밀려난 6.25 초기 방어전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격이던 다부동 전투를 끝까지 지휘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전공을 세웠다. 백 장군과 함께 전선을 누빈 미군 지휘관들도 그의 용맹 전투력을 높이 평가하여 역대 주한미군 사령관들이 부임할 때마다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이라고 예우해 왔다.
또 미 육군의 조지아주 포트 베닝보병학교에서는 특별히 백 장군을 초청하여 6.25 실전담 증언을 청취하여 보병 박물관 내 한국전 기념관에 지금껏 영구 보존되어 있다.
국방대학은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기까지 고급 지휘관 양성 코스로써 그동안 국방부 장관 14명을 비롯하여 합참의장 12명, 3군 참모총장 36명을 배출한 기록을 세웠으며 현재도 고급 장성들의 군사학 연구과정을 맡고 있다.

낙동강까지 300km 후퇴작전

백 장군의 6.25 전쟁 회고록 ‘군과 나’는 1989년 경향신문에 1년간 연재되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가 절판된 것을 지난 2009년 당시 맹정주 강남구청장이 재 발간하여 6.25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한국전쟁사의 교재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군과 나’에 따르면 백 장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신당동 자택에서 1사단 작전참모로부터 남침소식을 듣고 용산에 있는 육군본부로 달려가 채병덕 참모총장에게 1사단 지휘권 여부를 문의했다. 한 달 전에 1사단장으로 임명됐지만 육군보병학교에 파견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군 인사질서가 거의 뒤죽박죽이었던 셈이다. 전쟁의 위험경고가 있었지만 최고 수뇌부가 이를 직시하지 못해 일선부대 장병의 절반가량이 외출 외박 중에 김일성의 남침전쟁이 개시됐던 것이다.
당시 백 장군은 대령계급의 1사단장으로 수색에 있는 사단사령부에 도착하니 벌써 개성이 적에게 함락됐고 문산 지구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이 무렵 155마일 전선은 겨우 4개 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1사단의 경우 황해도 청단, 연안에서 경기도 개성, 고랑포에 이르는 무려 90km의 전선을 맡고 있었다. 장비는 낡고 부족하고 장병들도 절반이나 자리를 비우고 있다가 기습남침을 당하고 말았으니 초전의 무질서와 혼란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無我지경’으로 다부동혈전 지휘

전쟁 나흘째 백 장군이 마지막 참모회의를 갖고 시흥보병학교로 후퇴하여 재집결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한강교는 폭파되고 인접 사단 등과의 통신도 두절되었다. 하는 수 없어 뗏목을 타고 한강을 도하했다가 한강 방어선에 운명을 걸었지만 이내 붕괴하여 후퇴작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 휴전회담장에서의 백선엽 장군. <사진=국방리더십저널>

그로부터 밤낮없이 밀려나 낙동강변까지 300km의 후퇴작전 끝에 더 이상 물러설 땅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 김일성은 기세등등하게 전선까지 달려와 8월 15일까지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점령하도록 독전을 계속했다.
이 무렵 낙동강 방어전선 지휘는 거의 ‘유령사단’이나 다름없었다. 후퇴를 거듭하는 과정에 부대의 조직이 뿔뿔이 흩어지고 망가졌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정신없이 후퇴하던 장병 4~5,000명이 백 장군 지휘 하로 결집됐으니 거의 기적이었다. 지휘계통이 흔들리고 장비와 보급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후퇴작전 중에 전투경험이 쌓여 다부동 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육본의 인사명령마저 제때 도착하지 못해 현장 지휘관의 인사를 육본이 추인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백 장군 휘하에는 전투경험이 많은 장병이 모여 오키나와에서 출격한 미 공군의 무제한 폭격에 용기를 얻었다.
그렇지만 다부동 혈전은 피아간에 죽기살기의 결전이었다. 백 장군은 당시 전투지휘를 무아(無我)의 지경이었다고 회고한다. 1사단의 경우 장교 56명을 포함하여 무려 2,300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인민군은 이보다 두 배가 넘는 5,690명의 전사자를 남겼다. 피의 공방전이 일단락된 후 고지를 미군에게 인계하라는 명령이 하달됐지만 미군 측에서 피아간의 전사자 시체를 치워주지 않으면 인수를 받을 수 없다고 항변하기에 이르렀다.
다부동 전투의 혈전이 끝내 대구를 방어하고 대한민국을 건져냈다. 이때 국군 1사단과 합동작전을 벌인 미군 지휘관들이 백 장군의 전투력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다부동혈전 이후 북진 평양탈환 선봉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다부동 전선의 인민군은 괴멸되고 말았다. 국군은 초기 후퇴해온 코스를 거슬러 파죽지세로 북진했다.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적도 평양을 탈환했다.
백 장군은 미군 측과 끈질긴 협조 끝에 강행군으로 평양에 제일 먼저 입성했다. 평양을 탈환한 10월 19일을 백 장군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기록했다.
곧 남북통일이 눈앞에 보였다. 김일성은 정신없이 승용차마저 길거리에 버리고 도주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한 번 참담한 패전을 경험해야만 했다. ‘1.4후퇴’로 서울이 다시 함락되어 시흥까지 밀려났다가 재 반격하여 정전회담을 전후하여 중부전선의 혈전이 수많은 희생을 가져왔다.

▲ 밀번 미1군단장과 평양점령 직후 작전을 협의하고 있는 백선엽 장군. <사진=국방리더십저널>

스탈린의 사망으로 정전협정이 급진전되어 우리가 원하지 않는 휴전이 성립되고 말았다. 백 장군은 정전협정 한국군 대표로 참석하여 중공군과 인민군 측의 떼법과 피곤한 입씨름을 경험했다.
그 뒤 백야전 전투사령부의 공비토벌 작전을 지휘한 후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으로 승진하고 두 차례에 걸친 참모총장으로 전쟁과 휴전을 지휘하고 전후 국군 현대화를 위해 미국 측과 협상을 주도했다.
전쟁기간 중 백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내무부 장관 취임을 요청받았지만 “군인으로 일생을 마치고 싶습니다”라고 강력히 진언하여 끝내 군인으로 6.25 전쟁을 마감했다.
올해 아흔다섯의 백선엽 노장군에게 살아있는 6.25 전쟁의 영웅이란 말이 결코 지나친 예우가 아니다. 한동안 명예 ‘국군원수’로 추대해야 마땅하다는 논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국방대의 명예 군사학 박사학위로 백 장군의 명예는 다시 한 번 확립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확신한다. 전쟁의 영웅을 받들고 추앙하는 것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5호 (2015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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