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사후 소통부족 피해자 불만족
日 정부 책임통감, 배상
협상타결 ‘거부정치’
사전·사후 소통부족 피해자 불만족
굴욕외교 맹비난, DJ·노정권 뭘 했나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의 협상결과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수상 간 정상회담을 통해 24년간 미해결 난제이던 것을 연내 해결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어렵게 타결됐다. 어쩌면 극적 타결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강력 반발하니 문제가 어려워진 국면이다.
협상결과 불만족이나 일정부 사과인정
한일 간 역사적 숙적(宿敵)관계에 비춰 위안부 관련 협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이 있은 다음 세계적인 여론이 비등했지만 역대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미뤄왔던 사실도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가 몇 분 안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존하고 있을 때 반드시 피해자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의 공식사과와 피해보상을 강력 촉구하여 지난 12월 28일의 외교협상 결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실시한 국민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하고 재단기금으로 10억 엔의 정부예산을 출연하겠다는 약속이 법적책임을 인정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동의 47.6%, 부동의 47.9%, 잘 모른다 4.5%로 거의 팽팽하게 응답했다.
전반적인 협상결과에 대해서는 만족 35.6%, 불만족 53.7%로 불만족이 훨씬 높았다. 또 최종적인 불가역적(不可逆的) 해결원칙에 대해 동의 37.3%, 부동의 58.2%로 부동의가 압도적이었다. (2015년 12월29~30일 사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 지역·성·연령별 할당 추출, 유·무선 RDD(임의전화걸기) 전화면접조사 실시한 조사. 유·무선 응답률 22.8% /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
왜 이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대체로 정부가 협상결과에 대한 대국민 설명·설득이 부족했고 피해자들과 사전·사후 협상관련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소감이다. 반면에 한일 간의 오랜 역사적 불신과 적대감도 협상결과 평가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다만 외교협상이란 우리의 입장만을 관철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생각되기도 한다.
굴욕외교 영혼팔다, 협상 무효론까지
야당이 탈당파와 친노 패권주의 간 대결 속에 위안부 협상타결을 정치적 반대의 호재로 삼고 연일 굴욕외교라고 비난한다. 더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남민심의 지지가 상경하고 있는 시점에 뚜벅뚜벅 마이웨이를 고집하면서 굴욕외교·외교참사에다 “10억 엔에 영혼을 팔았다”고 주장하며 협상결과 폐기, 무효화까지 제기한다.
문 대표가 청와대 신년 인사회마저 불참하며 이번 협상결과를 지난 1965년 야당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처럼 이끌어 가겠다는 전략이 아닐까 싶은 형국이다. 문 대표는 협상타결 직후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차후 집권 시에는 굴욕외교 결과를 무효화 하겠다고도 말했다. 이어 국립현충원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동교동으로 이휘호 여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도와주십사’라고 비는 장면을 보였다.
이 여사는 뒷날 안철수 의원이 방문했을 때는 문 대표보다 따뜻하게 “꼭 정권교체 하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고 보도됐다.
이종걸 더민주당 원내대표도 굴욕외교, 면제부 등으로 협상결과를 비난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 국교 정상화를 빗대어 ‘대를 이은 굴욕외교’라는 막말로 비하했다. 이어 윤병세 외교장관을 만나서는 재협상 하라고 촉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막말의 고수(高手)로서 대통령을 ‘그년’이라고 저속하게 악담했다가 나중에 사과한 바 있다.
더민주당의 극렬한 비난 속에 북한 김정은이 대일 굴욕외교라고 덩달아 비난하니 웃기는 꼴 아닌가. 반면에 더민주당이 ‘우리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의 역사적 결단이라고 성명했으니 문 대표가 어떤 입장일까.
상당히 진전된 성과 : 외교실책 비판
지난 5일 민변, 정대협 등이 국회에서 긴급 토론회를 갖고 협상결과를 ‘외교적 실책’, ‘일 정부의 법적책임 모면’ 등으로 강력 비판했다. 주제 발표자들은 10억 엔 기금출연이 법적배상요구를 전면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하고 협의과정에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참작하지 않은 것은 국제형사재판소 규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피해자 할머니는 정부가 우리의 말을 한 마디도 듣지 않고 협상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반면에 같은 날 외교안보연구소 일본정책센터가 주최한 정책세미나에서 국민대 이원덕 교수는 일본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총리대신이 사죄, 반성했으며 일본정부 예산으로 배상 조치한 것은 진전된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번 기회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면 이 문제가 영구 미해결 문제로 표류하여 한일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다만 협상 전후의 소통부족과 사죄표명 형식상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이근관 교수는 과거에 비해 이번 협상이 진전된 내용으로 국제법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합의상 유동적인 부문의 경우 우리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이 협상타결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호소문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민단은 지난해 12월 28일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합의를 지지하며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고 양국이 새로운 50년을 함께 열어 가기를 기원하며 호소한다고 말했다.
민단은 그동안 한일관계의 악화로 재일동포들의 생계가 큰 타격을 입고 생활의 터전인 동경 신오쿠보 거리 등 일본 각지에서 혐한시위가 넘쳐났던 사실을 상기하며 양국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DJ·노무현 정권은 뭘 했는가
지난 1월 6일 조선일보 선우정 논설위원의 ‘우리는 어리석은가’ 칼럼이 25년째를 맞는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이 있은 후 지난 93년 일본정부가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고노담화가 나왔었다. 그러나 이는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외교성과였다.
반면에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98년 한일 정상회담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문제제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5년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권은 살아 있다”고 확인한 사실을 성과로 주장한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가 정부가 피해자들의 배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니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의무를 부과한 셈이다.
그러나 선우정 칼럼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위헌소송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제기했으니 노 정권이 피고였음을 알라고 지적했다.
칼럼은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증오를 축적해왔다고 말했다.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일본 정치가의 말 한 마디나 3류 언론의 글 한 줄까지 들춰 흥분했다. 분노를 버팀목으로 25년을 지내오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이해해 주던 응원단도 곁을 떠나고 서로 삿대질하는 우리만 남았다. 우리의 기나긴 25년 분투를 이렇게 어리석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실로 선우정 칼럼에 야당도 응답하고 우리네도 동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8호 (2016년 2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