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준비위, ‘고합인들 살아있다’ 선언

이색(異色)·감동의 기념식
고합(高合)창립 50주년
기념준비위, ‘고합인들 살아있다’ 선언
장치혁 창업회장, 재회의 감동에 울먹

▲ 장치혁 전 고합 회장.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에서 22일 ‘고합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그룹이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진 옛 고합(高合) 임직원들이 다시 모여 창립 50주년(1966~2016) 기념식을 가졌으니 이색풍경이자 감동이었다. 지난 22일 하오 5시, 섬유회관에서 가진 고합창립 50주년 기념식에는 고합인들 뿐만 아니라 전·현직 섬유패션인들, 정·관계 및 재계원로 등 수백 명이 참석하여 축하·격려하는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룹해체로 흩어진 고합인들의 만남

이날 기념식은 오랫동안 흩어져 각자 새로운 삶을 개척하던 고합인들이 한둘씩 모이기 시작하여 고합창립 50주년 기념준비위를 구성하고 섬유산업연합회 성기학 회장 등의 적극적인 후원과 고합출신 기업인들의 참여로 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기념준비위는 개척과 선구의 고합정신을 보존, 계승하고 산업보국에 청춘을 바친 자부심을 되찾아 ‘고합정신은 영원하다’고 강조하고 싶은 열망이었다.
이 자리에서 성기학 섬산련 회장(영원무역 회장)은 고합 창업자인 장치혁(張致赫) 회장이 제6대 섬산련 회장으로 “원료에서 제품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룩한 선구적 발자취를 남겼다”고 회고하며 공적을 높이 추앙했다.
이어 고합인 직원으로 7년 8개월 근무했던 최명숙 씨가 옛 직원을 대표하여 고합시절의 감격을 실감나게 소개하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최 여사는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부친이 사망하자 고졸 학력으로 고합에 취업하여 생산부와 품질관리부 등에서 열심히 일하며 저축상도 받고 해피론 이불 3채를 장만한 것을 지금도 따뜻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합을 떠나서는 남편과 함께 전자부품회사를 설립, 옛 고합정신으로 착실히 발전시켜 가며 못 다한 학업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혀 만장의 박수를 받았다.

고합이 심은 느티나무 묘목 무럭무럭

장치혁 회장은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창업자 인사말씀’에 나서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모여 창립 기념식을 갖는 감회를 떨리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했다. 국내 최초로 설비와 플랜트의 국산화와 세계화의 보람을 말하고 IMF 외환시기에도 연간 5천억 원의 흑자를 나타낸 경영의 일부도 회고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그룹이 해체되고 임직원들이 길거리로 쫓겨 나온 사실이 믿을 수 없노라고 북받치는 감정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장 회장은 최고 경영 책임자로서 “패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다만 고합이 30년 전 전국 방방곡곡에 심어 놓은 느티나무 묘목은 지금도 100년을 내다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말하고 기념식 참석자들에게 느티나무 씨앗을 선물로 준비했노라고 밝혀 기립박수를 받았다.
기념행사는 축가, 축배를 거쳐 만찬 후 옛 고합 사가(社歌) 제창으로 끝냈다. 장치혁 작사, 전희준 작곡의 고합 사가 는 악보를 준비하여 참석자들이 힘차고 씩씩하게 함께 불렀다.

우리들은 개척자 혁신의 기수
살수대첩 기백을 이어온 우리
고합가족 대열은 세계로 나가니
하늘과 땅, 바다는 우리의 일터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자
사랑과 기쁨으로 봉사하며 승리하자

정·재계 원로인들 기업가정신 회고

장치혁 회장은 독립운동가인 선친 장도빈 선생의 독립 애국정신을 계승하여 고합정신에도 애국애족의 민족정신과 개척정신을 심어 놨다.
이날 초청인사 중에는 장 회장과 같은 시기의 정·재계 유력인사들이 많아 그때 그 시절 이야기꽃을 피웠다.
원주 가나안농군학교 김범일 교장, 김덕룡 전 의원, 권영해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장 회장의 남다른 선구적 기업가정신을 회고했다. 이승윤(李承潤) 전 경제부총리, 이용태(李龍兌) 전 삼보컴퓨터 회장, 김선홍(金善弘) 전 기아자동차 회장, 장만기(張萬基)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및 섬유패션계 원로들도 다수 참석했다.
테이블 만찬 대화를 통해 장 회장이 한·중, 한·러시아 수교에 공헌하고 선친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려학술문화재단을 설립, 문화교육사업에 헌신한 업적과 연해주의 독립운동 유적조사, 블라디보스토크시의 국립 극동대 한국학대학 건물 기증 등을 회고했다. 또 장 회장은 ‘배우면서 일하자’는 정신의 장학사업에도 꾸준히 열성을 보여 왔으며 한경직 목사의 애족정신을 추앙하여 ‘추양선교재단’을 설립, 운영해온 발자취도 회고했다.

50년 동영상, ‘우리는 개척자·혁신기수’

고합 창립 기념식 준비위는 고합 50년사를 영상물로 제작하여 새로운 50년을 맞이하고 싶다는 열망을 참관자들에게 보여 주었다.
동영상은 ‘우리들은 개척자, 혁신의 기수’라는 주제 하에 지난 50년간 수많은 역경과 도전은 개척정신으로 무장하여 한 가족으로 버텨 온 삶의 터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고합의 간판 브랜드인 ‘해피론’(HappyLon)을 구입하기 위한 제면업자들의 구매행렬을 소개하고 1976년 2월 고합의 나이론 종합시설 플랜트 국산화 현장에 박정희 대통령이 조사단을 보내고 정주영(鄭周永) 회장과 장예준(張禮準) 상공부 장관 등 경제계와 정부 관계자 1,000여 명을 견학시킨 자랑스런 대목이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그러나 1971년 12월 29일 그린벨트 선포가 의왕공장 부지의 74%를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었으니 심각한 시련이었다. 이어 77년 7월에는 대홍수로 기계와 제품, 원자재 등이 물에 잠기고 하천 둑과 담장이 떠내려가고 말았다. 이때 고합인들은 밤낮없이 공장을 복구하여 5일 만에 공장 일부를 재가동 하는 열정을 보여 줬다.
그 뒤 종합경쟁력 강화를 위해 MX에서 PX, PTA 및 수지, 원사, 제품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이룩했으니 이 무렵 고합의 개척정신이 얼마큼 왕성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울산의 구조재구축 단지는 1977년 국내 최초의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도입이자 플랜트 국산화 기술의 총화로 울산단지 내에 석유화학, 수지, 원사, 필름 등 연산 360만 톤 규모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이때의 성공사례가 평가되어 장치혁 회장이 95년 아시아태평양 생산성 대상을 국내 최초로 수상했다는 기록이다.
이 무렵 고합인들은 13개 계열사와 30여개 해외지사, 법인으로 국내 재계순위 17위에 이르러 대학생 취업 선호도 7위까지 올랐었다. 당시 고합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미국과 구라파 및 동남아 각국으로 뻗어 났고 중국의 청도 공장은 신용평가 최고 등급인 트리플 A를 획득했었다.
동영상을 통해 본 고합정신은 어려운 고비마다 투지를 발휘해 왔다는 소감이다. 이 자리에서 고합 창립 50주년 준비위는 “고합인은 살아있다”고 선언했다. 고합인으로 연관 분야로 진출하여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게 소개했다. 이날 기념행사는 지금부터 다시 느티나무 묘목을 심어 큰 나무로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의지의 다짐이기도 했다는 소감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8호 (2016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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