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의 혼불 꺼지지 않으리

素石(소석) 李哲承(이철승) 선생 영전에
‘살아있는 전설’에서 ‘역사속 큰별’이 되어
나라사랑의 혼불 꺼지지 않으리


글/ 鄭在虎 (정재호 헌정회 원로회의 부의장, 제8대국회비서실장, 9·10대의원,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

▲ 故 소석(素石) 이철승(李哲承)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

님의 깃발은 오늘도 펄럭입니다.
온 누리 잠들고 목소리 시들한데
타는 목마름으로 오직 한길
나라사랑의 뜨거운 혼불 가슴에 품고 가셨으니
당신 님의 旗幅 어찌 멈출 수 있으랴.

겨레의 젖줄 굽이치는 한강 물길보다 긴 장정
抗日 反共 反託 建國 護國으로 이어진
가시밭 숨차게 달려온 외길
길목 굽이마다에 깊이 패인 형형한 님의 발자취여
맨주먹 돌팔매로 나라 세움에 몸 바친 학생운동의 뿌리.
나라지킴에 여야 따로 없으니
태산 같은 황소고집 온갖 험담 뿌리치고
야당외교 그 본보기 펼친 큰 배포
언제 어디서나 당당했던 言과 動
오늘 뉘 있어 쉬이 흉내라도 낼 수 있을꼬

님의 깃발 펄럭이는 까닭 여기 있으매.
훤칠한 풍채 기골은 장대하되
서글서글한 눈동자 가장자리 맴도는 촉촉한 물기
아마도 어질고 여린 천성 그 한 줄기 엷은 그늘이겠지.
후미진 구석에 남몰래 사람 풀어 인정씀씀이 푸짐했기에
님 가시는 길 따르는 이 무리 지었으니 그 공덕 오죽이나 컸을까.

말끝마다 선비론 곧잘 펼치며
매화는 설한풍이 몰아쳐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梅一生寒不賣香>을
좌우명 삼았는데
日帝 학도병으로 끌려가
지독한 매질에도 창시 개명 아니 하고 끝내 버틴 기백
조상에서 물려받은 이름 석 자 목숨 걸고 지켜낸 투혼
이를 넘어설 선비근성 어디에 흔할 손가

인정이 풍만하니 풍류 또한 풍성했네.
술 담배 평생 몰랐으나 신명나면 못 말리는 가무솜씨
꽹과리 한가락 두드리면 춤사위 만만찮고
곰삭은 노래 소리 지그시 번질 때면 박수소리 절로 나고
모처럼 두둥실 그 모습 어제 같은데
인중(人中)이 길어 백수 거뜬할 줄 믿었건만
후학들 내기 걸고 백세 잔칫상 빌었건만
홀연히 떠나시다니요

임종 앞둔 숨 막히는 시각 신 새벽에
가쁜 숨 몰아쉬며 가까스로 말문 열고 띄엄띄엄 옮긴 유언
고르지 못한 숨소리에 묻힌 음성
겨우겨우 줄거리 맞춰보니
“시국도 어수선한데 번거롭게 하지 말고
가족장으로, 돈도 받지 말라”는 뜻
여기저기 ‘과연 素石답다’는 소리 자자하네.

‘살아있는 전설’에서 ‘역사속의 큰별’로 옮겨 앉았으니
벌써부터 그리운 이름이여 李哲承 선생
영영 지워지지 않을 큰 이름이어라
부르기도 편안한 아호 흴 소(素)에 돌 석(石)이라
‘순수한 ’돌‘ 뜻을 담았으니 목청 높여 다시 한 번 불러보리다.
素石 어른이시여!
당신의 걸쭉한 입담 굵직한 음성이 듣고 싶습니다.
모든 시름 내려놓으시고 편히 잠드소서.
님의 애창곡 백년설의 ‘산 팔자 물 팔자’ 목청 길게 뽑아 진혼곡삼아 바칩니다.

“산이라면 넘어주마/ 물이라면 건너 주마/
인생의 가는 길은/ 산길이냐 물길이냐/
손금에 쓰인 글자/ 풀지 못할 내 운명/
인심이나 쓰다가자/ 사는 대로 살다가자.”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0호 (2016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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