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진출 6선 의원, 국회부의장 역임

마지막 LG 창업세대
구태회 명예회장 별세
정계진출 6선 의원, 국회부의장 역임
LS그룹 독립후, 3형제 공동경영 확립

▲ 향년 93세 일기로 별세한 LS전선 구태회 명예회장의 빈소. <사진=LS그룹>

LG그룹 창업세대 마지막 생존자이던 구태회(具泰會) LS전선 명예회장이 지난 7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인은 구인회(具仁會)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동생으로 6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정계로 진출하여 큰 발자취를 남겼다.

창업세대 6형제중 정계진출 유일

구태회 명예는 192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집안의 뜻에 따라 15세 때 한 살 위 최무 여사와 결혼한 후 1941년 진주 공립중학을 졸업하고 1943년 일본 후쿠오카고등 유학을 다녀왔다. 그 뒤 1950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럭키화학 (현 LG화학) 전무로 첫 발을 내딛었지만 1958년 제4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가 1962년 다시 금성사 부사장으로 LG 경영에 참여했었다.

▲ 금성사 시절 고 구태회 명예회장이 공장 생산 라인을시찰하고 있다. <사진=LS그룹>

그러다가 1963년 제6대에서 8대 의원까지 진주·진양에서 공화당으로 당선되고 제9대 유정회를 거쳐 제10대 지역구 의원 등 총 6선(選)을 기록하면서 공화당 원내 부총무, 정책위 의장 등으로 활약했으며 이 기간 중에 무임소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정계를 물러나 1982년에는 LG그룹 창업고문으로 복귀했지만 지난 2003년 아래동생 구평회(具平會) 구두회(具斗會) 3형제가 LG에서 계열분리로 LS그룹을 창업, 독립했다. 이때 고인은 LS그룹 3형제간 공동경영 모델을 확립토록 유도했다.
LS그룹이 발족 초기 구태회 명예 장남인 구자홍 회장이 초대회장을 맡아 그룹을 대표해 왔지만 지금은 4촌 사이인 구자열 (구평회 전 명예 장남) 회장에게 경영권을 인계하여 4촌간 경영승계 모델이 되어 왔다.
LG그룹은 창업동지 사이인 구(具)씨와 허(許)씨 간 동업을 분리하여 GS그룹이 탄생할 때도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평판된 바 있다. 예부터 동업은 깨어지기 마련이고 깨어진 후에는 상호 불신하는 적대감을 갖기 마련이라지만 LG와 GS의 경우 계속 우정 있는 라이벌 관계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부부 결혼 70주년 넘기며 해로

▲ 고 구태회 LS그룹 명예회장의 국회부의장 시절 모습.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연설중이다. <사진=LS그룹>

구태회 명예가 별세한 후 지난 2009년 결혼 70주년을 맞은 다복한 가정의 미담이 새삼 소개되어 고인의 따뜻한 성품을 다시 한 번 추모케 했다. 고인은 1938년 겨우 15세 때 당시 풍습과 집안의 권유로 한 살 위 최무 여사와 결혼한 후 일본 유학 다녀오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로부터 70년간 부부애로 4남2녀를 양육하여 부인은 2009년, 고인은 2010년 미수(米壽)를 넘겼다.
고인은 슬하에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근희,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혜정씨, 고 구자명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 등 4남2녀를 두었다. 장남 구자홍 회장은 양친이 해로하면서 미수를 함께 보낸 후 별세하신 것은 서로 존경과 배려하는 정성이 배경이었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양친의 정신을 이어 가족 모두가 화합과 배려로 보답할 각오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2호 (2016년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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