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뚜렷했던 성공요인
사업성공, 학업성취, 나눔경영실천

▲ 중학교 앨범에 남아 있는 이상춘 회장의 졸업 사진. <사진=SCL>

목표가 뚜렷했던 성공요인
산촌태생 특유의 집념
6남매의 장남으로 家長의식 투철
사업성공, 학업성취, 나눔경영실천

산촌 태생의 이상춘 소년은 뚜렷한 목표와 특유의 집념, 투지를 안고 상경했다. 부친은 서울 가서 돈 벌어 진로를 계획하라고 엄하게 당부했지만 모친은 귀중한 맏아들을 험지로 내보낸다는 심정으로 통곡했다. 이상춘 소년은 단돈 500원을 들고 미지의 세계로 올라왔지만 반드시 돈 벌어 공부도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생들의 진로도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

대덕산 자락서 태어난 ‘대덕 큰인물’

고향 경북 금릉군 대덕면 관기리 467번지(현재는 김천시 대덕면)에는 50여 호가 손바닥만한 논밭 경작지에 양잠 등 부업으로 겨우 살아갔다. 해발 1,300m의 대덕산 자락에 위치하여 산세와 맑은 물 따라 모두가 한 집안처럼 인심 좋게 살았다. 그러나 6.25 때 모진 체험의 상처가 남아있다.

▲ 1980년대 중반 부모님과 함께한 이상춘 회장(뒤).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최선을 다해 효도함으로 기쁨을 드렸다. <사진=SCL>

이상춘 소년은 전후세대로 직접 인민군 치하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마을 어른들로부터 ‘낮은 대한민국, 밤은 인민공화국’이란 공비 출몰사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년이 대덕초등, 김천 시온중학을 졸업했을 때 부친께서 엄숙히 “네가 고교 진학하면 동생들은 무슨 수로 공부하느냐, 서울 가서 돈 벌 궁리해보라”고 말씀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애로운 전통적인 ‘엄부자모’(嚴父慈母)시절이라 부친의 당부는 거역할 수 없는 집안의 령(令)이다. 여기에다 6남매의 장남으로 부모님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는 가장(家長)의식에 눈 뜨고 있었기에 낯선 서울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다.
소년이 꿈을 안고 출향(出鄕)했던 대덕면 관기리는 지금 호수가 줄고 젊은이가 없는 노인네 마을로 변하고 말았다. 과거 대덕면 인구는 800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겨우 1,500여명으로 출산가능 가임(可妊)여성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소년은 출향 40여년 만에 ㈜SCL 창업 사업주로 고향마을을 방문하면 각가지 옛 감상에 젖는다. 지금은 재경 김천향우회장에다 상록수재단 이사장으로 김천지역 장학생들의 장학금 지급행사를 위해 방문한다. 이때면 몇 명 남지 않은 옛 친구들을 만나 고향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정성을 정기적으로 쏟는다.
소년의 고향 선배로 16년 연상인 어느 사업가는 ‘대덕 큰 인물’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알아보니 바로 오늘의 이상춘 회장으로 “관기리 마을 후배가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신앙생활 바탕, 인간관계 신용자산

서울에는 동향 마을 출신 집안어른이 운영하는 용산 스프링 공장이 있었다. 볼펜용 스프링을 제조하는 이 공장은 집안어른이 일본서 배워온 기술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숙식하며 스프링 제조 공정을 견습, 실습하고 거래처를 방문하여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했다.

▲ (주)에스씨엘 연구개발. <사진=SCL>

볼펜에 들어가는 조그만한 부품인 스프링 하나를 제조하는 과정에도 기술과 기능이 필요하고 마케팅을 위한 끈끈한 인간관계 조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년은 틈틈이 관련 전문서적도 읽고 경험 많은 선배세대들로부터 조언도 들으면서 스프링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6년여 만에 창업주가 5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니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난생 처음 익힌 스프링 창업종목으로 채택하여 오늘의 자동차부품 전문기업 ㈜SCL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처음 ‘대신 스프링’ 자영업 단계에서부터 ‘원일정공’을 거쳐 2004년 5월 자신의 영문명 이니셜인 ‘SCL’을 상호로 발전해 오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다. 남동공단, 반월공단에 공장을 세우고 부천에 본사 사옥을 마련하고 다시 전국 영업소와 해외공장을 설립하는 과정에 고비와 위기도 몇 차례 겪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도전할 때 고마운 분들의 도움도 있었고 시운과 재운도 따랐다. 정신적으로는 성장기부터 가진 신앙생활이 힘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인간관계와 신용이 힘이었다.
오늘의 이상춘 회장은 이론과 실기의 경력을 축적한 자동차 부품의 전문가 경지에 이르렀다.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온 기술과 기능적 안목에다 투자를 아끼지 않는 지속적인 R&D,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등 전천후 불문 경쟁력 전문가로 불리게 된 것이다.

‘주경야독’ 석사코스 중 숭실대 명예박사

㈜SCL의 안정과 성장에 따라 이 회장은 서울로 올라오던 날의 집념과 목표를 차근차근 수행해 왔다. 고교에 진학 못한 배움을 보충하기 위해 야간고교 과정을 마치고 어려울 때 마음을 달래 준 신앙을 쫓아 숭실대학 경영대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 석사코스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은 박사코스로 가는 과정으로 당초 결심했던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큰 목표였다.
지난 6월 9일 숭실대학교가 이 회장에게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숭실대는 이 회장이 경영대를 졸업하고 석사코스에 진학한 과정까지 보여준 모교사랑과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기업가 정신을 끊임없이 발휘한 각종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집무실에 한켠에 놓여있는 사진액자 속에 부인 이금순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SCL>

숭실대학은 평양숭실전문 창학(創學)으로부터 올해가 119주년, 한국 최초의 근대대학이라는 자부심으로 SCL 이상춘 창업주의 각종 사회공헌과 장학사업 등이 바로 숭실정신이라고 말한다. 이날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은 한경직목사기념관에서 기독교인, 중소·중견기업인 및 그의 고향 김천 출신 출향인사들이 다수 참석하여 축하했다.
숭실대학에는 한경직목사기념관 외에도 한국기독교박물관, 고당(古堂) 조만식선생기념관이 있고 안익태선생기념관도 있다. 이날 학위 수여식에서 한헌수 숭실대 총장은 이상춘 박사가 “기독교사상을 바탕으로 온갖 고난과 절망을 딛고 기업창업의 목표를 달성한 숭실인의 표상”이라고 축하했다. 또한 김천 지역구 출신 이철우 3선의원과 박보생 김천시장은 재경 김천향우회장을 맡고 있는 이 회장의 명예박사 학위를 김천시민들의 자랑으로 삼는다며 축하했다.
이 회장은 숭실대에 앞서 2009년 서울대 공과대학 AIP 40기, 서울대 경영대학 AMP 67기를 수료하는 등 사업성장 안정기 이후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주경야독 학업을 지속하고 있다.

▲ 상록수장학재단 장학금 수여식 후 학생들과 함께 한 이상춘 회장(앞줄 가운데). <사진=SCL>

매일 만근하고 공부하며 나눔경영

이 회장은 평상시엔 아침에 부천 본사로 출근하여 작업복 차림으로 만근(滿勤)후 퇴근하며 토요일에는 대학원 과정, 휴일에는 부부함께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 삶이다.
㈜SCL의 사업장은 부천 1, 2공장, 인천 남동공장, 안산 반월공장, 충남 당진공장, 경기 화성공장 및 중국 천진과 베이징 공장에다 전국 10여 곳의 영업소 등으로 하루도 그냥 쉴 수가 없다. 이 때문에 해외출장 아니면 전국 사업장을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품질과 안전관리를 독려하는 일과가 늘 빡빡하다.
이 회장의 일과표를 지켜보면 매일 아침마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출근한다는 고 정주영 회장의 스타일이 연상된다. 동업계에서는 ‘부천의 정주영’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렇게 고유 경영활동에 몰두하는 성품으로 경제단체와 관련 조합, 협회에도 이름만 올렸을 뿐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평소 술은 사양하지만 업무상 친교 골프행사만 정기적으로 갖는다. 신앙생활은 평생 반려자인 부인 이금순 여사의 내조(內助)의 일환이다. 부인은 창업 초기 구로구 독산동 원일정공 시절 거래처에서 만나 직원들의 침식을 돌봐주는 거의 식모(食母)역할까지 도맡았노라고 회고한다.
부부 사이엔 아들만 둘을 낳아 미국 유학 거쳐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으니 신앙동반에다 사업동지 사이나 다름없다.
이 회장은 매일 1만원씩, 연간 365만원을 저축, 결혼기념일에 아동 수술비로 지원한다. 또 매일 10만원씩 월 300만원으로 사랑나눔운동을 꾸준히 벌이고 월 1,000만원씩 연간 1억원을 이웃사랑기금으로 지원한다. 이 회장이 사업성공을 통해 자신의 학업을 계속하고 장학사업과 이웃나눔 등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장학사업은 창업기부터 절실하게 꿈꾼 소망이었다. 지난 2008년 105억원의 사재 출연으로 설립한 상록수장학재단이 지금은 150억원대 규모로 확대되어 중고교생에서 대학생까지 매년 300명 이상에게 학자금과 해외유학비를 지원한다. 초기에는 지역 연고인 김천, 거창학생들 위주로 장학금을 지원했으나 지금은 경기도 일원 등으로 확대하여 상록수재단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고 있다.
매년 방학기간에는 수련회를 갖고 국내 주요 산업시설 견학으로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며 해외 자원봉사 체험기회도 제공한다. 또한 미얀마 난민학교, 태국 뉴웨이브 스쿨 등 해외 교육지원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 회장은 내년이면 창업 40주년으로 ㈜SCL의 기업사와 자신의 꿈과 도전의 기록을 담은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5호 (2016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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