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같이 고난과 싸워 승리 존경

형님처럼 든든했던 친구
어릴적부터 솔선수범
오뚝이같이 고난과 싸워 승리 존경

글/ 이채규 (주)동아특수통운 대표

어릴 적, 같은 동네 같은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는 같은 반 또래들 보다 한 살이 더 많았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했다.
덩치도 크고 맘 씀씀이도 형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서 어른 같다는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친구들은 뛰어놀 때, 태면이 친구(어릴적 이태섭 이름)는 다른 집 인삼밭에서 일을 했고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했다. 참으로 고생도 많이 했고 부모 없이 외할머니 품에서 성장했던 친구이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덩치도 컷을 뿐 아니라 동료들 간 화합을 위해 어울려 주고 다독여주었다.
5학년 때는 반장을 맡아 반 친구들을 위해 무엇이던 솔선수범으로 리더의 역할을 잘 하기도 했으며 우리 동네 친구들과 타동네 또래들과 몸싸움이 있을 때마다 태면이 친구가 앞장서서 힘으로 밀어붙이기도 하고 잘 구슬려서 싸움을 막아내기도 했다.
친구는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진학 못하고 외할머니와 먹고살기가 어려워 부잣집 머슴으로 들어가 온갖 고생을 했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친구는 머슴살이에서 벗어나 서울로 떠나버렸고 그 후로는 연락이 끊어졌다. 몇 년이 흘러 20세가 되던 해에 수소문 끝에 연락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계속 만나는 유일한 친구이다.
내가 다시 만나던 시절에 친구는 화물트럭회사에서 조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 이였기에 학원가를 찾아 공부할 때 친구 자신도 조수 봉급으로는 어려운 생활 이였음에도 그것을 쪼개어 나에게 생활비며 용돈 까지도 주었던 친구였다.
친구는 나에게 운수사업을 배워보라는 권유에 운수사업에 뛰어들었고 1988년 당시 화물트럭을 운전하며 서울과 부산항을 왕래하면서 나도 수출역군의 한사람이 된 것을 가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는 화물트럭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끼어들었다.
화장품사업을 하던 지인으로부터 어려우니 사업자금을 빌려달라는 말에 금전거래가 있었고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화장품사업을 아예 맡아서 해보라는 권유로 많은 돈을 투자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부도가 나고 말았다.
잘 나가던 운수사업도 어렵게 되었으며 결국 빚쟁이가 되어 도망치다가 사회와 격리된 곳에서 고생을 하기도 했다.
친구는 오뚝이와도 같았다. 죽을 고비와 온갖 고통을 맞아 싸우고 또 싸워서 승리자가 된 것이다. 보통사람이라면 벌써 좌절하고 포기 했을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로 변신한 친구는 서울 장안에 빌딩을 몇 개 가지고 있으며 수익이 발생하면 1년에 몇 차례씩 노인어른을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57세가 된 친구는 지금껏 장가도 못간 숫총각이다. 언젠가 빈손으로 떠날 인생이니 가진 것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가기위하여 결혼을 거부하는 특별난 친구이다.
나는 그 친구가 물려준 (주)동아특수통운을 운영하고 있다. 내 옆에 죽어서도 못잊을 고마운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친구가 존경스럽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5호 (2016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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