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복의 노래와 삶]

음악 이야기(1)
음악은 정신을 풍요롭게,
삶을 살 찌운다

글 / 이준복 칼럼리스트

여전히 생생한 내 추억의 노래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손에 손 마주잡은 우리 어린이 발걸음 가벼웁게 찾아가는 집…” 이 노래는 지금도 가사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나의 추억의 노래이다. 50년도 더 되는 나의 초등학교시절, 지독히 가난했던 내 고향 충청도 예산 삽다리에는 여름방학마다 찾아오는 가슴 뛰는 행사가 하나 있었다. 작은 예배당에서 5일간 진행했던 어린이 하계 성경학교가 바로 그것이었다. 날마다 간식과 참외 등 과일을 얻어먹는 것도 좋았지만 특히, 풍금을 치며 노래를 가르쳐주시는 예쁜 엄순자 선생님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리듬에 맞춘 풍금의 하모니가 정말 최고였다.

음악의 세계로 안내했던 내 마음의 풍금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나에게 그 풍금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풍금반주자 선생님께서 시집을 가셔서 풍금 칠 사람이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풍금의 흰 건반만 눌러도 되는 가장 쉬운 노래를 하나 골라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을 시작했다. 건반악기의 원리를 겨우 어깨 넘어 배운 무식과 용감으로 멜로디 하나를 익히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2부 화음으로, 그 다음 주에는 악보의 낮은음자리의 테너와 베이스 파트로 발전하여 결국 양손으로 칠 수 있었다. 그 환상의 4부 화음 소리가 온 예배당을 꽉 채워주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풍금소리를 친구들이 들어준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하며, 예배당의 정식 반주자가 되는 희망을 품으며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중학교 3학년 때 끝내 꿈에 그리던 자리에 앉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한 달은 너무 긴장해서 여러 번 망쳤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른들은 못 들은척하고 ‘아~멘’이라는 종교적 언어로 화답해주었다. 풍금은 관악기나 기타를 제외한 현악기들과는 다르게 풍부한 화음을 낼 수 있어 어린 나의 마음에 큰 영감을 주었고 음악의 구성 원리를 큰 틀에서 이해하는 최고의 기회가 되었다.

가난한 환경과 병약한 몸을 잊게 해준 기타소리

그 뒤로 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여동생이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며 선생님께 빌려온 기타로 당시의 유명한 캠프송인 “아름다운 노래” 라는 곡을 아주 어설프게 연주해주었다. 나는 처음 보는 기타의 화음에 너무 놀라고 신기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들고 다니며 스스로 반주와 노래까지 할 수 있는 황홀한 악기 소리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매번 기타를 빌려올 때마다 빼앗다시피 하여 끌어안고 쳐대자 금방 오히려 동생을 가르쳐 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아주 싸구려 기타를 하나 장만했는데, 밥 때를 거르기도 하고 공부도 제쳐놓을 정도로 기타에 미쳐버렸다. 기타로 당시의 포크 송 가수들 흉내 내며 노래를 꽤 많이 불러대었는데 결국 공부에 소홀했던 탓에 결국 재수생이 되었다. 하지만 재수 시절에도 기타를 놓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심지어 군대시절에도 음악지도나 성가대 지휘, 중창단 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늘 음악을 즐기었다. 만약, 나의 유년시절 그 시골 예배당에서 음악적 소양이나 풍금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요즘같이 컴퓨터, 스마트 폰 등 IT기구들이 발달했었다면, 나 역시 음악보다는 자극적 첨단 기기들을 좋아하고 즐기느라 음악의 정서나 행복을 몰랐을 것이 틀림없다.

어느 여학교의 음악이 흐르는 윤리 시간

군 제대 후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에 교편을 잡게 되었다. 처음 몇 년은 젊은 남자교사라는 이유만으로도 잘 나갈 갔지만 결혼 후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는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게다가 하필 내 과목은 학생들이 대개 따분해하는 윤리, 철학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 중 하나는 첫 수업에 교과서 대신 클래식 기타를 들고 정장차림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의아해 하는 신입생들에게 가볍게 소개를 마친 다음 양희은 가수의 ‘작은 연못’이라는 노랫말을 칠판에 독특한 예술적 글씨체로 써 놓았다. 윤리 또는 철학을 왜 배워야 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안성맞춤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후 커튼을 모두 내리게 한 후 멋진 클래식 두 곡을 연주하면 35명의 아이들이 숨소리도 죽이며 집중한다. 그렇게 같이 노래를 부르고, 노랫말을 필기하며 설명을 들으면 앞으로 배워야 할 과목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렇게 가장 풍부한 감성의 시기에 첫 수업이 끝나면 일 년 농사의 절반은 성공이다. 그 후에도 과목의 특성을 살려 좋은 가사의 노래를 가르친다든지 몇 편의 좋은 영화를 골라 감상하고 토론하고, 조를 편성하여 주제를 주고 토론하게 하였고, 가능한 교사가 직접 강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특히 수업을 시작하기 전 반 전체가 휘파람으로 간단한 노래를 불게 하였는데 한 학기 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휘파람에 능숙해지기도 했다

음악은 정신을 풍요롭게 하며 삶을 살찌우게 한다

지금도 졸업생들을 만나면 여고시절 배웠던 노래와 음악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리워하는 것을 보며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운영했던 기초 클래식기타반에서는 후에 대학에서 기타를 전공한 아이들도 생겼고, 지도했던 중창반에서 당시 함께 노래했던 아이들은 세월이 흘러 50대에 접어든 지금도 교회 성가대나 구청단위로 운영하는 합창단 활동 등 음악의 끈을 놓지 않고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주는 정신적 풍요로움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를 여실히 실감한다. 지난 4월에는 당시 이끌었던 중창단원 중 7명이 우리 과수원 시골집에 방문하여 30여 년 전에 야단맞으며 화음을 맞추던 노래들을 맘껏 부르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 아련한 추억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단원들 서로 간에도 수년 만에 만난 탓에 노래를 마치고도 얼마나 시끄럽게 웃고 수다를 떠는지 오래된 우리 시골집이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이것이 바로 나와 우리의 정신과 삶을 살찌우는 예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소개] 필자 이준복은 그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 삽교에서 작은 과수원을 하며 음악교사 출신 아내와 ‘노래하는 농부’ 라는 이름으로 노래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함께하며 활동하고 있다. 현직 교사시절에는 음악 비전공자이면서도 15년간 한강 잠실의 누에나루에서 서울시민을 위한 ‘주말 가족음악회’를 열어 여러 음악인들과 주 진행자로 꾸준히 활동하였으며 30년 교직 생활 후, 벤쿠버에서 4년간 현지 합창단 공연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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