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자유라지만 학자도 국적 있어야

역사왜곡 내우외환
민족사 자살론 개탄
학문자유라지만 학자도 국적 있어야

글/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고리요, 현실을 비춰주는 교훈의 거울이다. 역사를 빼앗긴 나라, 역사를 빼앗긴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다. 역사를 잊으면 내일도 잃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고 굳게 지키자는 것이다.
우리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드넓은 만주벌판에서 중국 오랑캐들과 천년 동안이나 맞서 용장하게 싸운 우리 민족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민족사의 반역자들

우리 역사, 우리 민족사는 지금 안팎으로부터 시련을 당하고 있다. 누구나 자랑스러워하고, 당당해야 마땅할 우리 민족사가 어찌하여 이처럼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중병에 걸리게 되었는가. 밖으로는 국력이 약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우리 역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이요, 안으로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으며, 되풀이된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일부 얼빠진 사학자들이 사상의 자유니 학문의 자유니 하는 미명 뒤에 숨어서 역사왜곡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빼앗길 때까지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 사학계는 무엇을 했는가. 제대로 대처한 것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정부와 사학계는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제대로 안 한 채 국가의 존엄성과 국민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벼랑으로 내몰았으니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중국과 일본의 눈치나 비굴하게 보면서 당연히 할 말도, 당당하게 따질 것도 제대로 못한 정부가, 그런 무지무능한 정권이 무슨 염치로 국민의 혈세를 강요할 수 있는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정부, 멍청한 정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 뒤에 숨어 중국의 역사왜곡과 강탈에 앞장서는 민족사의 반역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근래 서강대학교 사학과 이 모 교수가 황당무계하고 해괴하기 그지없는 요설을 들고 나왔다. ‘한국사의 뿌리와 정통성은 신라에 있고, 고구려는 희미한 핏줄의 기록일 뿐이며, 발해사는 말갈의 역사일 뿐’이라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기발한 이론을 만들어내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이 교수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설마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중국의 역사 왜곡과 강탈에 호응하여 대한민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만드는 앞잡이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 뿌리는 신라라는 민족사의 자살론

학문에는 국경이 없지만 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러고도 앞으로 계속해서 한국의 사학자로 행세하겠다는 것일까. 그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궤변은 학문적 주장이나 이론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사의 자살론과 별 다름없다.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했다. ①한국인의 뿌리는 신라이며 정통성도 신라에 있다. ②한국인의 성씨는 김·이·박·최 등 신라 출신이 70% 이상이다. 고구려, 백제의 을·목·부여씨는 얼마나 되는가. ③고구려와 백제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은 희미한 핏줄과 역사기록뿐이다. ④실학자 안정복(安鼎福)도 <동사강목>에서 발해는 말갈의 역사로 기록했으니 발해사도 과장된 역사다. ⑤단군조선도 20세기 초 민족을 위해 만들어진 역사다.
결국 그의 주장은 이제는 한민족사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민족이란 개념이 근세에 들어 만들어졌다는 둥, 세계화시대에 뒤떨어진 편협하고 낡은 역사의식이란 주장을 한두 번 들은 것은 아니지만, 이는 조상을 부정하고 뿌리를 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진 것이다.
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이후, 그 무슨 학문의 객관성이니 하는 연막을 피우며 고조선과 고구려사를 중국사, 한국사 구분하지 말고 ‘요동사’로 부르자는 주장을 하고 나온 얼빠진 자칭 사학자, 일본의 식민지배는 정당했고 안중근(安重根)은 테러범에 불과하며 김좌진(金佐鎭), 홍범도(洪範圖) 등 의병장들은 산적두목에 불과하다는 정신이상자와 같은 자칭 소설가들이 설치고 나서는 것도 보았다.

한국사 뿌리는 고조선과 단군왕검

한국사의 뿌리는 신라가 아니라 고조선이요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부여의 역사,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 고구려를 계승한 후고구려의 역사, 백제를 계승한 후백제의 역사, 이 두 나라와 신라를 통합하여 세운 고려의 역사를 부정하는 짓이다.
나아가 고조선의 유민이 세운 신라사와, 고려를 계승한 조선의 역사까지 부정하는 셈이 되니 결국은 한국사는 없다는 악성 궤변에 다름 아니다. 이야말로 민족사의 반역행위요 한국사의 자살행위다. 이쯤 되면 이 교수의 주장은 단순히 민족사란 개념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 그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또 백 보 양보해서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김·이·박·최씨가 70%를 차지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 성씨가 모두 신라인이었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 성씨는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한문자를 들여와 이름을 짓던 신라시대, 보다 정확히 말해서 진흥왕 이후부터 생긴 것이다. 그것도 왕족이나 귀족에 해당됐다. 온달(溫達)과 장보고(張保皐)가 처음부터 온씨요 장씨는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흉노나 말갈(여진), 몽골족과 마찬가지로 성씨가 없이 이름만 있었다. 그러다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들어와 백성도 성씨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조선 중기까지 하층민 가운데 많은 사람은 성씨가 없었다.
발해사에 관해서 어찌하여 유독 안정복의 <동사강목> 한 구절만 인용하는가. 유득공(柳得恭)은 <발해고>에서 발해 태조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의 유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중국사도 발해는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던가. 또한 단국대학교 윤내현 교수 같은 사학계의 대선배는 <조선열국사연구>에서 발해 주민 대다수가 말갈족이란 학설은 틀렸고, 요서를 포함한 발해의 영토 대부분은 고구려 옛 땅이니 발해 주민 대부분도 당연히 고구려 유민이라고 주장했는데, 어찌하여 이러한 명쾌하고 타당한 학설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단군조선이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더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건 학설이라기보다는 잠꼬대보다도 못한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남보다 좀 배웠다고 해서 남의 머리 위에 올라서려고 해서는 안 된다. 존엄한 민족사를 매명과 돈벌이에 이용해서도 안 된다. 학문이란 이름으로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혹세무민해서는 안 된다. 변절자나 어용으로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자들만이 제 얼굴에는 금칠을 하고 학문의 얼굴에는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학 아니라 사학 할아비를 했더라도 나라와 겨레를 저버려서는 결코 안 된다. 뿌리 없는 민족이 없고 조상 없는 후손이 어찌 있으랴. 그런 비뚤어진 역사관, 휘어진 정신 상태로는 무엇보다도 후진들을 가르칠 생각부터 없애야 한다. 우리 후손들의 정신 상태마저 썩게 만들지 말기 바란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5호 (2016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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