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긴 여름 보내고
화원서 만난 심상(心相) 추억

글/ 장홍열(한국기업평가원 회장)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한다.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나라 잃은 망국(亡國) 서러움, 동족상잔(同族相殘), 가난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선견지명(先見之明) 있는 선배 부모세대들의 혜안(慧眼)에 힘입어 함께 고생하며 동참(同參)하고 노력하여 일궈낸 산업진흥(産業振興) 덕분에 지금은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풍요로운 사계절(四季節)의 참맛을 즐기며 사는 오늘의 한국인들은 누가 뭐라 해도 복 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가까운 실례(例)를 하나 들어본다. 우리 모두가 함께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고생하고 노력한 산림녹화(山林綠化) 사업이다. 어렸을 때 직접 눈으로 보았던 폐허(廢墟)의 민둥산은 푸른 옥토로 변했다. 온 산하(山河)가 10월 중순이면 단풍(丹楓)이 물들기 시작한다. 이때 펼쳐지는 자연의 오묘한 무언교향곡(無言交響曲),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속삭임 속에서 잘 다듬어진 가까운 곳의 둘레길을 한번 걸어보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가을에도 아름다운 대자연의 품에 포근히 안겨 운치를 보고 느끼면서 마음의 여유를 한 번 가져보자.
나에겐 단풍이 오는 계절이면 양재 꽃 도매 시장에서 받은 잊혀지지 않는 심상이 하나 있다.

심상이 주는 깊은 뜻

지하철 신분당선 강남역에서 두 정거장, 양재역을 지나 양재시민의숲 역에서 내려 4번 출구 쪽으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서울에서 유명한 양재 꽃 도매 시장이다.
오래 전 필자에게 집안 경사가 있어 처음으로 이 거대한 꽃시장을 방문하면서 받은 지워지지 않는 첫인상으로 이 가을 국화계절이 올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다. 요즘도 기회가 생기면 가끔 둘러보곤 한다.
소매(小賣)꽃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중년여자들이다. 이들 얼굴 첫 인상이 모두 화사(華奢)하고 곱다는 느낌이다. 옛날부터 사주(四柱)보다 더 높은 것이 관상(觀相)이고 관상보다 더 윗길에 심상(心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결혼풍속에 사주라는 것이 꼭 등장한다.
사람이 태어난 해(年), 달(月), 날(日), 때(時)의 네 육십갑자를 말하는데 혼인이나 운수의 좋고 나쁨을 점지하는 자료가 된다.
심상에는 몇 가지 구성요인이 있다.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심상(心狀), 마음속의 생각을 나타내는 심상(心想), 감각기관의 자극이 없는 무의식 상태에서 떠오르는 인상(印象)과 같은 심상(心象)이 모여 한 인간의 마음가짐 즉 마음씨로 나타나는 것이 심상(心相)이다.
얼굴이 아무리 예쁘게 잘 생겨도 자신의 심상보다는 못하다고 했다. 심상이 고우면 인물이 곱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당사자의 마음가짐이 착하고 고우면 얼굴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세상사(世上事), 인생(人生)길의 세상만사(世上萬事)가 뜻한 대로 잘 풀려나간다고 했다.

꽃가게에서 받은 심상추억

직접 꽃가게에 가서 꽃을 다루는 여주인들과 대화를 하거나 꽃값 흥정을 해보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들의 말씨, 얼굴표정, 생각, 서비스 하나하나가 꼭두새벽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거의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격무에 시달리는데도 지친 기색이 없다.
꽃 속에서 생활하며 꽃들과 대화하며 꽃을 다루어서 그런지 다른 장사하는 사람들과 좀 색다른 면을 느끼게 된다.
꽃들이 많이 모여 있어도 역시 꽃은 아름다웠다. 말씨는 부드럽고, 친절했으며 조용조용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얼굴표정은 티 없이 밝고 맑아보였다. 생각은 긍정적이고 서비스는 정성이 가득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꽃을 파는 여자들의 몸에 밴 곱고 맑은 심상을 보았다.
이런 속설도 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고 했다. 사랑을 할 때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 사랑을 할 때에는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은 없다. 모두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긍정적이다.
결혼식장에서의 신부모습이 일평생 가장 아름답게 남는 것이다. 사람은 한 평생을 언제 어디서나 늘 희로애락 속에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세월과 더불어 하나의 패턴으로 형성되어 나타난다. 나쁘고 부정적인 마음씨를 갖고 살아온 사람은 살아온 그 궤적이 확연히 구분된다.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 속에 스며든 심상이 그대로 얼굴로 나타난다. 이때 나타나는 심상이 바로 마음을 쓰는 대로 곧 마음씨를 뜻하는 것이다.
만상은 불여심상(萬相不如心相)이라는 말을 깊이 음미해 보면서 이 가을을 즐겁게 보냅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6호 (2016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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