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글 / 김주원 금융감독원 금융교육 전문 강사

25년 전 선진 금융기술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 있다. 바로 대부분의 금융회사에서 운영 중인 ATM(Automatic Teller’s Machine, 현금자동입출금기)이다. 그 시절 사람이 아닌 기계가 ATM은 은행창구에 가지 않고 은행이 문을 닫은 밤에도 돈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간편송금 앱으로 휴대전화 번호만 알면 바로 송금을 할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1990년 7월 조흥은행이 일본에서 대당 8천만 원을 주고 수입해 명동지점에 설치한 것이 국내 ATM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 후 1993년에 제일정밀이라는 국내회사에서 개발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 2015년 12월 처음으로 인터넷뱅킹을 통한 입출금·자금이체거래가 ATM을 추월한 이후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ATM 이용이 활성화되기 전에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에게는 ATM과 관련된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다. 신입사원시절 기계에 돈을 맡기는 것이 불안해 이용을 꺼리던 고객들의 손을 잡고 반강제로 이용하도록 했던 일도 있었고 ATM 이용률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입출금을 반복적으로 했던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에는 한 할머니 고객께서 “더운데 기계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정말 고생이 많다”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이 말은 ATM을 바라보는 당시 고객들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낯설지만 편리한 ATM의 도입으로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금융회사는 단순 입출금업무에 근무하는 직원을 줄여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었고, 24시간 현금을 찾을 수 있게 된 고객들의 지갑에서 현금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한국사회의 유흥문화가 ATM 때문에 더욱 성행했다는 얘기도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금융회사의 업무스타일을 요즘 금융계의 화두 중 하나인 ‘비대면거래’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25년 전 ‘첨단 금융서비스의 상징’으로 불리며 화려하게 등장한 ATM의 위상이 최근 말이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중 발생한 은행의 입출금·자금이체거래 중 38.2%가 ATM, 40.2%가 인터넷뱅킹(모바일 포함)에서 이루어졌다. 2015년 12월 처음으로 인터넷뱅킹이 ATM을 추월한 이후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저성장·저금리 장기화로 ‘수익절벽’에 직면한 금융회사들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ATM을 줄이기 시작했다.

2013년 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ATM기 한 대당 연간 손실액이 166만원이라고 한다. 2015년 말 통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시중은행들이 운영을 중단한 ATM은 무려 2,522대에 이른다.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ATM을 보유 중인 국민은행은 올해만 벌써 360여 대를 폐쇄시켰고, 한화·교보생명 등 일부 보험회사에서는 아예 모든 ATM의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몇 년 전에는 보이스피싱 등 각종 금융범죄에 ATM이 활용되면서 이래저래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금 금융회사들에게 ATM은 ‘계륵’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고객들의 불만 때문에 없애기도 그렇고 비용 때문에 계속 운영하기도 부담스러운 그런 존재 말이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핀테크시대를 맞이한 ATM의 미래를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핀테크에 기초한 간편송금 등 새로운 금융서비스에 주연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의견과 핀테크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필자는 화려한 부활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실제로 일부 은행에서 삼성페이 출금서비스가 가능한 ATM,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전환해 출금할 수 있는 ATM 등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ATM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ATM이 금융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아니면 핀테크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화려하게 부활할지 지켜 볼 일이다.

필자소개 : 김주원

필자는 현재 금융회사에서 컴플라이언스와 금융소비자보호 관련부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 금융교육 전문 강사 및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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