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존스, 로렌스 올리비에, 에디 앨버트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24)]


황혼(Carrie)
윌리엄 와일러 감독, 1952년 미국 작품
제니퍼 존스, 로렌스 올리비에, 에디 앨버트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황혼>-원명 Carrie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2년 작 흑백 영화이다. 물론 컬러로 찍을 수도 있었겠지만, 흑백영상이 보다 더 내용에 부합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만큼 영화는 우울하다.

▲ 우연히 다시 만난 캐리 ▲“이렇게 뭔가를 원하기는 처음이요”. <사진=필자캡쳐>

<젊은이의 양지>란 이름으로 영화화된 ‘미국의 비극’을 집필했던 테오도어 드라이저의 ‘Sister Carrie’를 영화로 옮겼는데, 제목이 캐리여서 그녀의 이야기인 듯싶지만, 실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거지로까지 전락하는 한 남자 조지의 이야기다.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조지의 비극’이다.
물론 시골에서 대도시로 올라와 우여곡절 끝에 배우로 성공하는 캐리(제니퍼 존스)의 인생역정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단란한 가정과 행복한 상류층의 생활이 보장되는 직장을 갖고 반평생을 안락하게 살던 한 중년사내 조지(로렌스 올리비에)가 나머지 반평생을 탕진하는 이야기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 미싱공으로 일하던 캐리는 손을 다쳐 해고되자, 기차에서 집적거리던 찰리를 찾아가고 그와 함께 간 고급식당에서 총지배인 조지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조지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 “이 행복만은 절대 못 빼앗아” ▲“이혼만 해주오”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찰리의 초대로 다시 그녀를 보게 된 조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니, 아내는 환멸만을 느끼게 하고, “이렇게 뭔가를 지금까지 애타게 원하기는 처음이요”하며 캐리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죽기 전에 그 사랑을 꼭 이루겠어. 아무도 그걸 막을 순 없어. 이 행복만은 절대 못 빼앗아” 아내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조지는 직장도 가정도 다 팽개치고 캐리와 함께 뉴욕으로 야반도주를 결행한다. “당신과의 사랑에 내 모든 인생을 걸었어”하며, 더욱이 사장의 비자금 만 달러까지 챙겨서.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캐리는 젊은 찰리를 버리고 아버지 또래의 중년의 조지를 -비록 올리비에가 멋지고 매력적인 신사로 나오기는 하지만-열렬히 택한다.
더구나 캐리는 조지가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안한 총각이라고 생각했는지 가정과 아내가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뉴욕에 달콤한 보금자리를 틀었지만, 곧 조지의 자산은 동결되고, 졸지에 절도범이 된 조지는 변변한 일자리를 얻을 수가 없어서 조지와 캐리의 일상은 극도로 쪼들리게 된다.
“천 달러만 모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월급으로 언제 천 달러를 모아요? 나이 80에?”
이때 본부인이 찾아온다. 집을 1만 천 달러에 매각하려 하는데 공동소유인 그의 서명이 필요한 것이다.

▲ 캐리는 떠나고 ▲캐리의 공연 포스터

조지는 매각대금의 절반, 5천 달러를 요구하고 본부인은 거절하지만, 조지가 잠시 방을 떠난 동안, 부인이 동반한 변호사가 2천 5백 달러는 줘야할 거라고 설득하자 부인도 납득 한다.
이제 조지는 2천 5백 달러를 받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방에 돌아온 조지는 ‘바게인’을 하자고 제안하고, 본부인도 ‘바게인’을 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조지의 ‘바게인’은 캐리를 위한 정식 이혼 요구이다. 이혼만 해주면 무조건 매도 계약서에 서명해주겠다고 제안하여 받을 수도 있었던 거금을 홀랑 날린다.
이혼서류 한 장만 달랑 받은 조지는 막노동을 해서라도 캐리와의 삶을 영위해보려 발버둥을 치지만, 삶은 내리막길 고단하기 짝이 없다.
조지가 아들타령 하는 것을 본 캐리는 그를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그를 떠난다. “아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거에요. 저는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해요”
아들을 보러갔다가 차마 대면을 못하고 돌아온 조지는 캐리가 떠난 것을 알고 망연자실 한다. ‘내가 돈이 없는 빈 털털이가 되니까 결국 나를 버렸구나’하고.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도둑으로 낙인찍혀 직장을 구할 수 없게 된 조지는 점차 부랑자로 그리고 거지로 전락한다.
캐리는 그간 말단 합창단원에서 점차 주역 배우로까지 성공한 어느 날, 조지가 자신과의 애정도피를 위해 사장의 돈을 들고 나온 사실을 뒤늦게 알고, 수소문 끝에 그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어려운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저 때문이죠?” ▲그림자가 사라진다.

“내가 조지의 인생을 망쳤어. 그가 그렇게 전락한건 모두 나 때문이야” 캐리는 자책하며 그를 찾아보지만 그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캐리가 출연하는 극장포스터를 바라보던 조지는 늦은 밤 공연이 끝난 극장 뒷골목에서 혼잣말을 한다. “오늘도 굶으면 죽을 것 같아”
결국 그는 캐리를 찾아가고 푼돈을 애걸 한다.
“당신만은 안 찾으려고 했어. 조금만, 조금만 도와주면 돼. 그러면 다시는 안 올게. 너무 배고파”
캐리는 극장 직원에게 빨리 식당에 가서 따뜻한 음식을 사 오도록 부탁하고, 조지를 극장 분장실로 데려 간다.
캐리는 조지의 수척한 몰골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며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저 때문이죠? 모든 게 당신을 위해서 떠났던 거예요. 이제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을 갚을 게요” “아니 캐리. 난 됐으니 새로운 사랑을 찾도록 해. 사랑보다 멋진 건 없어”
조지는 캐리가 내놓은 지갑의 지폐를 잔돈으로 바꾸어 달라고 말하고, 캐리는 “돈이 더 필요 하겠지요? 구해 올 게요. 음식이 오면 먹고 우리 집으로 가서 함께 살아요” 하며 그를 만난 기쁨에 환하게 웃고 밖으로 나간다.
조지는 그녀의 지갑에서 지폐는 놔두고 달랑 동전 한 잎만을 들고 일어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본다.
나가려다 찻주전자가 끓고 있는 가스 곤로의 불을 끈다. 다시 한 번 켜니 가스가 쉬익 하고 새나온다. 다시 끄고 나간다.
조지의 실루엣 그림자가 분장실 문밖으로 사라진다.

조지는 캐리가 함께 살자는 말에 안도 한다. 그동안 수소문하며 자신을 찾아다녔다는 말에 감동하기도 한다.
이제 그 고난의 세월을 청산할 때도 되었다.
바지에 헝겊을 덧대어 꿰매자는 캐리의 말에 펄쩍 뛰던 조지는 이제 그 헝겊을 덧대 입은 바지를 벗어도 될 것이었다.
캐리가 내일 함께 새 옷을 사러가자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씨퀀스가 없었다면 영화가 어땠을까?
늦바람나서 패가망신한 얘기는 흔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그토록 아름답게 끝내는 것은 흔하지 않기에 이 영화는 아주 뛰어난 아름다운 영화다.
감독은 이 단하나의 씨퀀스로 우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준다.
윌리엄 와일러는 정말 거장이다. 어떤 장르이건 일단 그의 손에 들어가면 명품이 되어 나온다. 정말 찬탄을 금할 길이 없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6호 (2016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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