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역사적 우호관계 재평가

글/김영웅 러시아극동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소련 국회의원

▲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는 28세로 요절했지만 러시아에서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사진=위키피디아>

아관파천 당시 주한 러시아 공관은 고종이 포로신세에 처해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종을 구할 외교활동에 나섰지만 다른 나라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896년 2월 2일, 고종이 밀서를 통해 신변위협을 말하고 러시아 외교사절단장에게 망명을 요청했다.
이보다 앞서 갑신정변 후 청일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발생하자 묄런도르프 고문관을 통해 조선독립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었다. 아관파천으로 고종이 1년간 러시아 공관에 체류하면서 친일정권이 친노정권으로 교체되고 러시아인 탁지부 고문, 노한(露韓)은행 설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동양언어학과 조선어 과목 신설 등 문화교류가 확대됐다.
고종은 군사, 재정, 정치적 지위강화 계획의 일환으로 1896년, 명성황후 조카 민영환(閔泳煥)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특사로 파견하여 현지회담을 통해 러시아 교관 파견, 고종의 고문 임명, 경호대 훈련, 시베리아 전선과 조선 북부 전선의 연결, 일본 차관 상환을 위한 300만엔 대출지원 등에 합의했다. 그렇지만 러시아 외교관들은 유럽국, 일본, 청국 등과는 달리 조선의 국내 정치에 간섭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고종이 1897년 4월 3일자로 니콜라이 2세에게 아관파천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 창립, 친선음악회

이날 오전 학술 세미나에 이어 오후에는 전설의 고려인 록가수 고 빅토르 최(崔) 기념사업회 창립 및 한·러 친선 음악회를 개최했다.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는 한국 측 나정주 KOR-RUS 미래재단 이사장, 러시아 측 김영웅 러이사극동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사가 공동회장을 맡았으며 빅토르 최에 대한 헌정음악회에 이어 고인의 부친 로베르트 최에게 함경북도 지사의 명예도민증 증정 및 (사)한국뿌리문화보존회의 원주 최씨 족보 증정 절차가 진행됐다.
주최 측 준비자료에 따르면 빅토르 최 가문은 그의 증조부가 함경도 성진에서 태어난 원주 최씨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스탈린시대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정착했다. 빅토르 최는 1962년 6월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로 이주했을 때 조각공부 하고 음악 취미를 살려 인기가수가 되고 고려인 록그룹 KINO를 결성하여 열광적인 성원을 받다가 1990년 8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빅토르 최의 음악적인 재능은 그의 조모 김혜정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혜정 할머니는 연해주 라디오국의 고려인 합장단원 출신으로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쫓겨나기 이전 모스크바에서 노래를 녹음한 기록을 남겼다.

‘아관파천길’ ‘왕의길’, 복원공사 중

▲ 빅토르 최의 부친 로베르트 최. ‘ 한· 러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 창립에 맞춰 방한했다.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은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의 감회가 결코 유쾌할 까닭이 없다. 이는 약소국 대한제국이 열강들의 사냥터가 된 부끄러운 역사의 단면이기에 잊을 수 없는 치욕이자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뼈아픈 상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의 대한민국이 경제발전을 통해 국력부강을 이룩했다고는 하나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막무가내식 북의 핵과 미사일 위협 앞에 놓여 여전히 주변국들의 패권다툼 언저리에 속해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아관파천 역사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을 달성하기까지 각국들과 역사문화 교류증진을 통해 신뢰와 공조관계를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한·러 학술 세미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며 양국관계 발전에 음양으로 기여하는 고려인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 창립과 친선 음악회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한편 지난 7월 21일, 중앙일보가 고종의 아관파천 길을 문화재청이 ‘왕의 길’(King’s Road)로 복원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120년 전 고종이 친일파의 모략과 일본의 침략기도에 위협을 느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길 113m를 25억원을 들여 금년 말까지 원형대로 복원하고 왕의 길 서쪽 끝 편에 위치한 구 러시아 공사관도 2021년까지 옛 모습으로 되살린다는 계획이다.
또 매일경제신문은 지난 9월 12일, 우리은행이 본점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자본 은행인 ‘대한천일은행’ 설립자인 고종황제의 흉상을 10월 말까지 설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1월, 고종이 황실 내탕금으로 설립하여 일본자본이 지배한 ‘한성은행’에 맞선 조선민족 은행으로 조선상인들 중심으로 운영했다.
대한천일은행은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하여 8.15를 맞았으며 1950년 ‘한국상업은행’, IMF 외환위기 이후 2002년 한일은행, 평화은행 등을 흡수하여 ‘우리은행’으로 오늘에 이른다. 우리은행은 고종의 흉상을 실물크기로 제작, 본점 정문에 ‘설립자 대한민국 제1대 황제’(1852~1919)라고 표기함으로써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임을 알릴 방침이라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7호 (2016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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