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가 마녀로 지목하면 끝장

요즘 왜 이리 슬퍼요
집단 히스테리 증후?
유언비어가 마녀로 지목하면 끝장

글/ 宋貞淑 편집위원 (송정숙 전 장관,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후배 하나를 만났다. 일부러 만난 것이 아니라 오다가다 만났다. 그가 만나자 마자 하는 말이
『선배님 저는 요새 왜 이렇게 슬프죠?』 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생각났다. 내가 요즘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력감이 들어 어쩔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
『맞다. 나도 요즘 그렇게 슬펐던 것이구나!』
느닷없이 쓰나미처럼 몰려 온 집단 히스테리증후군에 휘둘려 사회는 수렁 속으로 추락하고 있고 냉철하게 이성을 챙기는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대중들이 좀비처럼 날뛰고 있다.

▲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 민중총궐기’ 촛불집회 모습.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였다. <사진=경제풍월DB>

몽테뉴 시대 ‘광기의 난동’ 연상

박근혜를 쓰러뜨려서 이 나라를 쑥대밭을 만들어야겠다고 작심하고, 계획하고, 자금을 풀어 지원하고, 온갖 악플로 조작 조장하고, 그렇게 해서 해독제 없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자처럼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리는 사람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는 이 세월이 너무 기가 막혀서 나도 지금 슬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건 꼭 몽테뉴 시대를 연상하게 한다.
1570년에 체결된 생제르맨 협정을 두고 카토릭파와 프로테스탄트파인 양 진영은 서로 불만이 가득하여 언제 전쟁이 터질지 일촉즉발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일은 터졌다. 서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광기(狂氣)가 세상을 뒤덮었다. 성서가 예언한 종말은 이렇게 찾아온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1570년대의 프랑스는 그런 혼란의 광기에 휘둘리고 있었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평생 사리에 맞게 행동할 사람들이 이런 참극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진정 비극이었다. 폭도들이 학살을 자행하면서 틈틈이 술집에 들러 『노래 부르고 류트와 기타를 연주하면서』 축배를 들었고 주로 여자들과 어린이들로 구성된 무리도 있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이런 광기의 난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어린 자식까지 데리고 소풍 나오듯이 나온 가족을 정신 나간 언론들은 신이 나서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수능이 끝난 십대들이 촛불 시위를 벌이는 일을 영웅적인 행각처럼 부추기는 저녁 뉴스도 있었다.
당시의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일들로 해서 종말이 며칠 뒤에라도 올지 모른다며 절망에 빠졌다. 몽테뉴의 편집자조차도 젊은 시절의 이런 프랑스를 놓고
『이 나라가 복구되기는커녕 최후의 파멸로 치닫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고 그 때를 후일에 회상했다.

유언비어가 마녀로 지목하면 고문, 살상

세상에 종말이 가까웠으므로 마귀가 날뛰는 것이니까 마귀 사냥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이 광기들을 더욱 극성스럽게 상승시켜갔다. 마귀를 적발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므로 「깔끔한 법적 조치와 정상적인 절차」 에 지나치게 집착할 일이 못 된다는 주장이 끓어오르고 마침내는 유언비어가 「거의 틀림없는 증거」로 법정에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마을 사람들이 어떤 여자를「마녀」로 지목하면 그 소문만으로 그 여자를 고문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그런 추측을 근거로 「지목된 마녀」는 산채로 불태워졌다.
SNS라는 것에 해괴한 소문이 퍼지고 그것이 「사실」이 되어 나라를 들끓게 하여 사회를 마비의 경지로 빠지게 하고 있는 오늘과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가.
게다가 지금은 그것을 기회로 잡아 정권탈취를 할 것으로 작심한 세력의 날뜀이 온갖 음모까지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느닷없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 꺼떡꺼떡 왈패처럼 행세를 하는 한 야당 대표 여인의 행투는 그 중에서도 가관이다. 나라의 운명을 북한의 세습 김가네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허락」받으며 정치를 한 전력을 가진 어떤 대통령병 이 환자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정권을 뺏어올 것처럼 기고만장 설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위기에서 몽테뉴가 들려준 말들을 위안삼아 되새겨본다. 그는 당대인들에게 말했다.
〈내가 곤경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각도 다른 척도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라는 고대 스토아철학의 교훈을 상기하라. 고대 그리스 로마의 현인들은 소요사태가 있을 때마다 개미왕국의 소동을 내려다보듯이 위에서 분쟁을 내려다보는 태도를 보였다.… 아무리 나쁜 일이 있어도 인생은 거의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계속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고〉

사실보다 감정이 여론형성 영향

지상에서 그 참혹한 살육의 전쟁이 벌어져도 그 밑에서는 강물이 흐르고 계절이 진행된다고 그는 말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주어진 인생을 살면 종말은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몽테뉴의 말은 맞았다. 혼돈이 종말처럼 우리를 휩쓸고 있는 지금 몽테뉴 타령이나 하며 위로 받고 있는 내가 허망하고 쓸쓸하다.
유언비어가 법적 증거 능력을 갖게 되자 마녀의 수는 갑자가 부풀었고 그 「증거」 때문에 화형을 받은 마녀는 부지 기수였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지금의 우리 세상이 그 즈음과 조금도 진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말에 이른 오늘 옥스퍼드 사전이 새로 지정한 단어가 신기하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포스트 트루스」를 올해의 단어로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했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이 신어는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영향을 주는 상황』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라고 한다.
어쩌면 오늘의 세계는 이런 증후군에 만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악의적이고 부당한 방법으로 배후에서 이런 것을 더욱 조장하는 혐의가 은닉되어 있는 이 나라의 현상은 더욱 속수무책의 현장으로 치닫게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 휩쓸려 표류하지 않도록 제발 나서주는 현인들이 없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8호 (2016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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