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킹' 속 검사와 사건들.

[이코노미톡 최서윤 기자]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은 지난 2015년 개봉 전부터 구설에 휘말려야 했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던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벌어진 남북 간 해전을 다룬 이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제작비 문제 등에 부딪혔다. 그렇게 7년 동안 우여곡절 끝에 개봉돼 빛을 봤다. 이 영화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월드컵 폐막식 관람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뉴스 한 장면으로 인해 엄청난 비난 공세에 시달렸다.

그로부터 2년여 뒤 개봉한 영화 ‘더킹(감독 한재림)’은 과감해졌다. 현대 정치사에 남은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과 실명을 거침없이 나열했다. 이 영화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인한 현 시국에서 오히려 주목 받고 있다. 두 영화 모두 삼성물산 출신의 김우택 대표가 이끄는 NEW가 배급사다. IBK기업은행 등이 투자에 참여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에서는 곳곳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을 실화가 아닌 ‘허구’라고 표기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라고 하기엔 실제 있었던 많은 사건과 검사들이 연상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 영화 '더 킹' 스틸 이미지.

◇ 1%의 칼잡이 검사들은 누구였을까?

‘더 킹’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평검사에서 부장검사, 검사장,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 등으로 올라가려는 칼잡이 검사들의 야욕을 언급했다. 이 영화는 권력층에서도 상위에 있는 검찰 조직의 어두운 면을 풍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에서는 검찰 조직을 풍자하면서도 “99%는 성실한 검사들”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한다. 1%의 박태수(조인성 분), 한강식(정우성 분), 양동철(배성우 분) 검사와 99%의 안희연(김소진 분), 최민석(최귀화 분) 검사는 영화 속에서 대조를 이룬다. 영화 속 주인공과 우연의 일치인 듯 이미지가 겹치는 검사들은 누굴까.

“여기 서울대 법대 안 나온 사람 있나?” 한강식 부장은 20대 초반에 사법시험을 합격한 수재다.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싶어 하지만 번번이 낙마했다. 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이명박정부에서 검사장이 된다. 한강식은 ‘최순실 게이트’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떠올리게 한다. 혼밥을 하고, 굿판을 벌이는 한강식의 모습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관객들도 있다.

우 전 수석은 서울대 법대 84학번이다.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최연소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했으며 2009년 이인규 중앙수사부 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과 함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박연차 로비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영화와 달리 실제로는 노 전 대통령의 수사를 맡은 검사 대부분이 검찰을 떠나거나 승진에서 탈락했다. 우 전 수석도 검사장을 하지 못했다.

극 중 박태수는 서울대 법대 85학번이다. 고향은 목포다. 재학 중 군대를 갔다 와서 1991년 사법고시를 합격한다. 사법연수원의 수습기간은 2년이다. 박태수는 전과자인 아버지까지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2년에 무난히 검사 임용을 받는다. 박태수는 한강식, 양동철과 함께 부정비리를 저지르다 복수를 위해 이미지 세탁을 한 뒤 양심선언을 함과 동시에 정치에 뛰어드는 인물이다.

박태수는 1987년 6.10 민주항쟁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민주화투사로 자신을 포장한 뒤 정치1번지인 서울 종로구 출마를 선언한다.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당에서는 연고가 없는 광주광산을에 공천을 준다. 이마저도 5선 국회의원에게 도전하기 위해 종로에 출마한다는 설정은 눈길을 끌었다. 현재 광주 광산을은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의 지역구다. 권 의원은 2012년 수서경찰서 재직 당시 국정원 수사외압 의혹을 폭로한 뒤 정계에 진출했다. 실제 종로에는 5선 국회의원이 없다. 이 지역은 15대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 됐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2년 만에 의원직을 상실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보선을 통해 입성한 곳이기도 하다.

양심선언 장면은 2007년 이건희 회장의 삼성 불법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연상된다. 김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 76학번이다. 광주 출생으로 서울중앙지검 검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삼성에 재직하는 동안 에버랜드 사건의 기소를 막고, X파일에 대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계로 진출하진 않았다.

영화에서는 정권에 밉보여 좌천 되거나 성(性)적으로 부도덕한 행위 등을 저지르는 검사도 등장한다. 우직한 검사로는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인 홍업·홍걸 씨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시키고 몇 달 뒤 피의자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명재 전 검찰총장과 영화 ‘야수’의 실제 모델이었던 홍경령 전 검사가 있다. 홍 전 검사는 2002년 수사 중인 조폭이 사망하면서 검사복을 벗었다. 홍 전 검사도 극 중 박태수와 마찬가지로 윗선에서 사표만 제출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회유를 받았다. 하지만 사표를 제출하자마자 검찰에 곧바로 구속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영화 속에는 이 밖에도 혼외자 논란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 음란행위 논란의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등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숨어 있다.

▲ 영화 '더 킹' 스틸 이미지.

◇ 역대 대통령과 그 때 그 사건들

‘더 킹’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서울 강남에 진출한 목포 출신 조폭 최두일(류준열 분)이다. 최두일을 보면 1986년 8월에 벌어진 ‘서진룸살롱(서진룸싸롱)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이는 목포파가 관리하던 서울 강남구의 서진회관에서 조직폭력배들 간 다툼으로 맘보파 조직원 4명이 살해된 사건이다. 주범 2명은 1989년 8월 사형 당했다. 다음해인 1990년 10월 노태우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사건은 1997년 영화 ‘넘버3’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맘보파 두목 오 씨는 200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20년 만에 다시 논란이 됐다.

“역사를 배워야 한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더 킹’의 명대사들이다. 영화에서는 정치계 대형 이슈를 덮기 위해 검찰이 연예인들의 마약, 성 추문 사건을 터뜨린다는 설정을 했다. 김영삼정부에서 김대중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영화 속 검찰은 한 여배우가 1994년에 찍은 동영상을 갖고 있다가 1998년에 교묘히 흘린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뒤집혔던 유명연예인의 성관계 비디오의 사실상 최초 유출은 1998년 가을께 이뤄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른바 ‘O양 비디오’다. 이 비디오는 1991년에 촬영됐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이후 대중에 드러났다. 이 시기 정치적으로는 ‘신(新)한일어업협정’이 있었다. 독도 주변 해역을 한일 중간수역(공동수역)으로 인정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비판을 받는 협정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톱스타들의 대마초 등 마약과 성 추문, 병역 비리 사건은 이후에도 계속 터졌다. 성 추문으로는 백양 비디오(2000년), 주병진(2000년), 송영창(2000년), 이경영(2001년) 사건 등이 터졌고, 마약으로는 신동엽(1999년), 황수정(2001년), 성현아(2001년)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기간 정치적으로는 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옷 로비 의혹 사건(1999년), 의약분업 사태와 16대 국회의원 선거(2000년), 이용호·윤태식·정현준·진승현 게이트(2001년) 등이 줄줄이 터졌다.

2002년과 2004년, 2007년 대선 직전에는 톱스타들의 병역 비리가 크게 불거졌다. 인기 절정에 있던 유승준은 2002년 1월, 미국 시민권 취득과 함께 병역 기피 논란으로 현재까지 국내 입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11월에는 병역 비리에 연루된 송승헌과 장혁이 군에 입대했다. 2004년에는 ‘한국을 X진 100인의 X새끼들(김구라, 황봉알, 노숙자)’ 노래에 이들 연예인들의 명단과 욕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처럼 등장했다. 2007년 5월, 검찰은 싸이의 부실 근무 정황을 포착했다며 싸이와 복무 회사에 관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영화 속 화면에서처럼 2002년 당시에는 이회창·노무현 후보가, 2007년에는 정동영·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다. 후보들 모두 군대를 다녀왔다. 하지만 이 후보는 두 아들에 대한 군 미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200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활동했던 참여연대와 김대업 등의 병역 의혹 제기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2005년 대법원은 이 후보의 발목을 잡은 ‘병풍’ 사건과 관련, 김대업과 이를 보도한 매체에 유죄를 확정했다. ‘병풍 공작’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대업은 최근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와 지역 유지의 아들, 주안일보 백 기자(김민재 분)의 등장도 예사롭지 않다. 2005년 MBC 이상호 기자가 폭로한 이학수 삼성 구조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녹취 파일에는 유력 대선 주자와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주는 일명 ‘떡값’ 대화가 담겨 있어 정관계 로비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 기자는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삼성 X파일 특검을 “시기상조”라며 사실상 막았다고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안기부(현 국정원) 도청’ 사건으로 불렸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도청을 한 사실이 적발됐고, 2007년 12월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실형 선고를 받았다. 이들은 상고를 포기했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2008년 1월 사면 받았다.

노무현정부는 검찰개혁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 일환으로 2007년 발의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도입을 위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사법시험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등은 “로스쿨은 현대판 음서제”라며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의 병행을 주장하고 있다.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 등이 관련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 영화 '더 킹' 스틸 이미지.

영화 ‘더 킹’에서는 하회탈의 웃는 얼굴 이미지에 대해 안동 사람들은 대마초를 피운다거나, 호남 사람이 민주화운동에 부정적이었다거나,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등의 지역민들에 대한 명예훼손과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도 나온다. 박태수의 부인인 아나운서 임상희(김아중 분)를 보고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곤혹을 치른 강용석 변호사를 떠올리는 관객도 있다. 굶주린 개들에게 살아있는 사람을 먹이로 주고, 이를 지켜보는 정우성이 자신이 광고모델로 활동했던 동서식품의 맥심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애견인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 있다.

반면, 영호남 출신 검사들이 공조 수사 끝에 한강식을 몰락시키는 장면은 통쾌함을 안겨 준다. 정우성과 조인성의 춤추는 장면은 영화 ‘검사외전’에서 강동원이 선거운동원으로 변신해 춤추는 장면만큼이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볼거리다. 박태수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입당한 기호 2번 민주개혁당의 정체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난 총선까지 2번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올해 대선은 상황이 다르다.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이 1번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민주당의 당색은 파란색이지만 이 색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사용했던 색이기도 하다. 최근 새누리당 탈당파들이 창당한 바른정당은 밝은 파란색을 당색으로 쓰고 있다.

한편,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더 킹’은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131만1926명을 동원했다.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에서 설 연휴를 앞둔 18일 개봉한 이후 누적 관객수는 185만294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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