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음악)의 힘

[이준복의 노래와 삶(4)]

나의 음악 이야기(4)
좋은 노래(음악)이란?
노래(음악)의 힘

글 / 이준복 노래하는 농부(서울 영신여고 퇴직 후 충남 예산 삽교에서 과수원농사)

[노래의 힘 1 – 주체할 수 없었던 눈물]

계급장도 없었다. 자존감은 날마다 한두 덩이씩 논산 훈련소 땅에 비비며 닳아 없어져가고 있었다. 7월의 직사광선 아래 목총을 들고 연병장에서 선착순을 반복하여 뛰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한달이다.”

훈련이 끝나고 마지막 일요일 교회에 갈 사람은 연병장에 모이란다. 당시 감리교인이었던 나는 급히 뛰어나갔는데 벌써 선착순 마감이 끝나버린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조교에게 보내달라고 말하자 그 조교는 나를 연병장 가운데 세워놓고 훈련병이 간이 부었다며 주먹으로 워카 발로 가슴을 찼다. 쓰러지면 바로 일어났고 일어나면 또 때리고 한참을 때리더니 “그래도 가고 싶나?” 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말하자 “그럼 저 줄 끝에 서!”

드디어 군인교회에 도착하였다. 설교가 시작되기 전 특별순서로 성악을 전공한 한 훈련병이 소개되었다.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내가 이미 잘 알던 찬송이었다. 내가 들어본 목소리 중 최고의 바리톤이었다. 훈련병 복장이나 짧은 머리, 까맣게 그을린 초췌한 훈련병 얼굴은 나와 다를 바 없이 사람꼴이 아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그 아름다운 목소리와 가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노래를 처음 배웠을 때 받았던 감동, 남성4중창으로 그 음악을 연습하던 장소 그리고 그 아련해진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노래가 끝나고도 어떻게 해 볼 수 없이 눈물이 흐르는 바람에 한참이나 진정해야 했다. 그렇게 맞고 차이고 밟히던 독한 훈련 중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었는데…

[음악의 힘 2 – 나는 거기에 꽃을 사러 간 것이 아니었다]

신병교육대에서 6주 간의 고단한 훈련을 마치고 원통에 있는 모 사단 사령부 군인교회에 군종 사병으로 배치되었다. 내 임무 중 하나는 토요일마다 교회 청소와 강단 위에 꽃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자대 배치 받은 후 첫 토요일 오후 군복을 잘 빨아 입고 낡은 자전거를 타고 꽃을 사러 나가는 첫날이었다. 아주 작은 면소재지를 한 바퀴 휙 돌다 보니 헌병초소와 마주 보이는 삼거리에 꽃집을 겸한 수예점이 하나 있었다. 미닫이문을 단 엉성한 옛날식 건물이었다. 영화의 세트장 같은 군인들만 돌아다니는 묘한 분위기의 자그마한 타운에 꽃집이 있다니 신기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게 웬 일인가!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Eb장조’의 곡이 작은 꽃집을 꽉 채우며 흐르고 있지 않은가! 내 눈 앞의 탁자 위에는 옛날의 그 포터블 전축 위에 LP판이 돌아간다. 게다가 거기에 있는 꽃들보다 더 예쁜 아가씨가 생긋 웃으며 “어서 오세요” 라고 인사까지 하였다.

나는 지금 어떤 세상에 들어온 것인지 혼란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묻지도 않은 말을 중얼대었다. “와~! 이 음악 제가 자주 듣는 하이든 음악인데 와~ 여기서 듣네요. 와~ 오~” 또 뭐라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 아가씨는 이등병 계급장부터 낡고 바랜 군복의 초췌한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더니 의자에 앉으라며 따뜻한 차를 한잔 내민다. 손님들마다 차를 대접하지는 않을 테고, 아마 불쌍하게 여긴듯하다.

나는 마지막 악장까지 다 듣고 가도 좋겠냐고 묻고는 오랜만에 음악의 깊은 감동에 빠져있었다. 음반이 다 돌아가자 꽃집 아가씨는 어느 부대인지 묻고는 꽃은 그냥 가져가라며 환하게 웃으며 잘 포장해주었다. 꽃 선물까지 받고 자전거로 귀대하는데 내 평생에 자전거로 구름을 타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다음 토요일을 기다리다 보니 고달픈 내무생활도 전방의 그 지독한 추위도 견딜 만 하였다. 다시 토요일에 그 아가씨는 서둘러 그 음악을 걸어주고 늘 따뜻한 차를 내미는 것이었다. 제대할 무렵에는 꽃집 음반을 거의 다 들었는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바로크, 고전음악 쪽은 몇 번씩 들었다. 음악이야기가 자꾸 발전하여 내 고향과 친구들, 대학생활이야기로 자꾸 살이 붙어갔다.

그녀도 면장님이신 아빠가 꽃집을 내어주신 이야기, 미스 강원 선발대회에 나간 단짝 친구이야기 등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면 음반 위에 걸었던 바늘이 잡음을 내며 헛바퀴를 돌고 있었다. 그때서야 문득,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깨닫고 시계를 보고 아쉬워하기 일쑤였다. 때론 귀대시간이 늦어져서 정신없이 자전거를 몰다가 다시 가서 꽃을 산적도 있었다.

[ 노래(음악)에도 유기농이?]

지난 봄 내내, 우리 부부는 어느 회사의 세미나 행사에 초대되어 40여 회에 걸쳐 ‘노래가 운동이다’라는 주제로 30분씩 함께 노래하는 보람찬 시간을 보내었다. 대개 8~9곡을 선곡하기 위하여 많은 고민을 한다. 유기농 노래가 선택 기준이었다. 노래에 농약성분, 제초제, 비료, 각종 화학성분이 있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선택하기 좋은 유기농 장르가 바로 동요이다. 동요는 순수한 것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동심으로 끌어가며 세파에 찌든 때를 씻어주는 묘한 힘까지 지니고 있다. 대개 5, 60대 이상의 초로의 여성들이 중심이 된 자리에서 ‘고향 땅’, ‘섬 집 아기’,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오빠생각’ 등 아름다운 동요들을 함께 부르면 그 반응이 대단하다. 노래가사에 이끌려 어렸을 적 추억으로 빠져들어 촉촉히 젖어오는 감동에 박수가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그 다음은 ‘모닥불’, ‘이사 가던 날’, ‘새색시 시집가네’, ‘등대 지기’, ‘바위섬’ 등 맑고 깨끗한 우리의 흘러간 7080 가요들이다. 이런 노래들을 선곡하면 무조건 성공이다. 한번은 ‘이사 가던 날’ 노래를 자막에 띄워놓고 나의 어렸을 적 고향에서 같이 놀던 명숙이, 순자 등 여자애들과 탱자나무 울타리 고향 얘기를 소개한 다음 함께 노래를 한참 부르고 있었다. 중년 여성 한 분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고 있고 옆의 친구가 등을 쓸어주며 위로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노래는 우리를 아름다웠던 추억 속으로 깊이 몰아넣기도 한다.

또 좋은 유기농 음악 장르가 있다. 각 나라마다 전국민이 애창하는 그 나라의 정서가 깊이 녹아있는 민요 (Folk Song)들이다. 처음 가보는 외국에서 빨리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그 나라의 노래를 한 소절이라도 익혀 가면 도움이 된다. 원어이면 더 좋고 번역된 곡이라도 상관없다. 이것은 내가 수없이 경험하였던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흥얼송?]

내 음악의 목표는 아드레날린의 분출로 인한 흥의 촉발도 즐길 줄 알지만

깊은 호흡과 내 온몸으로 부르는 시와 노래로

가슴 뛰는 경이와 평정의 상태를 경험하고

그 음악의 얼들이 쌓여 영원한 나라와 고상한 미덕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위대한 과정이라 믿는다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소개하는 ‘류시화’ 시집의 시 구절이 하나 있다.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남을 의식하면 노래하기 어려워진다. 누가 있든 없든 흥얼흥얼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시작하면 가사가 슬슬 생각나며 흥얼거리는 콧노래에서 가사가 실린 작은 노래가 되고 어느 부분에서는 갑자기 소리가 커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진짜 내 노래이다.

휘파람도 똑같은 원리이다. 내 고향 충청도 삽다리 읍내에 ‘빵꾸’라고 유리창에 커다랗게 써 있는 자전거포 아저씨는 늘 휘파람을 분다.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나도 따라서 휘파람을 불면 슬쩍 쳐다보고 씽긋 웃는다. 나도 같이 웃는다. “다 뎄슈” “올마유?” “별것두 읍는디 뎄슈” 나는 기름질까지 쳐주어 씽씽 잘나가는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휘파람을 불다가 노래가사가 자꾸 따라오는 바람에 백씨네 과수원 탱자나무 길로 접어들면서는 신나게 노래를 불러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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