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 카잔 감독, 1961년 미국작품
내털리 우드, 워렌 비티, 팻 힝글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29)]


(Splendor in the Grass)
초원의 빛
엘리아 카잔 감독, 1961년 미국작품
내털리 우드, 워렌 비티, 팻 힝글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 “안돼 버드” (우측) ▲“난 널 위해 뭐든 할거야”. <사진=필자캡쳐>

여자들은 그것이 옳다고 전통적 교육을 받아왔고, 일종의 보험처럼 여기기에 결혼 전까지 육체적 순결을 지키기를 원하고,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인을 육체적, 성적으로 지배하기를 원하는 인간적 욕망을 억제하기 힘들어 하는 것은 고금동서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을 것이다.
거기에 갈등이 있다. 다만 세월이 흘러 작금에는 성적 자유를 넘어 성적 개방을 주장하는 진보적 세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할 지라도 과거에는 훨씬 보수적이었고, 도시보다 컨츄리 사이드는 그 경향이 훨씬 더 강했다.

▲ “당분간 만나지 말자” (우측)▲그 시의 의미는…<사진=필자캡쳐>

1928년 미 중부 캔자스.
폭포근처에 주차중인 차속에서 고교 졸업반 윌마 디니와 동급생 부잣집 아들 버드가 포옹을 하고 있다. 키스를 거듭하면서 버드는 더 이상을 원하지만 디니는 두렵다며 거부한다.
“집에 데려다 줄게” 화가 난 버드는 디니의 집 앞에서 “키스는 충분히 했으니까” 하며 굿나잇 키스도 안 해주려다가 키스를 해주고 떠난다.
지켜보던 디니의 모친은 디니에게 정숙한 여자만이 존중을 받는다며 순결을 지키도록 다짐하고, “네 아빠는 결혼할 때 까지 내손도 잡지 않았단다” 성적 욕망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세뇌하듯이 강조한다.
집에 온 버드에게 아버지 에이스 스탬퍼는 비록 가난하지만 디니와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겠다며, 만약 그가 책임져야할 일을 했다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고 버드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대꾸한다.
사춘기 딸과 아들이 데이트하는 것을 보는 양가의 부모는 성적관계에 대해 이렇게 노심초사하게 되는 것이다.
수업시간 디니는 공책에 스탬퍼부인이니, 하트속에 버드와 디니등 낙서를 하며 자신과 버드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버드는 다른 여학생과 얘기를 했다고 따지는 디니에게 짜증을 낸다. “난 왜 요즘 쉽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어”
“버드. 난 너에게 푹 빠져있어. 난 널 위해서라면,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난 너 없으면 살 수 없어”
아무도 없는 디니의 집에서 키스를 거듭하며 열을 올리던 두 사람은 모친의 등장으로 중단되고, 버드는 아버지에게 디니와 당장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아버지는 예일대학에 가서 4년 후 졸업을 하고 그때 결혼하라고 타이른다. 결국 버드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디니는 “언제까지나 영원히 널 기다릴게”하고 말한다.
버드의 누나 버지니아는 그의 아버지가 결혼을 무효화하고 집에 끌고 왔을 만큼 방종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으로,
새해맞이 파티에서 술에 취해 남자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주먹질을 한 버드는 몰매를 맞는다.
디니를 데려다 주면서 “이제 차속에서 키스나 하는 일 그만하자”며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선언한다.
차속에서 남자와 엉켜 있던 누나가 역겨워서이다.
버드가 폐염에 걸리자 디니는 교회를 찾아 그의 완쾌를 간절히 주께 기도하고, 응답이라도 하듯 완쾌된 버드는 개방적인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디니를 만나주지 않는다.
디니는 수업 중 ‘초원의 빛’ 송시를 읽다가 그 시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젊음의 이상향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에요”하며 뛰쳐나간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신경쇄약 증세를 보이는 디니는 오직 죽고만 싶다고 말한다. “버드가 널 더럽혔니?”묻는 모친의 말에 “더럽혀요? 난 태어난 상태 그대로 순결하다구요. 정숙한 숙녀였다구요. 난 시키는 대로 복종해 왔다구요” 펄펄 뛰며 히스테릭하게 고함치는 디니.
부모의 고민은 깊어가는 중에 버드에게 “더 이상 디니를 만나지 않으면 이번엔 내 차례다”하며 그의 친구 터츠가 디니를 찾아와 댄스파티에 데려간다.
버드를 발견한 디니는 그를 차속으로 끌어들여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나 정숙한 여자 아니야. 난 너를 원해” “넌 정숙한 여자야 디니. 왜 그래? 네 자존심은 어디 갔니?” 말리는 버드에게 “난 자존심도 없어. 없다구. 그저 죽고 싶을 뿐이야” 히스테리를 부리며 터츠의 차를 타고 떠난다.
차속에서 터츠의 애무를 뿌리치고 나온 디니는 폭포를 발견하고 자살을 결심, 물에 뛰어들었으나 사람들에게 구조된다. 버드는 디니의 집을 찾아왔지만 디니는 없고..
아직 디니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병원에서 버드는 아버지가 뭐라 하든 성인인 나는 디니와 결혼하겠다고 하지만 의사는 진정으로 디니를 위한다면 그녀와 떨어져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오랫동안이요?” “그건 모르지”
울음을 터뜨리는 버드. “저기 누구에요? 누군가 여기 있었어요.” 정신을 차린 디니의 말에 간호원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본능적으로 디니는 그가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결정적 장면이다. 만약 간호원이 버드를 불러들였다면, 디니는 분명히 좋아질 것이고, 둘은 행복한 결합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 “난 정숙하지 않아” (우측)▲“넌 행복하니?” <사진=필자캡쳐>

예일대학에 진학한 버드는 자포자기 학업에 뜻이 없는 채 식당종업원과 사귀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디니는 남자친구존을 만난다. 주식의 대폭락으로 대공황이 시작되고 파산한 버드의 부친 에이스 스탬퍼는 투신자살한다.
2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된 디니에게 의사는 존과 결혼하려면 버드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한다.
버드의 사진을 떼어낸 빈자리를 보며 디니는 버드가 결혼했느냐고 묻지만 모친은 모른다고 잡아떼고, 친구들이 찾아오자 디니는 버드를 만나게 해달라고 조른다.
아버지의 농장에서 농부로 일하는 버드를 찾아온 디니.
달려와 마주 선다. “오랫만이야. 만나서 반갑구나 내 가족을 만나볼래?” 그가 결혼한 줄도 모르던 디니는 버드의 아내, 아들을 만나고 걸어 나온다.
“행복하니?” “그런 것 같아. 넌 어때?” “난 다음 달에 결혼해. 그를 좋아하는 것 같아” “때때로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 같아. 그렇지 않니?” “맞아. 나도 그런 것 같아”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웃는 얼굴로 차로 가는 디니를 다시 불러 세우는 버드. 뭔가를 기대하고 다가오는 디니.
“다시 만나서 정말로 반갑다.” 그게 다였다. “고마워 안녕”
차를 타고서도 그리움 가득 담은 간절한 눈을 그의 얼굴에서 떼지 못하는 디니. 차는 떠나고 그렇게 젊은 날 뜨겁게 사랑하던 커플은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진다.
“디니 아직도 그를 사랑하니?”친구의 묻는 말에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거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을지라’ 아련히 싯귀가 들려온다.

▲ 초원의 빛이여… <사진=필자캡쳐>

<버스 정거장> <피크닉>등을 집필한 저명한 극작가 윌리엄 인지의 탄탄한 대본과 브로드웨이의 명연출가로 명성이 드높은 엘리아 카잔의 완벽한 연출과, 사슴처럼 슬프고도 커다란 눈망울로 사춘기소녀의 안타깝도록 간절한 사랑의 갈망을 극적으로 표현한 내털리 우드의 빛나는 연기와, (아쉽게도 아카데미 주연여우상을 관록의 소피아 로렌에게 뺏겼지만) 신인으로 데뷔한 워런 비티의 신선함이 한데 어우러져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명화가 되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1호 (2017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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