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부터 너무 기고만장은 가소로워

[김동길 박사 '이게뭡니까']

촛불과 태극기 대결 속
어떤 지도자가 나올까
미리부터 너무 기고만장은 가소로워

글/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헌재의 탄핵심판으로 대통령이 파면된 후 대통령 선거전이 펼쳐지니 곧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가 극성이었지만 대체로 촛불기세에 올라탄 세력 쪽에서 집권자가 나올 것이라고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과연 어떤 지도자가 나올 것인가.

▲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문재인 전 대표,안희정 충남도지사, 최성 고양시장이 지난 3월 21일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방송사 합동토론회에 참석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여당 없는 대선 정국

5월 9일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여당이 없는 선거일 수밖에 없다. 당명을 바꾼 ‘자유한국당’이 있지만 차기 대통령을 낼만한 정당으로 보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4.19 뒤에 자유당이 몰락하고 민주당이 집권하기 위해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단행하고 장면 총리가 집권했다. 그러나 5.16 쿠데타로 민주당 정권이 주저앉고, 군사정권을 위해 민주공화당이 창당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을 보필했지만 10.26 사태로 ‘그때 그 사람’이 되고, 민주공화당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 뒤 야당이던 김대중이 이회창을 이긴 것은 제 힘만 가지고 된 것이 아니고 대통령 김영삼이 여당의 힘을 김대중에게 실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 사람이 다 고인이 되었으므로 직접 따져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노무현도 제 힘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고 당시 대통령 김대중의 막강한 지지가 있어서 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재직 중 “반미가 뭐가 나쁩니까?”라고 한마디 한 것이 정동영의 집권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명박의 압승을 가져온 것이다. 그 뒤 박근혜는 이명박 뒤를 이어 청와대의 주인이 됐지만 그의 고집과 불찰로 탄핵이 되었고 여당 없이 선거를 치러 대통령을 내야 하는 일종의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 정치의 내일은 그래서 불투명한 것이다.

진실하고 겸손한 지도자를 기대한다

통일의 큰 꿈을 가슴에 간직하고 분단된 조국을 이끌고 나갈 정치 지도자를 기다린다.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DNA를 타고난 사람이 따로 있다.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을 전공한 독일 메르켈 수상이나 부동산업으로 성공한 미국의 트럼프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은 수상이나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정치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주정치는 반드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치 않다는 말도 있다. 미국의 루스벨트(FDR)가 대통령일 때 부통령 트루먼은 소인이라면 소인이었지만, 대통령이 되어 6.25 때 신속한 미군 참전결정으로 김일성의 침략을 격퇴시킬 수 있었다.
1956년 영국 수상 클레멘트 애틀리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이든 수상의 스웨즈 운하 처리 문제에 대해 그의 노동당이 반대한 사실을 우리가 다 알고 있었지만 애틀리는 “내가 수상으로 있었어도 그만큼 훌륭하게 마무리 지을 수 없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가 윈스턴 처칠 같은 대정치인이 아닌 줄 알고 있었는데 그 소인의 내용이 대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FDR이나 처칠 같은 대정치가의 출현을 기대하지 않는다. 트루먼처럼 진실하고 애틀리처럼 겸손한 지도자를 학수고대 하는 것이다.

기고만장 속 야심도 가소롭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후 어느 정당 대표가 “오늘은 위대한 국민승리의 날”이라 선언하고 “헌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세력을 마침내 국민의 힘으로 파면시켰다”고 기고만장 했다.
원리를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내용에 살을 붙이면서 1,500만 촛불시위의 승리라고 주장한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본다. 그 촛불시위의 배후에는 그가 대표하는 정당이 있고 차기대선에서 그 당의 대선후보가 승리할 것이 명약관화 하다는 오만한 자세마저 엿보였다.
그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국민의 승리라고만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뒤에 우리가 있다”면서 그가 대표하는 정당을 치켜세운 것은 듣기에 불쾌했다. 60일 이내의 대선고지를 먼저 차지하겠다는 숨겨진 야심도 가소롭게 여겨진다.
국민의 승리라는 말은 따지고 보면 태극기 시위도 승리했다고 풀이해야 옳은 것 아닐까.
촛불만 승리했다면 태극기는 패배했다는 의미니 그래가지고 국민화합이 가능할 것인가. 편견을 가지고 조국을 바라보면 안 돼요. 헌재의 판결이 국민의 승리라고 믿게 된 까닭은 그것이 헌법의 승리고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미 국무 틸러슨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

▲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8일 오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회담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중국 외교부공식사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중국 외교부장이 북경에서 만나 한반도를 둘러싼 긴박한 국제정세 가운데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은 한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혈맹’관계로 수십 년을 유지해 왔고, 중국은 6.25 때 풍전등화 격인 김일성 정권을 살리기 위해 참전하여 피를 흘렸기 때문에 북조선을 혈맹국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힘이 더욱 커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되도록 한국과 미국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공작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하게 된 배후에도 중국의 도움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엔 안보리가 북의 미사일 발사 때마다 엄중한 제재를 결의하지만 중국은 제재에 신중을 기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지 특단의 조치는 하지 않았다.
미 국무장관 틸러슨이 지난 17일 판문점을 방문했을 때는 매우 비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을 때는 한반도 사드배치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피력했고, 왕이는 한국을 볼 때와는 달리 공손하게 웃는 낯으로 그를 대하는 것을 보니 약소국에 태어난 나 자신의 신세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우리는 살 길이 따로 있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기가 죽지 않아야 한다.

이름만 中國이지 실제 小國 아닌가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중국을 대국(大國)이라 하면서도 중국인을 ‘되놈’이라고 얕잡아 불렀다. 그런 호칭이 통용된 이면에는 무슨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의 오래고 오랜 역사적 갈등을 모르고는 이해가 불가능한 모순적 태도라고 여겨진다.
조선인은 중국의 방대한 영토와 인구에다 공자와 맹자를 낳은 중국의 도덕과 문화에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도 중국 관리들의 횡포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상대하는 중국의 오늘의 태도는 어떤가.
중공군은 대한민국이 유엔군과 힘을 합쳐 인민군의 남침을 물리치고, 실지 회복의 꿈이 곧 이뤄지게 된 시점인 1950년 1월, 이른바 인민해방군을 동원하여 김일성을 돕기 위해 인해전술을 구사하여 38선을 넘어와 우리는 다시 1·4 후퇴가 불가피 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귀한 피를 흘리며 국토통일을 시도했지만 중국의 방해로 꿈이 좌절된 셈이다. 그 뒤 지금에 이르러 김정은이가 미사일과 핵폭탄을 만들어 “남조선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협박, 공갈하여 방어용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는데 중국이 이를 트집 잡아 행패를 부리며 우리를 못살게 군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질서의 주축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꼴을 가소롭게 여기게 된다. 중국은 이름만 중국(中國)이지 소국(小國)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2호 (2017년 4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