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단순 건망증

글 / 金淑(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건망증이란, 기억장애의 하나로 잘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정도가 심한 병적인 상태를 말함이다. 이런 사전적 풀이가 증명해주듯 건망증은 일시적인, 최단기 기억상실이 아니라 병적인 상태라 하니 심해질 때는 치매로 이어짐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늘 긴장해야 하겠다.

‘해빙기 증세’쯤 일까

건망증의 증세는 물론 개개인의 성격이나 습관(생각, 말, 행동 포함) 평소의 건강, 등등에 따라 다소의 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유독 해빙기에 그 증세가 두드러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겨우내 얼었던 날씨가 풀릴 때,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얼음이 녹을 때, 사람에게도 대립되었던 사고나 행동이 세력을 이루다가 어느 한순간 느슨해지면서 오는 자연스런 현상, 이런 현상이 곧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해빙기의 증세라 여겨진다.
동의학에서 말하듯 사람의 몸은 자연과 같아서, 이를테면 또 하나의 자연이기 때문에 분명 계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주부들이 겪는 단순 건망증세는 실로 다양하고 다채롭다.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피차지간 겪을 만큼 겪은 터수라 굳이 여기서 말하지 않더라도 새삼스러운 이슈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시쳇말로 명함도 못 내밀게 되어있다. 고고하고 자존감 높은 우리네 생활이 고스톱 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죽하면 “3점은 기본”이라는 신생어가 따로 생겼을 지경이다. 휴대폰을 두고 나와서, 지갑을 놓고 나와서, 가스 불을 안 끄고 나와서... 외출 시에 이래저래 헛걸음질을 하는 것이 통상 세 번은 흔하디흔한 일이고, 지금 쭉 벌여놓은 경우들은 그 중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휴대폰을 자동차 키로 착각하고 생각 없이 계속 누르고 서 있다가 본인이 하는 행동을 본인이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도 뭐가 뭔지 제대로 분간 못한 채 “어라, 언제 고장났지?” 한다든가, 그야말로 교통카드를 은행의 ATM기 한 쪽 면에 갖다 대고는 앞도 뒤도 꽉 막힌 채로 막연히 현금인출이 안 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보이스 피싱 일당에게 잔고가 털렸나, 하며 무릎이 꺾여 넋 나간 채로 주저앉아 있었다든가, 층계를 올라가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통화를 끝낸 뒤 올라가던 길이었는지 내려가던 길이었는지 잠시잠깐동안 가물가물해져 고개를 갸웃거렸다든가, 아주 먼 옛날 아파트 단지 안에 CCTV가 설치되기 이전에 멀쩡히 다른 곳에 차를 세워두고는 늘 세워두던 주차장에 차가 안 보인다 해서 호들갑을 떨며 도난신고를 하고 급기야 3인 1조 경찰이 출두하고 영문도 모르는 죄 없는 경비 아저씨가 인질로 잡혀(?) 땀을 뻘뻘 흘리며 진술서를 쓰고... 이런 경우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보자면 몇 날 몇 밤을 새워도 끝이 없을 것이다.

건망증세 오해 않기로 ‘도원결의’까지

우스갯소리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로 우리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몇 몇 친구들이나 선후배들끼리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긴급사항이 있다. 사소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중요한 경우라면 더욱, 상대가 나만큼 기억해주지 않는다 해도 서운한 마음을 미리미리 풀고 행여 고성이 오간다거나 육두문자를 날린(?)다거나 심지어 머리채를 끌고 끌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도원결의’를 했다. 그 날 현장에는 바람결에 날려 온 복숭아 향기가 덤이었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아줌마들끼리,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해질 까닭이란 꿈에도 없을 건망증을 두고 험난한 인생길 잘 헤쳐 나가자는 훈훈한 맹세를 했던 셈이었다.
오죽했으면 평생 부부사이에서도 해 본 적 없는 맹세까지 서슴지 않았을까마는 자칫 잊고 살 무심함을 폭넓게 이해하고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우리만의 절대위안, 혹은 우리만의 필요불가결한 성토장이었다.
필자가 MENSA 회원은 아니지만 여태 사는 동안 그 정도면 꽤나 멀쩡한 편에 속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했었는데... 벌써 건망증이라는 물건이 반갑지 않은 얼굴로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을 줄이야...
이렇게 삶이란 누구든 예외가 없다. 하기야 생로병사를 피해갈 방법이란 삼천갑자 동방삭도 불가능한 것이다. 어쩌겠는가, 인간의 삶이, 그 여정이 생로병사인 것을.....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아플 때 아프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잃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품위를 지켜가며 아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병중에 품위 타령을 한다면 그 건 필시 덜 아픈 탓일 거라 콧방귀를 뀔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어쨌거나...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런 입장인데 맞나 모르겠다,(웃음) 단순 건망증이란 말이......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2호 (2017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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