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만든 나라인가
분노한 태극기의 절규

글/ 宋貞淑(송정숙) 편집위원 (전 장관,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자신의 임기가 끝나서 물러나는 전 헌재 소장이라는 사람이 한 행위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는 후임—그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에게 기한을 정해 주며, 탄핵을 반드시 그 때까지 끝내라고 말했다. 그 때, 그렇다. 그 때 우리는 그 부당함에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웃을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때 이미 짜여진 음모의 출발점이었으니까. 그 전직 헌재 소장은 심판 작업을 시작할 때 준법의 의지를 밝히지 않고 「국민의 뜻」을 들먹였던 사람이다.

▲ 청와대 인근에 게양돼 있는 태극기의 모습. <사진=이코노미톡뉴스DB>

결정문 써놓고 짜맞춤식 아니었나

그런 그가 물러난 뒤 그의 측근 중 한사람에게서 흘러나왔다는 이야기를 아주 일찌감치 전해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측근은, 분노한 태극기 물결이 일어나는 무렵에 그것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심판은, 처음부터 결정문을 써놓고 거기 맞춰 나가고 있는 중이니까 공연히 우익진영에서 헛힘을 빼지 말고,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해라.』
「측근」은 이를테면 충고삼아 해준 말이었다.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설마!! 말도 안 돼. 열 명 가까이 되는 법조인 최고의 명예를 이마에 새긴 사람들이 그런 짓에 몽땅 놀아나기야 하겠는가. 새빨간 좌파 우두머리가 하는 짓을 자존심 강한 심판관들이 그냥 다 그렇게 따를 리가 있는가. 그래도 나라의 법치의 최고 권위를 최 일선에서 지키는 그들을 그렇게 평가절하하지 말아야지…. 』
라고 나는 말했었다.
그런데 웬걸. 결과적으로 그 예고는 한 치도 틀리지 않게 들어맞아 버렸다.
몽땅 재갈이 물려서 그 많은 심판내용의 검토도, 판결의 내용도, 결정문의 치졸하고 법리에 맞지도 않는 내용을 방치한 채 끝내고 말았다.
그것이 탄핵 심판의 결과다.
심판관들은 대대손손 아주 불명예스런 법조 경력의 오명을 면치 못하게 되고 말았다. 아니란 말은 하지 말라. 법이론에 무지한 시정인의 눈으로 보아도 그것은 드러난다.
나라의 법사상을 누더기보다도 못하게 만든 그 허물은 그들을 저주하듯 따라 다닐 것이다.

촛불세력은 술판에 킬킬대고

기가 막히게도 김정은까지 합작한 흔적이 역력하다. 적어도 그가 신이 나서 우리를 조롱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을 보면 안 그렇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런 김정은을 두둔한다. 우리 국민 손으로 소중하게 뽑은 대통령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리는 짓을 사악하게도 법의 이름으로 자행한 그들은 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일까. 왜 그랬을까. 오죽하면 몇 백억 원의 뇌물설까지 흘러 다닌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으련만 그런 소문이 헛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너무 좋아서 술판을 벌이고 낄낄거리고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우리한테 맡겨. 우리가 이 촛불만 들고 나가서 한방에 끝내줄 테니까. 봤잖아. 그 위력을!』
큰소리치고 신이 나서 분노에 치를 떠는 국민을 조롱하고 있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거기 얹혀서 거대한 사저(私邸)를 차려놓고도 입만 열면 『서민을 어쩌구 저쩌구』 한다는 둥, 세월호의 위력 앞에만 부복(俯伏)하며 춤을 추는 짓—실제로 그는 노무현 몇 주기에 나타나 춤을 추다가 제지를 당했다.—을 거듭하는 일로 대통령 자리는 이미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발이 땅에 안 닿을 지경으로 들떠 있고 그 권력의 장막에 들어앉을 것을 생각하고 기쁜 나머지 걸음걸이가 조폭처럼 날로 꺼떡거리게 된 여자 당수는 흐들흐들 취해 있다.

심판직무 유기한 채 승복만을 강조

태생부터 좌파로 진영을 확고하게 굳혀 온 언론들은 「원탁 어른들」을 떠받들며 국궁하고 그런 언론들에게 주눅이 든, 전에는 보수라는 팻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그 「허물」을 지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 한술 더 뜨는 행장(行狀)을 여전히 고수하는 언론들은 숨이 죽어서 눈치를 보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심판의 진행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하는 일 같은 것은 직무 유기해 버리고 너스레 손짓처럼 『승복!』만을 강조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그들의 행위에 그렇게 빗장을 지른 것일까.
밝혀지겠지. 언젠가는.
중국의 논객이라는 사람이 비아냥거리듯 훈수와 충고를 보내는 중이기도 하다. 당당하게 독립된 주권 국가의 안보 주권을 어린 아이 팔 비틀 듯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으스대는 그들 앞에 가서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는 남녀가 아첨을 하며 뜻을 받드는 맹세를 서슴지 않는 행태가 그런 중국을 북돋아주고 있다.
『너희 같은 민도(民度)의 나라에서 건방지게 무슨 민주주의를 한다고 웃기다가 그런 꼴을 당하느냐』고 아주 준절하게 훈계하는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있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안다.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기적을 보았다. 태극기를 들고 지칠 줄 모르며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물결의 거대함에, 등골에 서늘한 냉한이 흐르는 경지를 겪었다.
한 번도 안 빠지고 집회에 다녀오느라고 발에 동상이 걸린 「어머니」, 췌장암 수술을 하고 시한부 선언을 받았는데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태극기 들기를 거듭하는 「어머니」, 제삿날이라 직접 갈수는 없으니 모금함에 넣을 십만 원짜리 봉투만 전하겠다는 「어머니」, 그 많은 어머니들이 길에 나서서 태극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은 기적이다.
『이게 어떻게 만들어온 나라라구!! 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나라인데!! 문아무개와 그 일당이 농단하는 대로 그렇게는 못 내줘!!』
그들은 단호하게 외치며 태극기를 신봉하고 있다.
이건 사람이 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그렇게 나는 생각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2호 (2017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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