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일, 사랑… 따뜻한 남쪽 언덕…

▲ 남고 김상하 회장이 한중민간경제협의회 회장으로 제1차 중국 경제사절단 순방 시 들렀던 계림에서 (1993.4.28)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장수기업 삼양(三養)그룹 김상하(金相廈) 회장의 90년 일과 사랑을 화보로 정리한 ‘따뜻한 남쪽 언덕에 기대어 서서’(비매품)가 발간되었다. 오랫동안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얼굴로 활약해온 남고(南皐) 김상하 회장의 화보집은 2001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2년을 기록한 ‘묵묵히 걸어온 길’, 2015년 자서전 ‘묵묵히 걸어온 길’에 이어 3번째 기록물이다.

3번째 화보집 ‘묵묵히 걸어온 길’

▲ 울산공장 상무 주재 시절 공장장과 함께 (1950년대 후반)

‘따뜻한 남쪽 언덕에…’는 제1부, ‘삼양의 자부심’ 등 긍지의 길, 제2부, ‘영혼의 만남, 사랑’ 등 ‘인연의 깊이’ 230여 쪽으로 구성했다.
남고 김 회장은 화보집 머리글 ‘발간에 부쳐’에서 양반가문에서 출생하여 세상 굴곡을 넘나들며 살았지만 “남들보다 축복받는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3번째 화보집 발간에 대해 누가 노욕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스스로 직접 사진을 골라 일생을 돌아보며 정리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최고의 양반 명문가 태생의 남고 김 회장이 ‘긍지의 길’을 걸어왔노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자료들이 ‘묵묵히 걸어온 길’ 속에 넘쳐난다.
화려한 대회활동 기록이 화보집 앞 부문에 먼저 나온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초청 만찬(95.11),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2004.4) 나고야 한일경제인 회의, 카타르 전 국왕 초청 오찬(99.4),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초청 오찬(95.7), 인도 수상 나라시마 라오 초청 오찬(93.9),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방한 면담(92.1) 등. 국내 정상급 인사로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박태준 총리, 김수환 추기경 등 당대 최고들과 면담, 환담하는 장면이 기록으로 나온다.

▲ 하마드 빈칼리파 알 사니 전 카타르 국왕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1999.4)

삼양가문의 빛나는 자부심 근본

김 회장의 일생을 대변하는 ‘묵묵히 걸어온 길’은 삼양의 빛나는 자부심이 기반이고 근본이다. 삼양은 1924년 농장관리를 위한 삼수사(三水社)로 출발하여 1931년 4월 삼양사(三養社)로 개칭, 지난 90년간 시대상황 변화에 상관없이 묵묵히 대한민국 대표기업 자리를 지켜왔노라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 회장은 신라 왕족 혈통인 울산 김씨 가문의 자부심도 버릴 수 없다. 조부 지산(芝山) 김경중(金暻中)으로부터 부친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 백부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가문으로부터 이야기 된다.

▲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후 미국 NBC TV 방송 인터뷰(1988.9.8)

삼수사는 전북 신태인, 고창 일대 농장과 간척사업을 시작으로 1931년 4월 삼양사로 개편한 후 규모를 확대해 갔으며 김연수 회장은 1932년 보성전문(고대) 인수, 1933년 소화기린맥주(OB맥주 전신) 취체역, 1935년 경방 취체역사장에 이어 만주 봉천사무소 개설, 길림성, 봉천성 농장, 남만방직 설립, 교육사업, 북간도 산림개발, 하얼빈 맥주 인수 등으로 사업을 크게 번창시켰다.
그러나 8.15 해방으로 만주 일대 자산을 그냥 두고 빈손으로 귀국했으며 정부 수립 후 농지개혁법 제정으로 남아 있는 농장들을 모조리 정부에 양도하고 반민특위(反民特委)에 구속, 석방, 무죄 등 온갖 굴곡의 시련을 겪어냈다. 그 뒤 울산 제당사업 등으로 재기하여 오늘의 삼양그룹으로 부흥되어 지난 2014년 10월 90주년을 맞고 지금은 100년 장수기업으로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 (좌) 삼양의 생분해성 봉합사 기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대전 의약공장 순시 중인 김상하 회장 (2008.6.6) / (우)▲울산공장에서 울산항을 바라보는 김상하 회장 (2000년대)

명예직 50여개의 눈부신 대외활동 기록

남고 김상하 회장은 1926년 4월, 7남6녀의 다복한 양반댁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서울 교동소학교, 경복중(1944)을 졸업한 후 만주 여순고등 문과 독어반 5기생으로 진학하여 2학년 때 강제징집으로 간도로 끌려갔다가 8.15를 맞았다.
1945년 10월 서울대 예과 2년을 거쳐 1946년 9월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입학, 졸업하여 1949년 3월, 가업(家業) 삼양사에 입사, ‘삼양의 빛나는 자부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25로 부산 피난시절 도쿄사무소 주재원으로 파견됐다가 1955년 삼양사가 울산 제당공장을 준공했을 때 현지 주재 상무로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전무, 사장, 회장으로 오늘에 이른다. 그룹 회장은 지난 2005년 3월, 셋째형 고 김상홍(金相鴻)회장 후임으로 맡았다.
김 회장이 삼양 경영진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대외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은 “형님 회장(김상홍)께서 밖에 나가 있어도 월급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말로 형제간의 우애를 대변하기도 했다.
대외활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명예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으로 1988년 제13대 회장으로 선출된 후 4차례 중임으로 12년을 근속했다. 부회장 6년을 합산하면 18년간 대한상의를 대표한 최장수 기록이다. 이 시절 김 회장이 추대되거나 강요된 각종 명예직이 평균 50여개에 달했다.
경제사절단 대표로 각국을 순방하는 민간경제외교 역할도 눈부시게 전개했다. 한·중 수교 이후에는 한·중 민간경제협의체를 창립, 초대 회장을 맡아 8년간 이끌었고 한일경제협회 7대 회장으로 양국 경제인 교류를 촉진시킨 역할을 맡았다.
1980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을 맡았다가 85년부터 97년까지 12년간 협회장으로 장수하면서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등 숱한 기록을 세웠다. 또 2003년부터 9년간 대한환경보전협회장을 맡고 99년부터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 이사장’을 맡았다가 후임자를 찾지 못해 2009년까지 10년간 중임했다.
‘묵묵히 걸어온 길’ 제2부 ‘인연의 깊이’ 편은 1957년 이대 출신의 박상례 여사를 만나 서로 존경하며 사랑해온 일생의 화목을 사진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 한중민간경제협의회의 창립총회. 김종필 전 총리의 모습도 보인다.(199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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